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질문이 소설 쓰기의 핵심 동인
한강 스웨덴 한림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소설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
“소설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
![]() 소설가 한강이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8살 때 썼던 시를 공개했다. 강연은 한국어로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유튜브에 공개된 한강 작가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다.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란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고 말했다.
상자 안에 놓인 일기장들과 8편의 시를 묶은 ‘시집’이라고 제목을 붙인 종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반을 접은 스테이플로 중첩한 책이었고 제목 아래 두 개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1979년이라는 내지가 적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작가는 “8살 아이답게 천진한 아이답게 사랑이라는 시가 들어왔다. 40여년 시간을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시간이 떠올랐다. 아버지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난 철제 스테이프, 서울로 이사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시들을 모아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8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돼 있다”며 “뛰는 가슴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그것을 연결하는 금실, 빛을 내는 시…”라고 언급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고 언급했다. “시를 쓰는 일도 장편소설도 좋아하는데 장편소설을 쓸 때는 개인적 삶의 기억과 맞바꾸게 된다”며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에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나의 장편을 쓸 때마다 질문을 한다”고 했다.
작가는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작품을 끝맺게 된다고 회고했다. 인간의 폭력과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새 작품으로 나아가는 힘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인간이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작가는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이 가져온 ‘광주 사진첩’을 보고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과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고 언급했었다.
‘채식주의자’에 투영된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동안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에 머물러 있었다.
“책은 채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와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이다”며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질문했며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다. 이 소설 전체가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부연했다.
폭력의 문제는 소설 ‘바람이 분다’에서도 되풀이된다. 작가는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고 질문을 했다”며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분투한다”고 덧붙였다.
장편 ‘희랍어 시간’ 또한 폭력의 질문과 연계돼 있다. 말을 잊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은 서로에게 가장 연함을 보여줌으로써 가장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
소설마다 이어진 질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그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까지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강은 “2∼3년 전부터는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작가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부연했다.
이처럼 한강은 강연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며 각각의 작품에 대한 소회와 감정을 피력했다. 집필 중인 작품과 앞으로의 계획도 털어놨다.
차기 작품에 대해선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어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집필 중인 작품을 언급했다.
또한 작가는 “완성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라며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 마지막에 작가는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며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끝을 맺었다.
작가는 이날 ‘언어의 실’로 연결된 전 세계 독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한편 한강은 오는 10일 시상식 무대에 올라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받을 예정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8살 때 썼던 시를 공개했다. 강연은 한국어로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란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고 말했다.
상자 안에 놓인 일기장들과 8편의 시를 묶은 ‘시집’이라고 제목을 붙인 종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반을 접은 스테이플로 중첩한 책이었고 제목 아래 두 개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1979년이라는 내지가 적혀 있었다고 회고했다.
작가는 “8살 아이답게 천진한 아이답게 사랑이라는 시가 들어왔다. 40여년 시간을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시간이 떠올랐다. 아버지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난 철제 스테이프, 서울로 이사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시들을 모아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후 시간이 흘러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고 언급했다. “시를 쓰는 일도 장편소설도 좋아하는데 장편소설을 쓸 때는 개인적 삶의 기억과 맞바꾸게 된다”며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에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나의 장편을 쓸 때마다 질문을 한다”고 했다.
작가는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작품을 끝맺게 된다고 회고했다. 인간의 폭력과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새 작품으로 나아가는 힘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인간이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작가는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이 가져온 ‘광주 사진첩’을 보고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과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고 언급했었다.
‘채식주의자’에 투영된 ‘폭력’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동안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에 머물러 있었다.
“책은 채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와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이다”며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질문했며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다. 이 소설 전체가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부연했다.
폭력의 문제는 소설 ‘바람이 분다’에서도 되풀이된다. 작가는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고 질문을 했다”며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분투한다”고 덧붙였다.
장편 ‘희랍어 시간’ 또한 폭력의 질문과 연계돼 있다. 말을 잊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은 서로에게 가장 연함을 보여줌으로써 가장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
소설마다 이어진 질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그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까지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강은 “2∼3년 전부터는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작가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부연했다.
이처럼 한강은 강연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며 각각의 작품에 대한 소회와 감정을 피력했다. 집필 중인 작품과 앞으로의 계획도 털어놨다.
차기 작품에 대해선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어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집필 중인 작품을 언급했다.
또한 작가는 “완성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라며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 마지막에 작가는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며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끝을 맺었다.
작가는 이날 ‘언어의 실’로 연결된 전 세계 독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한편 한강은 오는 10일 시상식 무대에 올라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받을 예정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