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이주민 차별 없는 법·제도…함께 사는 세상 느껴져
전라도가 좋다, 전라도 외국인 <11>
해외 선진지를 가다-호주 이민자의 삶에서 본 한국의 미래
해외 선진지를 가다-호주 이민자의 삶에서 본 한국의 미래
![]() 호주 퀸즐랜드 주 브리즈번 시청 앞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광장을 거닐고 있다 |
호주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민 국가다. 호주는 인구 성장의 대부분을 이민에 의존해왔으며 외국인 유입이 국가 운영의 핵심 축이 됐다.
브리즈번과 시드니, 멜버른 같은 대도시에는 학교와 직장 곳곳에서 아시아계와 유럽계, 중동계 이민자들이 함께하는 다문화적 풍경은 일상이 됐다.
광주일보 취재진은 호주의 외국인 이민 정책이 잘 드러나는 다문화 도시이자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브리즈번을 찾아 다문화 사회가 일상이 된 모습을 보고 이민 정책과 정책 방향을 살폈다.
한국을 떠나 브리즈번에서 만난 서로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민·다문화 과제와 맞닿아 있었다.
간호사로 일하는 40대 남성, 싱글맘으로 20년을 버틴 여성, 워킹홀리데이로 와 적응기간을 거치고 있는 20대청년들로부터 엿본 세대별 이민 경험을 통해 지역 비자 제도, 다문화 교육 등 한국 사회에 필요한 시사점을 고민해본다.
워라밸 보장되는 여유로운 삶…적응 어려웠지만 지금은 좋아
각자 문화 존중하는 분위기…한국 사회에도 정착됐으면
호주 브리즈번에서 만난 김재민(40)씨는 현지에서 타일 시공자로 일을 시작한 뒤 현재는 간호사로 정착했다. 김 씨는 호주 생활은 보통 새벽 5시에 출근해 오후 2~3시면 일이 끝나고 이후 시간에는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어 워라밸이 확실히 보장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달리 ‘빨리빨리’ 문화가 없다는 점도 차이로 꼽았다. 그는 “처음엔 답답했지만 한두 달 지나니까 여유로워지더라”며 “일하다가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정착 환경도 과거보다 나아졌다. 그는 “예전에는 한국인 네트워크가 적어 고립감을 느꼈는데 지금은 부동산 같은 곳에서도 한국인 에이전트가 있고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며 “정착하기에는 지금이 훨씬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K팝이나 드라마 같은 문화 인지도 덕분인지 길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주는 사람도 있다”며 “호주는 워킹홀리데이, 유학, 이민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 차별보다는 존중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와 비교하며 아쉬움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은 유교적 뿌리가 강하다 보니 다문화 사회라고 해도 외국인이 한국 틀에 맞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호주는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환경이어서 훨씬 자유롭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별받는 현실에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씨는 “저도 이주민이다 보니 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받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는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호주에 정착한 임혜빈 씨는 당시를 ‘정보도, 사람도 없던 고립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임씨는 “처음엔 한국 슈퍼마켓에만 의지했다. 영어가 부족하니 어디든 가기가 두려웠다. 지금은 정착 지원 정보도 많고, 부동산·보험 같은 분야에도 한인들이 진출해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며 사회복지사 길을 택한 그는, 일터에서 다양한 이민자들의 사연을 매일 접한다.
그는 “예전엔 한국 이름을 쓰면 이력서에서 걸러질까 두려워 영어 이름을 따로 써야 했다. 지금은 K-컬처 덕분인지 한국인 위상도 달라졌다. 그런 걸 보면 참 뿌듯하고 시대가 많이 달라졌구나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호주로 모실까 싶어 ‘부모 초청 비자’ 등도 알아봤지만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임 씨는 “부모님을 호주로 모시고 싶지만, 나이 제한과 제도적 장벽이 큰 부분도 있다”며 “결국은 노후를 따로 보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아픔이다”고 말했다.
어학연수로 호주 온지 3주…취업 압박 없이 다양한 경험
한국어 배우는 현지인들 보니…새로운 도전 할 용기 생겨
광주 동신대를 졸업한 임주희(24)씨는 어학연수생으로 브리즈번에 도착한 지 3주를 막 지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 압박이 심했지만, 새로운 세상을 접하며 마음이 훨씬 편하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극복하기 위해 기숙사에서 다른 나라 학생들과 부딪히며 생활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재밌는 일상이다.
