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post-truth)에 대하여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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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post-truth)에 대하여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2025년 05월 26일(월) 00:00
진리가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공포나 분노 또는 희망을 자극하는 주장이 진실이나 증거에 따른 주장을 압도하는 사회, 인플루언서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 객관적인 논리보다 더 타당한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 불편한 진실이나 반대 의견은 무조건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는 사회, 진실이 객관적인 평가보다 정치적·종교적·문화적 집단충성도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를 우리는 탈진실(post-truth) 사회라 부른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다. 즉 탈진실이란 시간상으로 진실 이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존재와 가치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탈진실이 오늘날 심각한 문제점으로 떠오른 이유는 정치적 스캔들과 부패, 그리고 포퓰리즘 등으로 정부, 주요 미디어, 전문가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약화 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념적 차이로 극단적 양극화가 일어나면서 불편한 사실은 편견이나 가짜로 치부하고, 진실을 객관적 사실이 아닌 의견의 문제로 재구성하여 진실에 저항하거나 거부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 저널리즘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언론인 감축, 기관 통폐합, 탐사 저널리즘의 감소가 일어나면서 대중의 고품질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동안 디지털 미디어와 플랫폼들의 검증되지 않은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사실 보도보다 더 빨리 더 멀리 펴져 나가고 있는 것도 탈진실의 심각성 인식에 한몫했다.

탈진실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기존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이 원하는 결과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보를 편향적으로 추론한다. 사람들은 결국 에코 챔버(echo chamber)와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혀 객관적인 진실의 개념을 거부하고 진실 혹은 거짓은 주관적이거나 사회적 구성개념이라는 생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진실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관점의 문제로 변한다.

탈진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매우 위험한 수준에 있다. 정치적 논쟁에서는 논리보다 감정적 자극을 유발하는 발언이 여론을 더 크게 움직이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갈등이 극단화되어 ‘내 편’의 정보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상대 편’의 정보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불신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알고리즘 기반의 콘텐츠 소비가 강화되면서 사용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접하게 되어 반대 의견이나 객관적 사실과는 점점 멀어지는 인지적 편향이 강화되고 있다.

근래 들어 자칭 전문가와 유튜버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과학적 검증 없이도 대중의 감정에 부합하기만 하면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현상이 탈진실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탈진실을 더 가속화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소리(bullshit)’다. 프린스턴대학교 명예교수인 도덕철학자 프랭크 퍼트의 견해에 따르면 개소리란 말하는 사람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듣는 사람의 인상이나 감정을 겨냥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려고 하는 말이다.

예컨대, 타당성도 검토하지 않고 내뱉고 보는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 경쟁력 강화라는 허울뿐인 이유를 들며 인원 감축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기업가의 말, 전공도 아니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아는 체하는 자칭 식자(識者)들의 빈 소리, 수퍼챗을 겨냥한 유튜버들의 검증되지도 않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말들이 모두 개소리다. 프랭크 퍼트는 자신의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지만 개소리쟁이는 진실을 의식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쟁이보다 개소리쟁이가 진실에 더 큰 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보편적 진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개소리에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활용하며, 책임감 있게 생산하고 공유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된 대화 채널을 만들고 다원적 시각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정보는 확인하고 공유해야 하며 가짜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콘텐츠 검열이나 사용자 경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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