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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그림생각'](148) 바둑
낭만 사라진 이세돌 - 알파고 대결 씁쓸
2016년 03월 17일(목) 00:00
김준근 작 ‘바둑두기’
요 며칠 사이 최대의 화제는 단연코 알파고와 바둑, 아니 이세돌이었다. 천개가 넘는 컴퓨터가 결합된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 알파고에 맞서 홀로 광야에 선 듯 고군분투하며 고도의 집중력과 초인적인 의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던 이세돌기사는 이제 우리 인류에게 전설이자 역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겨뤘던 다섯 번의 대국은 역사적인 순간이면서 동시에 참 쓸쓸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전통적인 바둑에서 보여 지는 사람 사이의 긴장과 낭만 없이 냉정한 기계의 계산이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구한 말 활동했던 기산 김준근( ? ∼ ? )의 풍속화 ‘바둑 두기’는 귀하고 반가운 그림이다.

이 작품 속에는 심각하게 바둑 두는 사람과 그 수를 헤아리며 돌을 만지작거리는 또 한 사람, 그 곁 훈수꾼들의 적극적인 모양새, 직접 두지 않으니 더욱 고수인양 판을 재촉하는 모습의 어우러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17세기 말 발아된 풍속화가 18,19세기에 이르러 발전하고 퇴조하기까지의 회화사적 과정을 보면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는 회화성이나 장식성보다 기록적인 성격의 작품으로 파악된다.

구한 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번역소설인 ‘텬로력뎡’(1895년)에 우리 복식으로 번안한 삽화를 그린 화가이기도 한 김준근은 서울과 개항장인 원산, 부산, 인천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의 작품들은 개항 이후 외국인의 조선 풍속에 대한 관심에 따라 주문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풍속화가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등 외국에 소장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준근의 풍속화들은 주로 매사냥, 바둑, 장기, 투호, 쌍륙 등 조선의 놀이 풍속과 방적, 무명짜기, 대장장이, 밭갈이 등 생산 활동과 연희 문화를 담고 있다. 그 작품들이 현장 사생의 생동감이나 예술적 풍모는 덜하지만 기록화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어서 최근 함부르크대학에서 민족학을 연구했던 조흥윤교수(한양대)가 기산 풍속화들을 엮어 ‘민속에 대한 기산의 지극한 관심’을 펴내는 등 민속학자들에게 풍속, 복식, 민속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재조명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