올해 말 멜버른으로 이동해 카페 아르바이트에 도전할 계획이라는 임 씨는 “광주에서 알바할 땐 외국인을 그저 ‘손님’으로만 봤는데, 여기선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일도 하는 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들처럼 도전을 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워킹홀리데이 3년차 되고 보니…외국인 친구들과 여유롭게 생활
공식 지원센터·커뮤니티 도움…브리즈번 잘 갖춰진 제도 부러워
워킹홀리데이 3년차가 된 김예준(25)씨는 “호주는 집 문화 중심이라 파티나 모임도 대부분 집에서 이뤄진다. 여긴 새벽 4~5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2~3시에 끝나니, 남은 시간은 온전히 자기 생활을 즐길 수 있다”며 “공장 일도 한국과 달리 빨리빨리보다 천천히, 여유로운 분위기라 그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어 김씨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어울리며 지내는 문화라 여기서는 내가 외국인이지만 외롭지 않았다. 또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잘 적응할 수 있었다”며 “공식 지원센터도 있지만 커뮤니티 모임에서 실질적인 도움과 조언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브리즈번에서 만난 이들의 경험은 세대별로 달랐지만 “제도가 잘 갖춰진 사회라서 이민이 가능성이 됐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이미 다문화와 이민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지만 제도와 인식의 장벽은 여전히 높은 한국 사회에서 브리즈번의 사례는 지역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브리즈번은 다문화 교육·노동·정착 정책이 잘 마련된 도시에서 인구 감소와 다문화 갈등이라는 과제를 안은 한국 사회가 살펴볼 지점이 많다.
호주 인구 60~70%가 이민자…어렸을때부터 다문화 교육 철저
병원·행정기관 등 통역서비스…이민자 적응 돕는 시스템 중요
오드 버나드 인구통계학자이자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교수는 “호주 인구 증가의 60~70%는 이민자로 인한 것”이라고 단언하며 “호주는 원주민이 아니면 모두가 이민자다. 1세대든 5세대든 조상이 호주 원주민이 아니다. 원주민 인구 비율은 3%밖에 되지 않고, 결국 97%가 결국 이민자라서 호주 인구 성장은 이민자가 없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버나드 교수는 “코로나 전까지 매년 30만 명이던 순유입 인구가 최근엔 60만 명까지 늘었다”며 “호주에서는 여성 한 명당 1.6명의 아이를 낳는다. 인구가 계속 유지되려면 2.1명이 돼야 하는데, 이민자들이 많아 30%는 이민자들을 통해 인구가 유지되고 있고, 70%는 호주인이 1.6명 정도 낳는 걸로 유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가 다문화 사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과 생활 속 제도를 꼽았다. 호주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부터 매년 ‘하모니 데이(Harmony Day)’ 같은 다문화 존중 교육을 진행한다. 조화롭게 어울리는 날을 만들어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음식을 소개하고, 자신 또는 부모님이 태어난 나라의 국기를 들고 행진을 하는 등 행사를 열어 자연스럽게 이민자들을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인종 학생들이 많아 그들에게는 당연한 문화가 되고 융합이 잘 이뤄지는 효과가 있다.
또 이민자들을 위한 통역 서비스가 잘 마련돼 있다. 병원·행정기관에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해 언어 장벽이 삶의 벽이 되지 않도록 한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노동법도 중요한 축이다. 교수는 호주의 다문화 정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숙련 이민(skilled migration) 시스템을 꼽았다.
버나드 교수는 “국제학생들의 40% 이상이 숙련 이민으로 영주권 따서 정착하고 있으며 보통 이민자들이 숙련 이민 시스템으로 오기 때문에 오자마자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고 구성원으로 적응이 빠르다보니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됐다”고 말했다.
호주 노동법은 내국인과 이민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농업 분야에서 워킹홀리데이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가 드러났지만, 2023년 정부가 이민 시스템을 전면 검토해 개선책을 내놓았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또 그는 대도시 쏠림을 막고 중소도시 인구 균형을 맞추기 위해 1990년대 중반 도입된 ‘지역 비자 제도’를 소개했다.
