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가 좋다, 전라도 외국인] 임금 체불·진료 고충 내 일처럼…고민 말고 문 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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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가 좋다, 전라도 외국인] 임금 체불·진료 고충 내 일처럼…고민 말고 문 두드리세요
[ <5> 이주민 돕는 콜센터 상담원]
영암 대불산단 내 ‘주민 통합지원 콜센터’
외국인 출신 상담원 6개 언어로 서비스
‘언어 장벽·정보 격차’ 상담 가장 많아
“동포 사람들 말에 담긴 감정 잘 살펴
‘상담’ 이상의 ‘안정’ 돕는 조력자라 생각”
근로기준법·전남 산업 구조 등 별도 교육
2025년 05월 29일(목) 20:20
전남 외국인 주민 통합지원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쁘러베스 퍼우델씨.
영암 대불산단 안에 있는 ‘전남 외국인 주민 통합지원 콜센터’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외국인을 위한 6개 언어 상담이 가능한 이곳에는 산업단지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유학생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이 전화를 받는 이들은 바로 같은 외국인 출신 상담원들이다. 이들은 한국 정착의 어려움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낯선 환경에 부딪힌 후배 이주민들의 삶을 가까운 거리에서 돕고 있다.

◇임금·비자·병원 관련 문의가 제일 많아

콜센터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는 비자 연장, 사회통합 프로그램 수강 신청 등이다. 임금 문제를 상담하거나 병원에 갔을 때 통역을 부탁하기도 한다.

캄보디아 출신 박혜원(여·40)씨는 “임금을 못 받아서 너무 힘들어하는 노동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어가 안 되니까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거다. 노동청에 어떻게 연락하고, 통역은 어떻게 요청할 수 있는지 알려줬다”며 “며칠 뒤에 전화를 또 했는데 임금을 다 받았다고 했다. 정말 고맙다고 말해줬는데 그때 기쁘더라”고 뿌듯했던 순간을 전했다.

네팔 출신 쁘러베스 퍼우델(37)씨는 2013년 유학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한국에 살고 있다. 지금은 네팔 출신 노동자들의 체류와 구직 문제를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있는 상담자는 업무 중 실수를 하면 회사에 피해가 갈까 봐 불안하다고 털어놓던 근로자다. 퍼우델씨는 “그분은 계속 긴장하면서 일한다고 했다. 그냥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그런 말 들으면 마음이 짠하고, 한 마디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중국 출신 박미홍(여·47)씨는 사고를 당한 근로자, 사업장 문제로 이직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전화도 수차례 받은 경험이 있다.

박씨는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자해를 시도하고 병원에 입원한 외국인도 있었고, 불법 단속에 겁이 나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가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어떤 청년은 본국에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한국 와서는 말도 안 통하고 숙식 환경도 나쁘고, 근무시간도 들쑥날쑥한 데다 수당도 못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비자 전환이 불리해질까 봐 퇴사도 못하겠다고 하더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판자이탄 브리스카 엘리자벳씨는 자국민들이 겪는 각종 어려움을 직접 전화를 통해 듣고 이들이 전남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남이민외국인종합지원센터 제공>


◇어려움 대부분은 언어와 정보 격차

전남 지역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언어와 정보에서 벌어지는 격차다.

상담원들에 따르면, 병원 진료 예약이나 주민센터 방문, 체류 서류 준비 같은 일상적인 업무조차 언어 장벽 때문에 혼자 해결하기 힘들다고 한다.

박미홍씨는 “진료는 받았는데 의사 말을 못 알아들어서 다시 전화를 걸었던 중국인 유학생도 있다. 답답한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 말했다.

퍼우델씨는 “건강보험, 은행 앱, 집 보증금 같은 개념도 처음엔 생소할 수 있다. 언어가 익숙하지 않으면 이런 생활 정보 자체가 장벽이 된다”고 했다.

사회통합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신청 절차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외국인에게 더 큰 부담이다. 기초적인 표현만 알고 있어도 훨씬 덜 불안하니 다국어 정보가 처음부터 제공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들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행정 절차를 밟을 때 가장 지치는 부분 중 하나가 기관마다 설명이 다르다는 점이라고도 말했다. 체류 자격 변경이나 건강보험, 아이 교육 지원 같은 일은 꼭 필요한 행정인데, 몇 번을 오가야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박혜원씨는 “기존에 들은대로 서류를 다 준비했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선 또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돌아간 외국인이 있었다. 언어도 어렵고 절차도 복잡하니까 두세 번씩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거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더라. 제도나 안내 방식이 좀 더 일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미홍씨는 자국민들이 겪는 각종 어려움을 직접 전화를 통해 듣고 이들이 전남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남이민외국인종합지원센터 제공>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청하세요”

상담원들 대부분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를 떠올리며 ‘혼자 끙끙 앓지 말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2017년 전남에서 가정을 꾸린 인도네시아 출신 판자이탄 브리스카 엘리자벳(여·48)씨는 “나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게 낯설고 특히 언어가 제일 큰 어려움이었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거나 병원 예약하는 것조차 너무 어렵고 두려웠다. 처음엔 민폐가 될까 봐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 것도 망설였고, 그 결과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퍼우델씨는 “센터 연락처를 미리 알아두고, 친구들한테 일자리나 수업 정보도 미리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조금씩 준비를 해놔야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콜센터 상담사라는 일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고객의 문의를 해결하는 것 이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엘리자벳씨는 자신의 일에 대해 “외국인분들이 낯선 땅에서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설명하며 “그 마음을 아니니까 늘 진심으로 전화받게 된다”고 했다.

박미홍씨도 “대부분 불편하거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이 전화를 걸어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한 상담사가 아니라 그분들이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라고 생각한다”며 “예전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정해진 답’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동포 사람들의 말에 담긴 감정을 더 세심하게 느끼게 됐다. 이 일을 하면서 나 자신도 인내심이나 공감 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에 따르면 통합지원 콜센터는 지난 1월부터 이력 관리, 다국어 상담, 3자 통역 지원 등 외국인 상담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운영 중이다. 가능한 상담언어는 베트남어·중국어·인도네시아어·캄보디아어·네팔어 등 6개로 상담원들은 근로기준법과 출입국관리법, 전남 주요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교육도 함께 받고 있다.

전남도는 오는 하반기에는 태국어, 스리랑카어, 필리핀어, 우즈베키스탄어를 추가해 총 9개 언어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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