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범벅 가구·살림살이…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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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범벅 가구·살림살이…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요
광주시 북구 문화동 수해 복구 현장 자원봉사 참여해보니
30도 웃도는 날씨에 금세 땀 범벅…20분만에 5t 트럭 폐기물 가득
피해주민들 전기 끊기고 가전제품도 쓸 수 없어 마을회관서 숙식
5년만에 또 침수 피해 주민들 “이제 놀랍지도 않고 그저 착잡” 한숨
2025년 07월 21일(월) 20:40
21일 광주시 북구 문화동의 한 주택에서 광주일보 양재희 기자와 임예솔, 정예지 인턴기자가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폭우로 수해 복구 작업이 한창인 21일 광주시 북구 문화동 주택가 일대. 불과 나흘 전만 해도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였을 이곳 주택들은 수마에 휩쓸린 뒤 온갖 세간살이가 물에 푹 젖은 채 뒤엉켜 처참한 모습이었다.

광주일보 취재팀은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제31보병사단 장병 35명과 함께 수해 복구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 침수 피해를 입은 가구를 돌며 진흙이 범벅된 가구와 세간살이 등을 빼냈다. 주택 문 앞에 군 장병들과 줄줄이 서서 못 쓰게 된 밥솥, 냉장고, 장판, 철근 등을 연탄 배달하듯 하나씩 날라 폐기물 더미에 쌓아올렸다.

이날 광주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오전부터 30도를 웃도는 날씨로 복구 활동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땀으로 범벅이 됐다. 사우나 같은 무더위에 빗물에 젖은 폐기물 더미에서 하수구 냄새와 같은 악취가 심하게 나다 보니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집어드는 가구, 집기마다 흙탕물이 떨어져 옷과 장갑은 금세 시커멓게 젖었다.

폐기물 이불, 매트리스, 선풍기, 자전거, 컴퓨터, 장판, 책꽂이, 옷걸이, 가방, 컴퓨터 등 집 안 살림이 몽땅 나와 집 한 채가 통째로 나오는 듯했다. 집 안에는 깨진 유리조각, 부엌 과도, 나무 조각, 전선 등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어 봉사자들이 다칠 뻔한 위험한 순간들도 마주했다.

집기들을 꺼낸 뒤에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 집주인과 집기들을 하나하나 뒤지며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과 버릴 폐기물을 분류한 뒤,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이 남았다. 물건들을 분류하는 피해 주민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이날 오전만 해도 사람 키를 넘어설 만큼 높은 폐기물 더미가 4곳 쌓일 정도였다. 폐기물을 5t 트럭에 하나씩 실어 나르다 보니 20분만에 한 트럭이 가득 찰 정도였다.

피해 주민들은 하나하나 폐기물 더미에 쌓이는 집기들을 쓸쓸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5년 전에도 침수를 겪었던 주민들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고, 그저 착잡하다”고 말 끝을 흐렸다.

400여㎡ 주택에서 오랜 시간 써 왔던 살림들이 마당과 대문 밖으로 나와있었다. 물 한 모금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냉장고도 사용할 수 없어 주민들은 인근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가족들은 수돗물로 온갖 살림살이들을 씻어내느라 하루를 꼬박 보내고 있었다.

수해를 입은 주민 주모(82)씨는 “우리 가족들만 청소했으면 1년이 걸렸을 텐데 군인들이 와서 해주니 속도가 빠르다”며 “마음이 뒤숭숭하고 불안해서 손 대기도 답답했는데, 지원 나와서 그래도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고 말했다.

아내, 아들, 딸과 함께 사는 주씨는 지난 17일 집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빗물이 목까지 차오를 듯 하자 바로 앞에 있는 빌라 계단으로 피신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잠긴 집을 몇 시간 동안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빗물받이가 있었음에도 마당에서 소용돌이쳤고, 120㎝ 물가림막도 소용없이 넘쳐버려서 몸만 겨우 피했다. 빗물이 들어차 젖은 벽지는 다 뜯어지고, 선풍기 5대로 방 안 곳곳을 말려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주씨는 “이 지대가 원래 낮아서 문흥고가 등에서 물이 다 흘러나와 순식간에 모이는데 자연배수가 잘 되지 않아 인근 굴다리쪽 배수시설 기계로 뿜어내도 넘친다”며 “또 비가 언제 퍼부을지 몰라 걱정된다. 고속도로 주변 물 저수장 만드는 사업이라도 해 줘야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19년 목조 주택을 지어 이사온 추연복(54)씨는 이사 직후인 2020년에 침수 피해를 입었다가, 올해도 재차 피해를 입었다.

빗물이 무릎 정도까지 차올랐던 탓에 추씨는 올해도 집안의 장판과 단열재를 다 뜯어낼 수밖에 없었다.

추씨는 “장등동, 2순환도로, 문흥지구, 대주아파트 쪽에서 물이 전부 쏟아져 내려오는데, 이번엔 폭우가 쏟아져 물이 빠지는데만 3~4시간이 걸렸다”며 “피해 입을 때마다 집 수리할 엄두가 안 나는데 일시적으로 지원금만 준다면 근본적인 해결 대책도, 충분한 지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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