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울음방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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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울음방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5년 12월 04일(목) 00:20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는지 모르겠네요.” 중년 남성들을 만날 때면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아무 일도 아닌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족들과 TV를 보다 혼자만 눈물이 흘러 아내 보기 민망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나이 든 남성들이 눈물이 많아지는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40대에 접어들면 점차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는 대신 감정을 민감하게 만드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증가하면서 감정적인 변화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억제하는 전두엽과 측두엽, 해마의 크기와 기능도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홍수 작가의 ‘토닥토닥 쓰담쓰담’전(생각상자 갤러리·19일까지)에 갔다 ‘울음’에 대해 생각했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조는 사람들, 나물을 파는 노점상 할머니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은 작품을 관람하던 중 팸플릿에서 ‘아버지 울음방’이라는 말을 발견해서다. 개그맨 고(故) 전유성이 주 작가의 저서 ‘토닥토닥 쓰담쓰담’에 쓴 추천사에 등장하는 구절인데, 단어만으로도 울컥해졌다. 주 작가의 작품을 “중년 남자들 혹은 그 위 연배 아버지들의 복습서”라고 표현한 그는 “어느 날 문득, 한밤중에 전화 걸어 내 지나온 이야기를 풀어내며 울고 싶은 밤이 있다. 혼자 조용히 울고가는 ‘아버지 울음방’ 체인을 만들면 어떨까 상생해본다”고 적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막혔던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든다. 어찌 아버지 울음방 뿐이겠는가. 회사 생활에 지친 이를 위한 울음방, 자신에게 실망한 사람을 위한 울음방, 헤어진 사람을 위한 울음방 등 마음을 풀어놓을 안식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 귀소 본능을 뜻하는 ‘케렌시아’(Querencia)는 투우장의 소가 지친 심신을 달래는 장소를 말한다. 소는 위협을 피할 수 있는 경기장 안 특정 장소를 기억해 그곳을 자신의 케렌시아로 삼고 투우사와의 싸움에서 지치거나 죽음이 예상되는 순간이 오면 케렌시아로 이동해 숨을 고른다. 나만의 케렌시아, 나만의 울음방을 하나 쯤 갖고 있다면 힘든 세상을 건너는 데 힘이 되지 않을까.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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