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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 역사의 물줄기 바꾸다 <259> 바우하우스 100년

2019년 03월 14일(목) 00:00
칸딘스키 작 ‘심사가 없는 전시를 …’
삼십여 년 전,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에 ‘바우하우스’라는 멋진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모던한 분위기는 곧장 입소문이 나더니 문화예술계 멋쟁이들이 단골이 되었다. 20대 초반 시절 어쩌다 특별한 날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서 카레라이스나 하이라이스를 먹으며 문화예술인양 폼생폼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을 드나들면서 레스토랑 ‘바우하우스’가 예술과 디자인에서 모든 것을 바꾸었던 새로운 개념의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꼭 100년 전인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모든 조형미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건축에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건축과 조각, 회화를 하나의 종합체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술운동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바우하우스를 열었다.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이후 데사우, 베를린으로 이주하고 1933년 나치에 의해 폐교되었으나 100년이 흐른 우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살아있다.

대부분의 미술대학 커리큘럼은 바우하우스 프로그램으로부터 발전되었고, 최근 독일은 물론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바우하우스 100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도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특히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에서의 강연록을 바탕으로 불후의 명저 ‘점·선·면’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회화가 갖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을 기술하면서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조형적 사고의 직관과 상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칸딘스키의 ‘심사가 없는 전시를 위한 벽화 디자인 벽 B’(1922년 작)는 바우하우스의 시청각실 바닥에 캔버스를 펼쳐놓고 그린 방대한 작업으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건축물을 수용하는 회화의 의미를 실현한 작품이다.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에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수채화 외에도 3백 점의 유화도 제작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바우하우스를 설립한 그로피우스의 목적대로 예술의 실용성을 시도한 것이어서 눈여겨볼만 하다.

<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