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 -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 “철학이 대중 속에서 숨 쉬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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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초대석 -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 “철학이 대중 속에서 숨 쉬는 세상을 꿈꾼다”
‘카페 필로소피아’ 개설해 25년간 광주 인문학 지평 넓혀와
사회적 담론 나누는 문화, 유산처럼 후세에 남겨주고 싶어
4~10월 25명 모집해 11차례 ‘중장년 희망 워크숍’ 개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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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28일(월) 19:00
철학자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는 지난 1996년 대중을 위한 인문학 둥지 ‘카페 필로소피아’를 열었다. ‘니체를 읽는 할머니’는 인문도시 광주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진기(82) 전남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평생을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와 함께 해오면서 한국 철학회장과 한국 니체학회장을 지낸 원로 철학자이다.

‘철학이 숨 쉬는 세상’을 바라며 1996년 대중을 위한 인문학 둥지 ‘카페 필로소피아(Cafe Philosophia)’를 개설해 25년째 광주 시민들의 인문학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철학의 유혹자’ ‘인문학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노철학자는 오늘도 ‘인문도시 광주’를 꿈꾸며 거리로 나선다.

◇인문학 둥지 ‘카페 필로소피아’ 25돌 맞아=“내 자신의 열정도 있었지만 누군가 응원해주고, 좋게 봐줬기 때문에 이렇게 지속할 수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25년 동안 이끌어온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집니다.”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는 인문학 둥지 ‘카페 필로소피아’ 25주년을 이끌어온 원동력으로 시민들의 ‘응원’을 꼽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인문학 둥지를 처음 열었던 때가 1996년 1월. 필로소피아는 그리스어 ‘필로스’(Philos·사랑함)와 ‘소피아’(Sophia·지혜)의 합성어로 ‘지혜에 대한 사랑’(愛智)을 의미한다. 성 교수는 대학의 보직을 맡게 되면서 철학카페 개설 10개월만에 ‘휴지기’에 들어갔다가 2005년 정년퇴임한 후 2010년 6월에 다시 열었다. ‘함께 모여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놀이방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시 동구 은암미술관에서 열린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전시작품을 소개하는 성 교수(2021년 12월).
1990년대 중반 첫발을 내디딘지 어느새 25년, ‘카페 필로소피아’는 어려움 속에서도 철학을 넘어 인문학 전면으로 범위를 확대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창립 25주년 기념행사는 지난해 12월 광주시 동구 대의동 은암미술관에서 ‘철학이 숨 쉬는 세상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심포지엄과 공연, 전시 등과 함께 다채롭게 진행됐다. 현재 ‘카페 필로소피아’는 광주시 동구 대인동 ‘영무파라드 201’ 오피스텔 7층에 자리하고 있다. 간혹 커피를 파는 카페로 오해하기도 해 ‘인문학 둥지’라는 철학카페의 정체성을 명패에 표기해 놓았다.

◇후대에 담론 나누는 문화 남겨주고 싶어= ‘카페 필로소피아’의 모델은 성 교수가 1980년대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처음 봤던 프랑크푸르트의 철학카페 ‘뎅크바’(Denkbar). 독일어 ‘뎅크’(Denk)는 영어 ‘Think’(생각하다)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그는 ‘카페 필로소피아’가 단순히 철학 등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담론장(談論場)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저도 여건만 갖추면 뎅크바처럼 ‘고층 아파트가 무등산 경관을 막아버리는데 앞으로 광주 건축문제는 어찌해야 할까’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뤄보고 싶습니다. 독일 ‘슈바르츠 발트’(Schwarz Wald·黑林) 쪽으로는 높은 건물을 제한합니다. 왜냐? 그쪽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은 시민들 공동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바람과 경관을 막아버린다는 것은 도의적으로 용납되지 않습니다. ‘무등산을 다 가리면 어떡하나?’ 숙고(熟考)해야죠. 그렇지만 광주 시민에게 돌아가는 정신적인 영향은 굉장히 다릅니다. 후대에 은행 통장을 물려주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담론을 나누는 정신같은) 좋은 유산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성 교수는 철학·인문학이라는 상품을 파는 ‘철학의 유혹자’ ‘인문학 세일즈맨’을 자처한다. ‘니체 읽는 할머니’는 성 교수와 함께 철학공부를 하는 노년의 여성, 카페 필로소피아의 인문학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에도 코로나 상황이 풀리면 ‘서양 철학사’를 먼저 섭렵한 후 이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1년 동안 함께 읽어나갈 계획이다.

