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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살린 ART 투어리즘 선진현장을 가다 <5> 강원도 원주
‘잘 만든’ 미술관 하나 도시의 색깔을 바꾸다
자연·건축·예술 어우러진 도시
꽃과 물, 돌, 빛, 예술이 빚어낸
전원형 미술관 ‘뮤지엄산’
백남준 등 유명작가 작품 한눈에
안도 다다오 ‘청춘’전 29일까지
2023년 10월 05일(목) 19:00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뮤지엄산은 오솔길을 따라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뮤지엄 본관, 스톤가든, 그리고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어져 있다. 워터가든과 본관 사이에 자리한 ‘아치웨이’(Archway·알렉산더 리버만 작)는 마치 미술관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잘만든’ 미술관으로 도시의 색깔을 바꾼 곳이 있다. 바로 강원도 원주다. 인구 36만 여 명의 중소도시이지만 자연과 건축, 예술이 어우러진 관광도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원주의 대표 유원지인 간현관광지와 더불어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린 뮤지엄산(SAN)이 진원지다.

자동차를 타고 강원도 원주 지정면의 오크밸리로 들어서자 ‘한국관광 100선 미술관 ’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지난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5회 연속 선정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를 알리는 현수막이다. 10분 쯤 지나 도착한 미술관 주차장은 평일인데도 대형버스에서부터 자가용까지 이미 수십 여대의 차량들로 가득찼다.

웰컴센터에서 표를 끓고 미술관 정문을 통과하면 화사한 꽃들과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어우러진 가든(garden)이 방문객을 기다린다. 80만 주의 붉은 패랭이꽃과 자작나무가 인상적인 플라워 가든,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조각정원, 뮤지엄 본관이 물위에 떠 있는 듯한 워터 가든, 돌로 만든 전시관으로 구성된 스톤 가든, 제임스터렐관이 2.5km로 이어져 있다.

백남준의 ‘정약용’(왼쪽)과 ‘퀴리부인’(1993년 작). 과거의 인물이나 영웅을 TV와 라디오 케이스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가장 먼저 플라워가든의 한복판에 설치된 붉은색 대형 조형물이 눈에 띈다. 세계적인 조각가 마크 디 수베로의 대형 모빌조각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다. 파란 하늘과 초록색 잔디, 빨간색의 강렬한 대비가 주는 풍경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 곳에서 뮤지엄 본관까지 이어지는 플라워 가든의 전체 길이는 700m.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뮤지엄 산은 꽃과 물, 돌, 빛, 예술이 빚어낸 ‘전원형 미술관’이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건 워터가든과 뮤지엄 본관 사이에 설치된 조각작품이다. 대형금속파이프를 연결해 사람 인(人)자를 연상시키는 형상의 ‘아치웨이’(Archway·알렉산더 리버만 작)로 마치 미술관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해발 275m에 둥지를 튼 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지난 2013년 한솔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이듬해 현재의 명칭으로 바뀐 뮤지엄산은 대지 22만 평, 부지 7만 1172㎡로 국내 최고의 높이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공간은 5445㎡, 총 관람거리는 2,3km. 제대로 둘러 보려면 2시간이 소요된다.

미술관은 한눈에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노출콘크리트로 꾸며졌다. 하지만 미술관 본관 외벽은 경기도에서 들여온 파주석과 원주산 귀래석들이다. 안도 다다오는 미술관의 창립자인 고 이인희(1928~2019) 전 한솔그룹 고문의 제안을 받고 자연과 인간, 예술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으로 설계했다. 이 고문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큰딸로 40년간 백남준 등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 수백 여점을 수집한 컬렉터였다.

개관 이후 매년 20만 여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뮤지엄산이 탄생하기 까지에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특히 안도 다다오와 이인희 고문과의 일화는 유명하다. 서울에서 두시간이나 걸리는 오지(원주)에 누가 그림을 보러 오겠냐며 이 고문의 제안을 마뜩치 않게 여기던 안도에게 “세계에서 찾아 보기 힘든 미술관을 만들면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뮤지엄산의 야외카페에서 관람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실, 뮤지엄산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산’이 아니다. 산(SAN)은 ‘스페이스 아트 네이처(Space Art Nature)’의 약자로 자연 속에서 예술을 만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번잡한 일상에 지친 이들의 휴식과 힐링으로 최적의 관광지인 셈이다.

미술관은 한솔종이박물관에서 출발한 페이퍼갤러리, 소장품과 기획전을 보여주는 청조(이인희 고문의 호)갤러리,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이 전시된 백남준 홀이 안도 다다오의 사각, 삼각, 원형의 윙 구조물을 통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뭐니뭐니해도 뮤지엄산의 하이라이트는 제임스 터렐의 전시관인 작품 ‘간츠펠트’. 관람객들은 시시각각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하는 전시관의 스크린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빛의 매력과 공간의 무한함에 빠진다.

본관 건물에서 나오면 미국 작가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연인’,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스톤가든과 마주하게 된다. 신라고분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곳에는 9개의 돌 둔덕이 놓여 있다.

이와함께 안도 다다오의 명상관은 관람객들이 즐겨 찾는 필수 코스다. 지난 2018년 1월 문을 연 명상관에 이어 지난 7월 개관한 두번째 ‘빛의 공간’(The Space of Light)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명상관은 약 132㎡짜리 돌무덤 형태의 공간으로, 바닥부터 천장으로 이어지는 선형 공간을 통해 빛이 들어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의 공간’은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빛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공간으로 십자 모양의 빛을 경험할 수 있다.

취재차 방문했던 지난 달 중순에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뮤지엄산의 설계자인 안도 다다오의 개인전 ‘청춘’(Youth)을 감상하려는 관람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지난 4월 개막한 전시는 본래 7월 30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3개월만에 15만 명이 다녀가는 등 성황을 거두자 오는 10월 29일까지로 연장했다.

안도 다다오 전시는 개막 이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미 일본, 중국, 프랑스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진 바 있지만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건축가로서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의 도안, 모형, 건설 과정이 담긴 영상이 미술관 본관 3개 전시실에서 선보여 관람객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뮤지엄산을 설계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청춘의 사과’ 조형물.
특히 미술관 본관 입구에 놓인 조형물 ‘청춘의 사과’는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3m 높이의 푸른 사과에는 일본어로 ‘영원한 청춘에게’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안도는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빛을 보면서 항상 희망을 추구하는 마음이 담긴 사과를 만지면 1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뮤지엄산은 원주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고 있다. 과거 여름시즌의 여행객들을 겨냥했던 트렌드에서 탈피해 문화, 예술 공간과 콘텐츠를 엮은 전천후 아트 투어리즘으로 진화중이다. 강원 관광의 힘이자 미래다.

/글·사진=원주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