[서효인의 ‘소설처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김세희 ‘항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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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작가 김세희의 첫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은 목포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의 풍경에서부터 시작된 소설은 목포를 떠나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까지를 비교적 짧은 분량에 소홀하지 않게 다룬다.
이야기의 물결은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큰 흐름을 이룬다. 주인공인 ‘나’는 여자중학교를 졸업해 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단짝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가수를 좋아하기도 하며, 시험 스트레스도 받는 평범한 학생이다. 평범한 학생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특별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소설은 제목답게 사랑에 쩔쩔매는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하여 목포의 이곳저곳을 떠돈다. ‘항구의 사랑’은 간단히 말해 목포에서 나고 자란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혹은 성장담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교회 오빠나 과외 선생님, 혹은 옆 학교의 멀건 소년을 좋아할 법한 소녀들이 사랑하는 것은, 같은 학교의 소녀다. 중성적 매력이 있는 친구는 물론이고, 작은, 여린, 귀여운, 어른스러운, 유머러스한, 밝고 쾌활하거나 진중하고 겸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각각의 특성이 개개의 매력이 되고 사랑의 이유가 된다.
그들은 사귀고 헤어진다. 밥을 같이 먹고 매점에 함께 가고 ‘팬픽’(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팬이 직접 쓴 소설)을 돌려 읽으며 고민과 일상을 나눈다. 그중 누구는 유행에 휩쓸려 우정과 허세가 혼재된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진짜 사랑을 했을 수도 있다. 여자애인 채로, 여자애인 상대를.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고 혹은 사랑이라고 믿으며.
성인이 된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창들은 한때의 뜨거움에서 완연히 벗어난 듯하다. ‘나’는 서울에 와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여대생’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춰 나간다. 하이힐을 신고 매사에 가벼워지려 노력하며 친구들과 남자 이야기를 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자신은 지워 버린다.
그러나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는 지우기 어렵다. ‘나’가 말하는 것처럼 ‘그땐 다 미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서서히 자신의 감정을 확인해 가는 ‘나’의 감정과 그것이 실패했음을 천천히 자각하는 ‘나’의 감각을 단번에 읽을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질 사랑의 가능성은 커진다. 우리가 나누었던 감정의 영역마저 확대된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도 사랑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입시라는 관문을 거친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문을 나선 후, 대부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하지만 그 전의 삶이 가짜일 수는 없다. 수능과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세상은 말하지만 거기에도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설렘과 상처가 있다. 그 시절을 지나쳐 온 우리는 어쩌면 지금 그 시간을 통과하는 그들을 등급으로 줄 세우기에 급급하고 있는지 모른다. 줏대 없이 바뀌면서 늘 실험 중인 교육 제도로 그들을 제한하고 있다. 공정성이라는, 경쟁을 대전제로 삼아 그들을 사랑 같은 건 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있다. ‘항구의 사랑’은 10대 후반의 서사를 입시 바깥의 것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게 꼭 소설에 국한되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담백한 문장 속에 슬며시 숨은 유머는 덤이다.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작가가 탄생한 순간이고, 그 순간을 읽을 수 있어 기쁘다. 게다가 목포라니! 유달산 아래 가옥들이며 구시가지의 옷가게들, 하당의 학원가와 멀리 목포대교의 윤곽이 보이는 해변…. 서울과 그 근교가 아닌 장소가 이토록 생생하게 등장하는 소설을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 반갑다. 거기에도 청소년이 있고, 입시를 앞둔 학생이 있다. 그들에게도 첫사랑이 있다. 모두 미쳤었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던.
이야기의 물결은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큰 흐름을 이룬다. 주인공인 ‘나’는 여자중학교를 졸업해 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단짝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가수를 좋아하기도 하며, 시험 스트레스도 받는 평범한 학생이다. 평범한 학생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특별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소설은 제목답게 사랑에 쩔쩔매는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하여 목포의 이곳저곳을 떠돈다. ‘항구의 사랑’은 간단히 말해 목포에서 나고 자란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혹은 성장담이다.
성인이 된 주인공과 주인공의 동창들은 한때의 뜨거움에서 완연히 벗어난 듯하다. ‘나’는 서울에 와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여대생’의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춰 나간다. 하이힐을 신고 매사에 가벼워지려 노력하며 친구들과 남자 이야기를 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자신은 지워 버린다.
그러나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는 지우기 어렵다. ‘나’가 말하는 것처럼 ‘그땐 다 미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서서히 자신의 감정을 확인해 가는 ‘나’의 감정과 그것이 실패했음을 천천히 자각하는 ‘나’의 감각을 단번에 읽을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질 사랑의 가능성은 커진다. 우리가 나누었던 감정의 영역마저 확대된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도 사랑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입시라는 관문을 거친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문을 나선 후, 대부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하지만 그 전의 삶이 가짜일 수는 없다. 수능과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세상은 말하지만 거기에도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설렘과 상처가 있다. 그 시절을 지나쳐 온 우리는 어쩌면 지금 그 시간을 통과하는 그들을 등급으로 줄 세우기에 급급하고 있는지 모른다. 줏대 없이 바뀌면서 늘 실험 중인 교육 제도로 그들을 제한하고 있다. 공정성이라는, 경쟁을 대전제로 삼아 그들을 사랑 같은 건 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있다. ‘항구의 사랑’은 10대 후반의 서사를 입시 바깥의 것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게 꼭 소설에 국한되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담백한 문장 속에 슬며시 숨은 유머는 덤이다.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작가가 탄생한 순간이고, 그 순간을 읽을 수 있어 기쁘다. 게다가 목포라니! 유달산 아래 가옥들이며 구시가지의 옷가게들, 하당의 학원가와 멀리 목포대교의 윤곽이 보이는 해변…. 서울과 그 근교가 아닌 장소가 이토록 생생하게 등장하는 소설을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 반갑다. 거기에도 청소년이 있고, 입시를 앞둔 학생이 있다. 그들에게도 첫사랑이 있다. 모두 미쳤었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