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매(探梅)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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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探梅) 여행
2021년 03월 03일(수) 09:00
강 대 석 시인
삼월은 매화의 계절이다. 거친 나뭇가지 끝을 헤매던 칼바람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눈 속에서 피는 설중매다. 그리고 삼월이 되면 홍매, 백매, 청매 등 온갖 매화가 기다렸다는 듯 다투어 피어나 세상을 그윽한 매향으로 물들인다.

주말인 엊그제 섬진강 변 매화마을의 매화와 산청의 정당매를 보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나들이를 하였다. 한데 너무 성급했을까? 추웠던 날씨 탓인지 매화마을은 군데군데 홍매화와 이른 매화만 피어 있고 산청의 정당매도 조금 덜 피어 모처럼 나선 코로나 속 탐매 여행은 아쉬움을 남겼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한국의 4대 매화는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등이다. 4매 중 3매가 호남에 있다. 여기에 전남대의 대명매,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를 더하면 호남 5매가 된다. 매화는 모두가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백양사의 고불매는 더욱 아름답다. 백학봉의 하얀 암벽과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을 배경으로 핀 홍매의 자태는 그 이름처럼 신비의 멋을 더한다.

호남에 5매가 있다면 영남에는 산청 3매가 있다. 단속사의 정당매(강회백), 단성면 남사리의 원정매(하즙), 시천리의 남명매(조식)가 그것이다. 그중 단속사의 정당매는 유명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매화를 위해 지은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비각과 그 안에 두 개의 식재 기념비가 있다.

정당매는 고려 말 정당문학 겸 대사헌에 오른 강회백이 유년 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 후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당문학에 오르자 이곳 승려들과 문인들이 강회백의 인품을 그리워하며 정당매라고 불렀다. 수령이 640년이 넘는 경남도의 보호수였으나 수년 전 원목은 수명을 다하고 후계목이 자라 3월 초에 꽃을 피운다. 황량한 옛 단속사의 절터에 삼층 석탑과 석간 등 유물이 남아 있어 폐망한 고려의 한이 서린 유서 깊은 곳이지만 최근 민가들이 속속 들어서며 주변이 많이 훼손되어 관리가 시급하다.

조선의 선비 중 매화를 가장 사랑했던 이는 퇴계 이황 선생이다. 선생은 눈을 감기 전 유언으로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고 할 정도로 매화를 아꼈다. 선생이 지은 매화에 대한 시가 107수에 달하니 가히 ‘매화시선’(梅花詩仙)이라 불러도 되겠다. 선생이 이렇게 매화를 사랑한 데는 성품이 고매하여 본래 매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기생 두향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선생은 나이 48세에 단양군수를 제수받았다. 그때 만난 여인이 18세의 관기 두향이었다. 두향은 세조 때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어느 사대부의 후손으로 양반가의 후예답게 시서화와 거문고에 능했다. 두향은 군수인 선생의 인품에 반해 일생의 스승으로 삼고 정성으로 모셨다. 그리고 9개월 후 선생이 풍기군수로 옮기자 두향은 이별을 서러워하며 매화를 좋아하는 선생을 위해 수석과 매화분 하나를 행장 속에 넣어 보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우니/ 어느덧 술 다하고 임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별의 애절함이 묻어나는 한 여인의 독백 시였다.

퇴계는 두향이 보낸 매화분을 평생 곁에 두고 두향처럼 아끼며 가꾸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매화 몇 그루와 함께 도산서원에 심었다. 그 매화의 후계목이 도산매다.

선생이 풍기군수로 옮겨간 후 두향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한강가에 움막을 짓고 선생을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다, 두 사람은 이별 후 한 번도 서로 만나지 못했다. 선생이 69세로 세상을 뜨자 소문을 들은 두향은 밤낮을 걸어서 안동까지 내려가 선생의 장례를 먼발치에서 바라본 후 돌아가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 요즘 세상에는 상상도 못 할 순애보의 주인공이자 정절의 표상이었다.

매화가 피는 계절이다. 올해는 늦기 전에 도산매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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