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역사와 정치는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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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특징은 저명한 독립운동가들 대다수가 역사학자였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 ‘대동민족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을 쓴 역사학자였다. 백암은 우리뿐만 아니라 동이족 전체를 아우르는 큰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선을 남국, 만주족의 청(淸)을 북국으로 지칭하면서 조선의 멸망(1910)과 청의 멸망(1911)을 일컬어 “우리 역사에서 남국과 북국이 동시에 망한 것은 처음”이라고 갈파했다. 백암의 뒤를 이어 초대 국무령이 된 석주 이상룡도 역사학자다. 그의 선조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썼다는 고려 말의 수문하시중 행촌(杏村) 이암(李암)이었다. 석주는 만주 망명일기인 ‘서사록’(西徙錄)에서 만주를 우리 민족사의 무대로 인식하고 중국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는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고 서술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프랑스 같은 정상적 정치 행로를 걸었다면 백암, 석주, 단재 신채호 등의 역사관이 현재 우리 국민들의 상식적인 역사관이 되었을 것이다. 초중고교와 대학에서도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영토 전쟁’을 치르고, 다른 손에는 붓을 들고 ‘역사 전쟁’을 치렀던 순국선열들의 역사관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해방 후 친일 세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아 독립운동가들을 청산한 것처럼 단재가 여순감옥에서 ‘조선상고사’를 집필할 때 조선총독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지시를 받아 자국사를 난도질한 이병도·신석호가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은 보수·진보의 구분도 없이 남한의 역사학계 전체를 조선총독부 역사관 추종 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일관했기에 식민사학자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역사의 시비를 잘 알고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서 조선총독부 청사를 해체시켰다. 이를 보존해야 한다는 숱한 반대 논리를 배격한 것은 뚜렷한 역사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학자 못지않은 해박한 역사 지식을 갖고 있었고, 평소 홍익인간 사상을 크게 중시했다. 그 서재에 필자 등의 저서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에서 제시한 ‘고조선강역지도’를 붙여 놓고 있었을 정도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에 동조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민주당 의원들은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을 삭제하려고 하다가 역사운동가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철회했다. 문재인 정권은 가야사를 복원한답시고 가야사를 임나사로 둔갑시켜 경남 합천과 전북 남원을 각각 야마토왜의 식민지 다라국과 기문국으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고 주춤한 상태다.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은 전국을 8대 역사문화권으로 나누는 ‘역사문화권정비특별법’을 통과시켜 현재 시행 중인데,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이 법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삼국사기’는 서기 9년에 마한이 백제에 멸망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식민사학자들은 일본 극우파들의 성서인 ‘일본서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369년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해 임나(일본부)를 세운 후 내친 김에 전라도를 점령해 백제에게 하사할 때까지 호남은 마한이 차지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식민사학의 역사 왜곡을 법제화했다.(3월 31일자 ‘8대 역사문화권 유감’ 참조) 그러면서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 마한역사문화센터를 짓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 추운 겨울날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의 마음은 적폐 청산에 있었다. 그런데 집권 후 식민사학 적폐 청산은커녕 식민사학자들과 한 몸이 되어 역질주하다가 정권까지 빼앗겼다. 현재 민주당의 위기는 ‘김건희 특검법’같은 대증요법이나 국민의 힘의 헛발질에 의한 반사이익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수였다면 홍익인간을 지우고, 가야사를 임나사로 둔갑시키고, 광주에 마한역사문화센터를 짓겠다는 발상이 가능했을 것인가를 자문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도외시한 채 오답을 정답이라고 몽니를 부리고 있으니 과거를 깎아먹는 오늘과 그 미래가 우려될 뿐이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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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민주당 의원들은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을 삭제하려고 하다가 역사운동가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철회했다. 문재인 정권은 가야사를 복원한답시고 가야사를 임나사로 둔갑시켜 경남 합천과 전북 남원을 각각 야마토왜의 식민지 다라국과 기문국으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고 주춤한 상태다.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은 전국을 8대 역사문화권으로 나누는 ‘역사문화권정비특별법’을 통과시켜 현재 시행 중인데,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이 법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삼국사기’는 서기 9년에 마한이 백제에 멸망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식민사학자들은 일본 극우파들의 성서인 ‘일본서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369년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해 임나(일본부)를 세운 후 내친 김에 전라도를 점령해 백제에게 하사할 때까지 호남은 마한이 차지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식민사학의 역사 왜곡을 법제화했다.(3월 31일자 ‘8대 역사문화권 유감’ 참조) 그러면서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 마한역사문화센터를 짓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 추운 겨울날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의 마음은 적폐 청산에 있었다. 그런데 집권 후 식민사학 적폐 청산은커녕 식민사학자들과 한 몸이 되어 역질주하다가 정권까지 빼앗겼다. 현재 민주당의 위기는 ‘김건희 특검법’같은 대증요법이나 국민의 힘의 헛발질에 의한 반사이익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수였다면 홍익인간을 지우고, 가야사를 임나사로 둔갑시키고, 광주에 마한역사문화센터를 짓겠다는 발상이 가능했을 것인가를 자문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도외시한 채 오답을 정답이라고 몽니를 부리고 있으니 과거를 깎아먹는 오늘과 그 미래가 우려될 뿐이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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