전남대 철학과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 시절 ‘문학소년’이었던 성 교수는 작가를 꿈꾸며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글을 쓰려면 철학사상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2학년 때 철학과로 전과(轉科)를 한다. ‘철학독일어’ 시간에 만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꿔버렸다. (성 교수는 당시 교재였던, 누렇게 변한 독일어 원서를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대학 2학년 때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에 매료돼=요즘도 많은 중·노년 세대가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을 일부러 읽는 까닭은 뭘까? 낡은 가치를 부순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에게 현대인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내가 니체를 붙들고 씨름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니체한테서 내가 더 보고 싶은 건 ‘긍정의 철학’입니다. 니체가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나는 너무나 좋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에서 ‘진실로 인생은 더러운 강물이다.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인간에게 비극과 슬픔을 극복하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늘과 아픔과 모자란 부분이 있는 삶을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아낄 수 있는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성 교수는 ‘차라투스트라는…’에 나오는 ‘위버멘쉬’와 함께 춤, 새와 같은 개념에 대해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위버멘쉬’는 인간의 약점·한계·모자람을 극복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우리말로 ‘초인’(超人)으로 번역하면 초월적인 존재, 절대자로 오해할 수 있어 ‘극복인’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자기 극복을 하는 위버멘쉬 정신, 긍정의 에너지를 살려야 합니다. 니체가 주장하는 개념 가운데 춤과 새가 있습니다. 춤은 자유롭고 행복하고 기쁜 거고, 새는 자유로운 것입니다. 새는 고정관념·종교·관습·잘못된 도덕률, 정신적으로 우리를 옥죄고 누르는 무거운 외투를 다 벗어버리고 ‘새처럼 자유롭게’(Vogel-Frei), 그런 얘기입니다. 니체는 ‘폭풍우를 몰고 오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사상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그럽니다. 그 빛나는 진리의 말씀은 조용조용 옵니다. 실은 니체에 대해서도 한마디 웃고 말아야 되는데 너무 떠들었네요.(웃음)”

니체 생가를 방문한 성 교수와 ‘카페 필로소피아’ 회원들.
◇“광주, 인문도시·휴머니즘 살아있는 도시로 나아가야”=성진기 교수는 그동안 칼럼을 통해 ‘광주가 인문도시,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도시로 나아가야 된다. 그리고 광주가 지닌 트라우마도 이렇게 인문정신으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광주에 살고 있는 철학자로서 갖는 꿈이다. 프랑스 혁명 전개과정은 잘 몰라도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의 이념을 존중하듯이 광주 5·18이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 인간의 품위를 고양시키는데 기여했다는 명예를 후대들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크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성 교수는 ‘인문도시 광주’를 꿈꾸면서 일명 ‘휴머니즘 마피아’와 ‘광주의 메디치가(家)’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생소한 개념인 ‘휴머니즘 마피아’는 ‘인문학적 소양으로 똘똘 뭉친 집단’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광주를 이끌어갈 정신적 리더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앞으로 중년을 위한 ‘진짜 찬란한’ 커리큘럼을 만들 계획이다.

한편 ‘중·장년 희망 워크숍’이 광주평생교육진흥원 주최, 카페 필로소피아 주관으로 4~10월 광주시 동구 대인동 복합문화공간 김냇과에서 진행된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삶의 지혜, 다산에게 묻다’를 시작으로 문순태 작가와 박성수 미래남도연구원장, 최혜경 조선이공대 교수 등 명사들의 강연이 11차례 마련된다.(문의 062-229-3355)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성진기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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