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통해 발견한 삶의 가치들…그림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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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통해 발견한 삶의 가치들…그림으로의 초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 이유리 지음
2025년 01월 17일(금) 00:00
‘곤충의 아버지’라 일컫는 앙리 파브르보다 훨씬 앞서 곤충을 연구한 이가 있다. 바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그는 그림도 그렸던 예술가였다. 최초 여성 곤충학자를 넘어 사이언스 아트계의 선구자로 설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와의 절연이었다.

그러나 메리안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8세 때 8살이나 연상인 화가 요한 안드레이스 그라프와 결혼했다. 그라프는 메리안의 계부인 화가 야곱 마렐의 제자였다. 문제는 그라프가 술주정뱅이었다는 사실이다. 별수 없이 메리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날이었지만 메리안은 28세에 동판화 화집 ‘꽃 그림책’을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지만 1679년 나비와 나방 등 186종의 곤충을 기록한 곤충도감 ‘애벌레의 경이로운 변태와 그 특별한 식탁’을 출간했다. 남편의 눈을 의식해 공동으로 작업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표지에 “사랑하는 요한 안드레아스 그라프의 친절한 도움으로”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얼마 후 메리안은 그마저도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후일 네덜란드판을 출간할 때 ‘그라프’라는 글자가 있는 줄기 위에 나뭇잎을 그려 넣어 남편의 이름을 지운다. “이 30년 사이에 메리안은 드디어 그라프를 자신의 인생에서 도려내는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작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작품을 봤다는 의미다. 그림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작가 이유리는 “그림을 보기 전과 후, 우리 삶의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 작가가 이번에 펴낸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는 예술 작품을 보며 깨달은 것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작가, 기자로도 일한 그는 ‘기울어진 미술관’,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을 펴낸 바 있다.

저자는 “그림은 작가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와 사회, 동료 시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응시하고 있는지 가감 없이 알려주었다”며 “예술가들은 영락없이 그 시대가 낳은 인물이었다. 당대의 공기를 체화한 사회인이기도 했던 셈”이라고 언급했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에 대한 저자의 단상은 깊고 감성적이다. 작품은 불꽃놀이를 묘사한 것인데, 일반적인 불꽃놀이와는 결이 다르다. 휘슬러는 밤하늘을 물들이는 화려한 불꽃이 아닌 절정이 지난 후의 소멸의 과정을 포착했다.

“잘게 부서진 빛은 마치 하늘에 티를 남기듯 퍼져 있고” 등의 표현은 잔치 끝난 뒤끝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빗댄 것 같다. 저자는 절정을 지난 사라져가는 그 순간이 “사무치게 아름다웠다”고 고백한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밝고 예쁜 것만이 아닌 슬픔과 고통의 과정을 통해 삶의 또 다른 가치와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에 대한 해석도 인상적이다. 대체로 인간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를 간섭당한다고 본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의 삶을 멋대로 규정되게끔 놔 두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다.

‘지옥에서의 자화상’은 지옥에서도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뭉크 곁에 바짝 붙어 있는 그림자는 또 다른 존재다. 즉 ‘내면 아이’다. 뭉크의 유년은 병약했으며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자신을 돌봐주던 누이이자 ‘제2의 어머니’ 소리마저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에 마냥 머무르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뜻보다는 자신의 길을 간다.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며 슬픔과 분노, 우울에 맞섰다.

저자는 이렇게 되뇌인다. “맑은 말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며 ‘내면 아이’의 이론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단단한 어른’으로 맞서야 한다고.

이밖에 책에는 ‘제임스 엔소르를 통해 본 인간의 위선과 가면’, ‘페릭스 발로통과 삶의 예측불가능성’, ‘에밀 놀데의 삶을 통해 본 중립의 함정’ 등에 대한 사유와 글을 만날 수 있다.

<수오서재·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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