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의 재발견 - 송기동 예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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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의 재발견 - 송기동 예향부장
2022년 12월 14일(수) 00:45
“바다에서 길을 잃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팡’, 중국의 남쪽 항구에 도달한 ‘서양병’이 우리 땅에서는 ‘빵’으로 정착한다. 전병과 팡이 만나 단팥빵이 만들어지고, 오븐이 아닌 찜통을 만나 찐빵이 만들어진다.”

한성우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지난 2016년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빵을 비롯한 모든 음식은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섞이고 또 발전한다. 그것이 음식이다”며 빵의 기나긴 여정을 설명한다.

붕어빵·풀빵은 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정통 빵은 아니다.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 알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 의해 밀가루 무상 공급이 이뤄진 데 따른 시대적 산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 신문 지면을 검색해 보면 풀빵이라는 말은 1966년, 붕어빵은 1980년에야 처음 등장한다.

풀빵·붕어빵은 서민들 삶의 애환을 품은 길거리 ‘소울 푸드’였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겨울철이면 사람 왕래가 잦은 길거리 리어카 노점에서 팔던 풀빵·붕어빵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책자를 불태우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점심을 거르고 일하는 나이 어린 여공들을 위해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었다. 정작 자신은 청계천에서 도봉산 아래 집까지 걸어가다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자기도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이었던 추억의 붕어빵이 변신하고 있다. 요즘 충장로 1가를 지나다 보면 붕어빵 가게 앞에 펼쳐진 장사진을 보게 된다. 파는 사람도, 줄지어 사는 사람도 모두 2030 청년세대이다. 예전처럼 단팥이 든 붕어빵이 아니라 ‘팥크림 치즈’와 ‘피자 붕어빵’ ‘고구마 크림치즈’ 등 새롭다. 가격도 개당 2000원이다.

새 메뉴로 차별화한 붕어빵은 ‘붕세권’이라는 용어나 붕어빵 노점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에서 보듯 젊은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중·노년에게 추억의 거리 간식인 붕어빵이 신세대들에게는 ‘뉴트로’(New+Retro: 新復古) 음식인 셈이다. 젊은 세대 손에서 노릇노릇하고 바삭하게 잘 구워진 새로운 붕어빵 한 마리가 한겨울을 나는 사람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든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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