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기행] 파란 하늘과 맞닿은 곳…“대지에 미술관을 새겨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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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건축기행] 파란 하늘과 맞닿은 곳…“대지에 미술관을 새겨 나간다”
<3> 박수근 미술관
강원도 양구 생가터에 건립
화강석 깨고 괴어 쌓아 올린
미술관 벽 따라 발걸음
너른 풀밭 한쪽 ‘박수근 조각상’
7가지 주제 기획전시실
기념전시실엔 엽서·서신 등 자료들
2024년 02월 04일(일) 19:55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 화백의 생가터에 둥지를 틀었다. 박 화백 작품의 특징인 화강암 질감을 입체적으로 옮겨놓은 듯한 미술관 외벽이 인상적이다. <강원일보 DB>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 화백. 그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현재는 양구읍) 정림리다.

박화백은 위로 누나만 둘이 있는 집 안에 태어난 귀한 장남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광산업을 했기 때문에 꽤나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짚신 아니면 맨발로 들이나 산으로 뛰어다닐 때, 가죽 신을 신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누렸을 풍족한 삶의 크기를 쉬이 가늠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순탄할 것만 같던 그의 어린시절의 삶은 순식간에 어려워진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어려운 형편으로 변해 버린 것. 열 두살 되던 해, 양구보통초교를 다니던 어린 박수근은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그만 넋을 잃고 만다.

그는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겠다”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몰랐던 그에게 고향 양구는 그대로 화지였고, 그대로 팔레트였고, 그대로 작품의 소재였다.

박수근미술관은 주변의 어떤 간섭도 없이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다. <강원일보 DB>
◇대지 위에서 박수근의 마띠에르를 만나다

그런 박화백의 고향, 그 중에서도 그가 태어난 생가터에 올려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박수근 기념전시관)은 주변에 어떠한 간섭도 없이 파란색 하늘과 맞닿아 있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어느 건축가의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 나간다”는 말을 고스란히 실천한 그런 곳이다.

미술관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면 이내 조우하게 되는 미술관의 벽. 화강석을 깨고, 괴어 높게 쌓아올린 그 벽은 박수근 화백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특유의 화강암 질감을 입체적으로 옮겨 놓아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설계 특성상 이 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술관 벽면을 따라 반 바퀴 정도, 안 쪽으로 또 안 쪽으로 흐르게 된다. 그 길의 끝에는 비교적 너른 풀밭이 보이고 곁에 박수근의 조각상(박수근화백상)이 동산을 뒤로 하고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미술관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1959년 서울 창신동 집 마루에서 부인과 막내딸 인애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 속 박수근의 모습 그대로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 그대로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작은 냇가를 품은 풍경은 마치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세트장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너른 미술관 풀밭에 자리한 박수근 조각상. <강원일보 DB>
◇박수근의 예술세계, 친구들과 조우하다

2002년 10월 문을 연 미술관에는 두 개의 전시실(기념·기획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기념전시실에는 박수근화백의 생전 모습을 담은 흑백의 사진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다른 한쪽 면은 그의 연보로 가득 차 있다. 또 박수근이 그의 아내 김복순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동화책과 수집해 놓은 엽서, 박수근이 쓴 연하장, 그가 직접 새긴 도장, 그의 후원자였던 마가렛 밀러 여사 등 지인들이 보낸 서신, 그가 물감을 사고 받은 재료 구입 영수증 등 다양한 자료가 유리벽 아래로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박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한 내용들을 한 눈에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자리를 옮겨 중정을 스치 듯 지나치면 기획전시실을 만나게 되는데 이 곳에서는 박수근과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작품이 다양한 주제로 나눠져 전시되고 있다. 전체 주제는 모두 7가지. 첫번째 주제는 박수근 화백의 작품 속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기다림’이다. 이어 두번째 주제는 ‘그리움’으로 이중섭의 ‘가족과 동네 아이들’과 장욱진, 윤중식의 작품들과 조우할 수 있다. 세번째 주제는 ‘침묵의 대화’. 이 섹션에서는 박수근화백의 ‘굴비’ 를 비롯한 도상봉, 이대원의 정물을, 네번째 주제 ‘추상, 마음으로 읽는 그림’에서는 김환기, 남관, 이응로의 추상화가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다섯번째 주제 ‘한국화의 새바람’과 여섯번째 주제 ‘주호회와 한국 판화’, 일곱 번째 주제 ‘그 시절 그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박수근 작품의 이미지를 차용한 조각품. <강원일보 DB>
◇동산에서 그와 그의 부인을 만나다.

박수근 화백은 별도의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천재적인 면모는 그가 양구에서, 평양과 부산 피난길에서, 서울 창신동에서의 삶 속에서 보여준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장고에 있는 박수근 화백 자료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그가 남긴 유품에는 공간과 시간미(時間美), 아방가르드에 대해 정의한 글을 빼곡히 정리한 메모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기법을 소개한 잡지와 스크랩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그가 서양의 사조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유지했던 것이 단지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남겨진 그의 흔적에서 찾을 수 있었다.

수장고를 나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외부로 통하는 유리문 하나가 나온다. 길을 따라 미술관 맞은편 동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우리의 화가 박수근 선생과 그의 아내 김복순 여사가 여기 고이 잠들어 계시다”라고 쓴 비석이 보인다. 비석을 지나쳐 조금 걷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아담한 묘소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박화백 부부의 묘소이다. 이 곳에서는 매년 박수근 화백의 기일(5월 6일)에 맞춰 조촐하게 추모행사가 열리곤 한다.

◇미술관 전체 5개 전시관으로 확대

보통 박수근미술관하면 가장 먼저 조성된 기념전시관을 말하지만, 미술관 내에서 다양한 활동과 전시가 이어지면서, 102,50㎡의 부지에 5개의 전시관에 자리하게 됐다. 2005년에 세워진 ‘현대미술관’과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건립된 ‘박수근 파빌리온’ 그리고 2020년 개관한 ‘어린이미술관’, ‘라키비움’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어졌다. 미술관 측은 각 전시관마다 정체성과 비젼을 고려한 차별화 전략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미술관 인근에 미석예술인촌을 조성해 전업작가 지원도 하고 있다.

한편 미술관은 개관과 함께 매년 양구군에서 작품을 구입해 현재 박수근화백의 작품 235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근·현대작가 작품 및 자료를 포함해 969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강원일보=오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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