버나드 교수는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등을 제외한 중소도시에 4~5년 거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된다”며 “최근에는 유학생들이 이 제도를 통해 타스매니아 같은 곳에 정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0년 뒤 절반은 남고 절반은 대도시로 이동한다. 국제 유학생들이 중소도시에서 일을 시작해 영주권을 따 호주에 정착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잘 나아가기 위한 조언을 남긴 그는 “한국은 언어 장벽이 너무 높고 다문화 비율이 늘고 있지만 거부감이 많은 것 같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데 이민 확대 없이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며 “국민이 ‘이민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적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호주 브리즈번=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호주 브리즈번=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브리즈번과 시드니, 멜버른 같은 대도시에는 학교와 직장 곳곳에서 아시아계와 유럽계, 중동계 이민자들이 함께하는 다문화적 풍경은 일상이 됐다.
광주일보 취재진은 호주의 외국인 이민 정책이 잘 드러나는 다문화 도시이자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브리즈번을 찾아 다문화 사회가 일상이 된 모습을 보고 이민 정책과 정책 방향을 살폈다.
간호사로 일하는 40대 남성, 싱글맘으로 20년을 버틴 여성, 워킹홀리데이로 와 적응기간을 거치고 있는 20대청년들로부터 엿본 세대별 이민 경험을 통해 지역 비자 제도, 다문화 교육 등 한국 사회에 필요한 시사점을 고민해본다.
각자 문화 존중하는 분위기…한국 사회에도 정착됐으면
호주 브리즈번에서 만난 김재민(40)씨는 현지에서 타일 시공자로 일을 시작한 뒤 현재는 간호사로 정착했다. 김 씨는 호주 생활은 보통 새벽 5시에 출근해 오후 2~3시면 일이 끝나고 이후 시간에는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어 워라밸이 확실히 보장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달리 ‘빨리빨리’ 문화가 없다는 점도 차이로 꼽았다. 그는 “처음엔 답답했지만 한두 달 지나니까 여유로워지더라”며 “일하다가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정착 환경도 과거보다 나아졌다. 그는 “예전에는 한국인 네트워크가 적어 고립감을 느꼈는데 지금은 부동산 같은 곳에서도 한국인 에이전트가 있고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며 “정착하기에는 지금이 훨씬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K팝이나 드라마 같은 문화 인지도 덕분인지 길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주는 사람도 있다”며 “호주는 워킹홀리데이, 유학, 이민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 차별보다는 존중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와 비교하며 아쉬움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은 유교적 뿌리가 강하다 보니 다문화 사회라고 해도 외국인이 한국 틀에 맞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호주는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환경이어서 훨씬 자유롭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별받는 현실에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씨는 “저도 이주민이다 보니 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받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는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태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호주에 정착한 임혜빈 씨는 당시를 ‘정보도, 사람도 없던 고립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임씨는 “처음엔 한국 슈퍼마켓에만 의지했다. 영어가 부족하니 어디든 가기가 두려웠다. 지금은 정착 지원 정보도 많고, 부동산·보험 같은 분야에도 한인들이 진출해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며 사회복지사 길을 택한 그는, 일터에서 다양한 이민자들의 사연을 매일 접한다.
그는 “예전엔 한국 이름을 쓰면 이력서에서 걸러질까 두려워 영어 이름을 따로 써야 했다. 지금은 K-컬처 덕분인지 한국인 위상도 달라졌다. 그런 걸 보면 참 뿌듯하고 시대가 많이 달라졌구나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호주로 모실까 싶어 ‘부모 초청 비자’ 등도 알아봤지만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임 씨는 “부모님을 호주로 모시고 싶지만, 나이 제한과 제도적 장벽이 큰 부분도 있다”며 “결국은 노후를 따로 보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아픔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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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배우는 현지인들 보니…새로운 도전 할 용기 생겨
광주 동신대를 졸업한 임주희(24)씨는 어학연수생으로 브리즈번에 도착한 지 3주를 막 지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 압박이 심했지만, 새로운 세상을 접하며 마음이 훨씬 편하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극복하기 위해 기숙사에서 다른 나라 학생들과 부딪히며 생활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재밌는 일상이다.
