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점에 대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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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점에 대한 통찰
오직, 그림 - 박영택 지음
2024년 11월 23일(토) 14:00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만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열심히 탐구해야 할 것 같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감동이라는 단어는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의 홍수 속에서 관람자들은 때론 ‘미아’가 돼 버렸는지 모른다.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의 새 책 ‘오직, 그림-세계 미술사의 획기적인 그림 51’은 ‘회화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철저하게 내 자신이 매혹된 회화작품들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회화가 무엇인지 엿보고 싶어서” 글을 썼고, 고대 로마시대에 제작된 프레스코화에서부터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51명 작가의 대표작 51점을 선정, 제작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형식의 미술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전문가의 진중한 해석과 안목이 담긴 책은 즐거운 그림읽기를 인도하는 근사한 안내서다. 묵직하지만, 어렵지 않게 읽히는 점도 책의 장점이다.

긴 시간의 서양 회화를 단 51점으로 축약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자가 책을 쓴 건 “나만의 서양회화 수집 목록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 한 점 한 점을 만나다 보면 저자처럼 ‘나만의 컬렉션’을 꾸려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컵 속의 물과 장미’(1630년대)
첫 번째 작품은 1세기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가 미상의 프레스코화 ‘꽃을 꺾고 있는 처녀’다. “구체적인 풍경을 지워내고 초록색만이 모든 것을 대리하는” 그림 속에서 꽃을 꺾는 여인의 뒷모습은 기품과 우아함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고흐, 모네, 피카소, 클림트, 로스코, 페르메이르, 뭉크 등 유명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 중 선택한 ‘단 한점’을 살피는 일이다. 고흐의 그림 가운데 저자가 고른 것은 ‘아를에서 그린 자화상’(1888)이다. 머리를 바싹 깎고 갈색의 소박한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동양의 승려를 연상시키는데, 여러 자화상 중 “가장 선명하게 그의 존재를 인식시킨다고 생각해” 고른 작품이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에서 그린 자화상’(1888년) <마음산책 제공>
앤디 워홀의 작품 중에서는 생애 마지막 작품인, 강렬한 이미지의 ‘레닌’을 선택했다. “색채들 간의 관계를 통해 차가우면서도 엄정한 레닌의 정신 세계를 그려냈”고, “보색 대비의 강한 차이가 어두운 배경에 묻힌 레닌의 존재를 호명하는 것도 같다”는 글처럼 그림을 보면 레닌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혁명’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는 ‘발견의 즐거움’이다. 아무래도 현대작가는 낯설기 마련인데 책을 통해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만나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까지 관심이 확장되는 경험은 행복하다.

빌헬름 사스날의 ‘카파와 리타’(2011)가 그 중 하나다. “그저 흔한 일상 속 정경이지만 이런 장면을 이토록 매혹적인 회화로 만드는 솜씨가 대단히 감각적이다”라고 설명한 그림은 흐트러진 침대 위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포착하고 있다. “따분한 일상을 표상하는 데 집중하는 작가”라는 설명에 그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정물화의 매력을 알게 해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컵 속의 물과 장미’(1630년대)는 새롭게 발견한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이다. “적막한 공간에 단출하게 놓인 몇 가지 기물들이 이룬 무겁고 고요한 세계”를 펼쳐 놓은 작가는 “접시와 물컵, 꽃 한 송이만으로도 기품 있고 고혹적인 어느 순간을 멈춰놓았”고 그 분위기는 감상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마지막 작품은 키키 스미스의 태피스트리 작품 ‘하늘’(2012)이다. 곁에 두고 한 점 한 점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양미술사의 흐름도 알게 된다.

<마음산책·2만6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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