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넘어 문화·마음의 벽 허무는 선생님 되는게 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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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넘어 문화·마음의 벽 허무는 선생님 되는게 꿈이죠”
[전라도가 좋다, 전라도 외국인]<9> 광주 정착한 미래의 영어 강사들
박예은·에이프릴·마미 케쿨라·김딜라라 씨
이주여성으로 결혼·육아하며 ‘산전수전’
광주남구가족센터 영어강사 양성 교육 참여
지역사회 뿌리 내리며 당당한 직업인 꿈꿔
내년부터 어린이집 등 원어민 강사로 파견
“노래·놀이로 더 쉽고 따뜻한 배움 주고 싶어”
2025년 08월 23일(토) 11:40
에이프릴 씨
광주시 남구에는 한국인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겠다며 꿈을 키우고 있는 이주민들이 있다.

박예은(여·45), 에이프릴(여·33·이상 필리핀), 마미 케쿨라(여·36·라이베리아), 김딜라라(여·25·튀르키예)씨는 광주남구가족센터에서 영어강사 양성 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 16일 진행된 수업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 언어적 학습능력뿐만 아니라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고 따뜻한 마음도 함께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예은 씨
필리핀 출신 박예은(에밀리) 씨는 지난 2005년 한국에 발을 디뎠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네 아이를 키우며 산전수 전을 겪은 그는 교실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 설레고 기뻤다. 새로운 걸 배우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며 “영어를 가르쳐왔지만,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항상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남편과의 갑작스러운 사별이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언어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이 힘들었다. 첫째는 대학생인데 입시제도를 이해하지 못해 너무 힘들었다. 수시·정시 같은 제도를 몰라 번역기에 의존하기도 했다”며 “언어는 단순히 직업을 얻는 도구가 아니라 가족을 지켜주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막내가 아직 일곱 살이라 학원 수업도 저녁 늦게까지 할 수 없다. 아이가 집에 혼자 있을 수 없어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일자리를 선택한다”며 “그래서 결혼이주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더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필리핀 출신 에이프릴 씨는 가족의 소개로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입국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그는 여전히 “적응 중”이라고 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문화와 언어, 음식이 낯설어 무서웠다. 지금도 한국어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학원과 유치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며 교사로서의 역량을 쌓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을 위한 생계형 교육 프로그램도 확대했으면 한다“고 전한 그는 ”모든 이주민이 교사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제빵, 간병 같은 과정도 필요하다”고 다양한 일 경험 및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에이프릴 씨는 한국 사회가 외국인에게도 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도 각자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회가 문을 열어준다면 한국 사회에도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미 케쿨라 씨
마미 케쿨라 씨는 지난 2018년 난민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임신 중이던 그는 목숨을 건 탈출 끝에 광주에 정착했다. “저는 싱글맘이다. 아이를 안고 살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기숙사 생활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선택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 7만 원 중 1만 원을 아이 돌봄에 써야 했는데, 생활이 빠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고 단언했다. “한국은 살기 어려운 나라가 아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언어를 배우고, 이런 교육과정을 참가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다른 다문화가정들과 연결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며 겪은 제도적 장벽도 언급했다. “어떤 일자리들은 주중 내내 기숙사 생활을 요구하거나 풀타임으로 근무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는 싱글맘은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외국인 여성, 특히 엄마들에게는 구조적으로 불리하다”며 “언어만큼이나 ‘시간 제약’을 고려한 다양한 일자리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김딜라라 씨
튀르키예 출신 김딜라라 씨는 지난 2018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입국했다.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그는 아직 초보 강사이지만, 꿈은 확고하다.

“아이들에게 노래 부르면서 즐겁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 김씨는 한국은 수업이 딱딱한 경우가 많은데, 저는 노래와 놀이로 따뜻하게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와 처음엔 언어 때문에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 살이를 시작했다. 한국에는 높임말, 존댓말이 있어서 남편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도 어려웠다”며 “언어를 못 하니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가장 컸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을 조금씩 얻었다는 그는 결국 대학시절 영어를 공부했던 자신의 전공을 살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할 기회를 잡았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에게 기회가 많지 않아 걱정도 했지만, 배우면 된다. 겁내지 말고 편안하게 와서 도전하면 된다”고 후배 이주민들에게 당부했다.

광주에 거주하는 결혼이주민들이 지난 16일 남구가족센터에서 영어강사 파견 교육을 듣고 있다. <광주남구가족센터 제공>
한편, 광주시 남구가족센터는 결혼이민자 등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영어강사 파견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아 아니라, 이들이 교사로 성장해 아이들에게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길을 열어주고자 마련됐다.

교육을 이수한 이주민들은 내년부터 어린이집 등지에서 원어민 강사로 파견돼 아이들의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장미영 남구가족센터장은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배움을 통해 새로운 꿈을 키워가는 결혼이민자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준다”며 “이번 교육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디딤돌이 되고, 또 지역 아이들과 가정을 따뜻하게 연결하는 다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센터는 영어강사 과정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 역량 프로그램을 확대해, 결혼이민자들이 당당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글·사진=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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