올해 말 멜버른으로 이동해 카페 아르바이트에 도전할 계획이라는 임 씨는 “광주에서 알바할 땐 외국인을 그저 ‘손님’으로만 봤는데, 여기선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일도 하는 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들처럼 도전을 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 김재민 |
공식 지원센터·커뮤니티 도움…브리즈번 잘 갖춰진 제도 부러워
워킹홀리데이 3년차가 된 김예준(25)씨는 “호주는 집 문화 중심이라 파티나 모임도 대부분 집에서 이뤄진다. 여긴 새벽 4~5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2~3시에 끝나니, 남은 시간은 온전히 자기 생활을 즐길 수 있다”며 “공장 일도 한국과 달리 빨리빨리보다 천천히, 여유로운 분위기라 그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어 김씨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어울리며 지내는 문화라 여기서는 내가 외국인이지만 외롭지 않았다. 또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잘 적응할 수 있었다”며 “공식 지원센터도 있지만 커뮤니티 모임에서 실질적인 도움과 조언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브리즈번에서 만난 이들의 경험은 세대별로 달랐지만 “제도가 잘 갖춰진 사회라서 이민이 가능성이 됐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이미 다문화와 이민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지만 제도와 인식의 장벽은 여전히 높은 한국 사회에서 브리즈번의 사례는 지역 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브리즈번은 다문화 교육·노동·정착 정책이 잘 마련된 도시에서 인구 감소와 다문화 갈등이라는 과제를 안은 한국 사회가 살펴볼 지점이 많다.
![]() 임주희 |
병원·행정기관 등 통역서비스…이민자 적응 돕는 시스템 중요
오드 버나드 인구통계학자이자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교수는 “호주 인구 증가의 60~70%는 이민자로 인한 것”이라고 단언하며 “호주는 원주민이 아니면 모두가 이민자다. 1세대든 5세대든 조상이 호주 원주민이 아니다. 원주민 인구 비율은 3%밖에 되지 않고, 결국 97%가 결국 이민자라서 호주 인구 성장은 이민자가 없으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버나드 교수는 “코로나 전까지 매년 30만 명이던 순유입 인구가 최근엔 60만 명까지 늘었다”며 “호주에서는 여성 한 명당 1.6명의 아이를 낳는다. 인구가 계속 유지되려면 2.1명이 돼야 하는데, 이민자들이 많아 30%는 이민자들을 통해 인구가 유지되고 있고, 70%는 호주인이 1.6명 정도 낳는 걸로 유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가 다문화 사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과 생활 속 제도를 꼽았다. 호주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부터 매년 ‘하모니 데이(Harmony Day)’ 같은 다문화 존중 교육을 진행한다. 조화롭게 어울리는 날을 만들어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음식을 소개하고, 자신 또는 부모님이 태어난 나라의 국기를 들고 행진을 하는 등 행사를 열어 자연스럽게 이민자들을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인종 학생들이 많아 그들에게는 당연한 문화가 되고 융합이 잘 이뤄지는 효과가 있다.
또 이민자들을 위한 통역 서비스가 잘 마련돼 있다. 병원·행정기관에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해 언어 장벽이 삶의 벽이 되지 않도록 한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노동법도 중요한 축이다. 교수는 호주의 다문화 정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숙련 이민(skilled migration) 시스템을 꼽았다.
버나드 교수는 “국제학생들의 40% 이상이 숙련 이민으로 영주권 따서 정착하고 있으며 보통 이민자들이 숙련 이민 시스템으로 오기 때문에 오자마자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고 구성원으로 적응이 빠르다보니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분위기가 잘 형성됐다”고 말했다.
호주 노동법은 내국인과 이민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농업 분야에서 워킹홀리데이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가 드러났지만, 2023년 정부가 이민 시스템을 전면 검토해 개선책을 내놓았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또 그는 대도시 쏠림을 막고 중소도시 인구 균형을 맞추기 위해 1990년대 중반 도입된 ‘지역 비자 제도’를 소개했다.
버나드 교수는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등을 제외한 중소도시에 4~5년 거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된다”며 “최근에는 유학생들이 이 제도를 통해 타스매니아 같은 곳에 정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0년 뒤 절반은 남고 절반은 대도시로 이동한다. 국제 유학생들이 중소도시에서 일을 시작해 영주권을 따 호주에 정착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잘 나아가기 위한 조언을 남긴 그는 “한국은 언어 장벽이 너무 높고 다문화 비율이 늘고 있지만 거부감이 많은 것 같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데 이민 확대 없이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며 “국민이 ‘이민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적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호주 브리즈번=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호주 브리즈번=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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