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한 시골 풍경 보는 듯…‘눈물나면 선암사에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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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적한 시골 풍경 보는 듯…‘눈물나면 선암사에 가라’
<7>순천 선암사
통일신라 도선국사 창건 추정
신선들 바둑 두던 바위 ‘선암’ 유래
아치형 다리 승선교 조형미 일품
범종루·만세루·대웅전·팔상전
일직선 배치 가람 자유 속 조화
2021년 08월 09일(월) 07:00
아치형의 무지개다리 승선교.
그 절에 가면 꼭 그 시(詩) 생각이 난다. 그 절에 꼭 맞춤한 시다. 혹여 그 시를 모른다 해도, 오랫동안 그 산사에서 구전되어 온 노래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왜 그 시가 절창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는 그런 시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심장에 들어와 박히는 작품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는 구절은 하나의 명제가 되어 버렸다. 선암사를 떠올릴 때면 환기되는 절창이다. 눈물이 날 만큼 아프고 쓸쓸한 이들은 선암사에 가야 할 것 같다.

어찌 아니겠는가. 속울음을 삼키고 울고 싶은 날들이 왜 없겠는가. 많은 이들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 하루를 산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삶이 헝클어져버린 사람들. 더러는 직장을 잃었고, 더러는 건강을 잃었으며, 더러는 가족을 잃기도 했다. 아무리 일해도 최저 생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삶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고단하고 아득하다.

그래, 그런 날에는 순천 선암사에 가자.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서든 아늑한 산사에 안기자. 천년 아름다운 사찰 품에 안겨 한동안 울고 나면 오늘의 쓸쓸함과 비루함이 씻겨나갈지 모를 일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의 ‘선암사’)



계곡물 소리에 박자를 맞춘 듯 정호승 시인의 시가 귓가를 맴돈다. 숲길에서부터 여느 절집과는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만난다. 화려하지 않는 고적함이다.

여름의 절정을 알리듯, 매미는 자지러지게 운다. 매미 함부로 욕하지 마라. 그대들은 저 매미처럼 무언가를 위해 자지러지게 운 적이 있던가.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했을 매미의 울음은, 그러므로 아프고 가없다.

물소리는 시원하고 재잘대는 새들의 화음은 경쾌하다. 노란 흙길은 소의 잔등처럼 부드럽고, 숲은 고요하다. 산문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절집만의 소담한 풍경이다.

‘선암사사적기’에 따르면 선암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쓰여진 다른 문헌에는 백제 성왕 7년(579) 에 신라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기록도 있다. 어느 편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후일 고려시대 의천대각국사에 의해 방대한 중창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선암사 명칭은 절이 자리한 서쪽에 커다랗고 평평한 돌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여느 사찰과 달리 사천왕문이 없는데다 대웅전 협시불과 어간문(대웅전 중앙문)이 없다. 절집 사람들은 이를 선암사 삼무(三無)라고 한다.

선암사가 위치한 조계산에는 인근에 송광사가 있다. 조계산 지세는 북쪽으로 승보종찰 송광사를, 동쪽으로 선암사를 품은 형국이다. 두 개의 큰 가람을 거느린 조계산은 순천을 넘어 남도 불교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숲길을 걸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승선교(昇仙橋). 아치형 다리는 멀리서도 은은한 자태를 드러낸다. 신선이 하늘로 오른다는 뜻의 다리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화강암을 다듬고 장대석(長臺石)으로 연결한 구조다. 아치형태로 돌을 맞춰 조형미가 압권이다. 그 아래를 타고 흐르는 물살은 마치 옥수가 흘러가는 것 같다. 다리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반원형의 세상이 펼쳐진다. 천정 모양은 자연을 품은 예술 작품으로 다가온다.

경내에 있는 소담한 연못.
문헌에 따르면 승선교에는 호암대사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임란 이후 사찰을 중건할 즈음 호암대사가 100일기도를 드리는 일이 있었다. 대사에게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일념이 있었다. 일심으로 기도를 했건만 결과가 없자, 대사는 낙심한 나머지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후일 그 여인이 관음보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사는 원통전을 세우고 승선교를 건립한다.

승선교 입구의 강선루(降仙樓)라는 누각 또한 그런 설화와 관련돼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니 속계를 넘어 부처의 세계로 진입한다. 모든 것은 오름과 내림의 경계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엄정한 진리는 늘 아슬한 벼랑 위에서 진행된다.

순천 조계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선암사에는 옛 시골 마을을 옮겨온 듯한 소담한 풍경과 정취가 펼쳐져 있다. 신라시대 건립된 쌍탑이 있는 대웅전.
만세루를 지나면 신라시대 쌍탑과 대웅전이 펼쳐진다. 신라시대 쌍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도선국사 창건이 맞는 것도 같다. 도열한 전각들은 질서 정연하다. 범종루와 만세루, 대웅전, 팔상전이 거의 일직선 형태다. 일직선 배치이지만 전각들엔 저마다 자유로운 분위가 깃들어 있다.

가람 배치 구조는 시골의 골목 같은 느낌을 준다. 전각을 에우른 돌담과 길은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아우른다. 유서 깊은 시골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하다. 담장 사이로 피어난 백일홍과 여름꽃들이 수수하면서도 화사하게 골목을 물들인다.

천천히 걸으며 달마전 수조와 연못, 불조전과 팔상전을 둘러본다. 마지막으로 1900년대 초반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재래식 화장실 해우소에 들러 세상 밖의 근심을 잠시 비워놓는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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