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범의 두 얼굴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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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범의 두 얼굴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7월 17일(월) 00:00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외국인 가운데 독일 상인 오페르트(1832∼1903)만큼 극단적 평가가 내려진 인물은 드물다. 그의 행적을 다룬 논문만도 20여 편을 헤아린다. 압도적인 평가는 제국주의 열망을 드러낸 패륜 범죄의 장본인이다. 그는 1864년 흥선대원군이 통상 교섭을 거부하자 악마와 손을 잡는다. 남연군(흥선대원군 아버지) 묘를 파헤쳐 부장품을 꺼내 흥선대원군과 통상 거래를 관철하려 했다. 도굴은 봉분만 훼손하고 실패했다. 관을 덮은 석회가 시멘트처럼 단단해져 파괴하기 힘든 회곽묘(灰槨墓)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르골(自鳴琴)을 국내에 첫선 보이고 우리 음악을 서양에 소개하기도 했다. 1866년 2월 영국 상선을 타고 충남 해미현 서면 조금진(당진시 대회지면)에 닿아 현감 일행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선상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녹음한 대형 오르골 소리를 들려줬다.

그는 1880년 발간한 여행기 ‘금단의 나라 조선’(원제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에서는 우리 음악 수준을 추켜세웠다. “중국인이 서양 음악을 무시하고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우월하다고 동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조선인은 그것의 감상법을 알고 있으며, 음악을 매우 즐겁게 듣는다. 음악적 소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이방인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서양 우월주의를 엿보게 하는 대목도 있다. “한국인들은 중국인처럼 단조롭고 처량한 가성으로 노래를 부르며 거의 고음을 내지 않는다”고 썼다. 우리 악기를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징과 찍찍대는 음색을 내는 피리’라고 평가절하했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는 최근 학술지 ‘글로벌 문화 콘텐츠’에 게재한 논문에서 오페르트의 음악에 대한 글을 분석해 ‘한국 음악 평론을 남긴 최초의 서양인’이라며 음악 측면에서 재평가 필요성을 강조했다. K팝 원동력으로 꼽히는 한국인의 자질을 일찍이 알아봤다는 점에서다. 김 교수의 논문은 희대의 도굴범과 K팝 원류를 주목한 외국인, 오페르트의 두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곤혹스런 질문을 던진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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