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페르소나 펼쳐 보이다…마티네 콘서트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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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페르소나 펼쳐 보이다…마티네 콘서트의 ‘여유’
광주예술의전당 ‘11시 음악산책’ 올해 첫 공연…아나운서 이상협 출연
시인, 음악가, 미디어 아티스트, 아나운서 등 카멜레온 개성 보여줘
2024년 08월 28일(수) 19:15
지난 27일 오전 광주예술의전당에서 ‘11시 음악산책’이 펼쳐졌다. 첫 콘서트가이드로 아나운서 이상협이 출연해 ‘당신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나요?’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광주예술의전당 제공>
다섯 번의 ‘첫인사’가 이어졌다. 이날 공연의 출연진은 아나운서 이상협 한 명뿐이었으나 시인, 음악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다양한 예인의 면모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갖추고 있는 ‘멀티 페르소나’는 다빈치와 같이 여러 예술 장르에 소양 있는 르네상스인을 떠올리게 했다. 이 씨는 단출한 라인업과 미니멀한 세션에도 불구, 공연을 풍부하게 채워 나갔다.

지난 27일 오전 11시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당신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나요?’가 펼쳐졌다. 기획공연 ‘11시 음악산책’ 시리즈 일환으로 진행된 첫 무대였으며, 이날 공연에는 콘서트 가이드로 아나운서 이상협이 자리했다.

지난해와 같이 중·장년 여성 관객들이 객석 대부분을 차지했다. 개중에는 KBS클래식 FM ‘당신과 밤과 음악’ 애청자들이 많았으며 시니어 관객도 눈에 띄었다. 오전에 진행하는 ‘마티네 콘서트’가 입소문을 타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였다.

이상협은 방송과 시, 음악 등을 종횡무진해 왔다. 고려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뒤 KBS 아나운서로 일하며 ‘추적 60분’, ‘역사저널, 그날’ 등에 목소리를 입혔다.

그는 1997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경력을 토대로 2010년 앨범 ‘봄, 밤’ 등을 발매한 음악가(활동명 에고트립 )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을 출간했으며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등, 팔방미인형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생일날 관객들 앞에 서니 특별한 선물을 받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연 이 씨는 “오늘 공연은 ‘이상협’이라는 바다를 탐색하며, 동시에 관객들의 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양한 ‘나’를 갖고 살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나 자신’이며, 그 여집합이 세계일 뿐”이라 덧붙였다.

이 씨는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헤라클레이토스의 경구 ‘만물은 유전하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를 예로 들었다. 70여 개 이름을 지닌 페르난도 페소아, 미술부터 건축까지 다방면에 능통했던 다빈치에 대한 사례도 언급했다.

이 씨는 “현대사회에서 삶에 변화를 주기란 쉽지 않다”며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기상 시간을 바꾸는 일, 경음악을 들어보거나 평소 가지 않던 레바논 식당에 방문해 보는 등 작게나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아나운서, 시인, 음악가, 미디어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협.
그의 다양한 예술가적 면모가 주를 이루는 공연이었기에, 이 씨에 대한 긴 소개는 불가피했을 터다. 다만 오롯이 ‘휴먼파워’에 기대는 공연은 관객 대부분이 출연진의 약력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 낭송, 연주 분량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남았다.

다소 키치한 슬라이드 구성과 정적인 전반부 연출 등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이 씨의 예술가로서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공연 장면이었다.

그는 뒤편에 놓았던 주황색 머플러를 두르며 “안녕하세요 시인 이상협입니다”라고 자신을 다시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자신의 시 ‘정동산책’과 ‘가장 가까운 바다’를 낭독했다. 한 편은 시 원문을 화면에 송출했고, 다른 한 편은 목소리로만 들려줬다.

한양대 음대를 졸업하고 한예종에 재학 중인 김남훈의 바순 연주와 미국 버클리음대를 졸업한 재즈피아니스트 KTG 박상현의 하모니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테마 송인 시그널 송 빌 더글라스의 ‘Hymn’도 울려 퍼졌다.

이 씨는 기타를 꺼내 들더니 즉석에서 ‘기타리스트로’ 변신하기도 했다. EgoTrip으로 활동하던 당시 발표한 자신의 노래 ‘사막별’을 연주한 뒤 “어렵다”는 말로 끝맺었다.

지난해 공연이 콘서트 가이드(김이곤)의 입담과 한 분야에 대한 해박함으로 관객을 ‘압도’했다면, 올해는 이상협의 카멜레온 매력과 ‘개인기’를 통해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듯했다.

그가 들려준 철학자 세네카의 명문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어려워서 많은 것들을 하지 않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도전하지 않기에 어려운 것이다”는 말은 도전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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