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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의병장 송사 기우만
2020년 11월 09일(월) 05:00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 석좌교수
활쏘기 한번 해 본 적 없고, 칼자루 한번 휘둘러 본 적 없는 문유(文儒)가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에 대항하려고 의병을 일으키는 일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라가 망해 가는 불의의 시대를 맞아 애국 충정과 의분이 솟구쳐 오르는 기개가 없고서는 의병대장의 직분을 수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조선이 망해 가던 한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오던 무렵, 큰 갓에 도포를 입은 나약한 선비들이 맨주먹으로 의병을 모아 의병대장으로 행동하던 일은 민족혼을 발양하던 위대한 구국 활동이었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은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학자 의병장이었다. 조선을 대표하던 성리학자요 척사위정 사상의 거목이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다. 할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아 높은 학자의 지위에 오르고, 낮은 벼슬이기는 하지만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며, 만인의 추앙을 받던 당대의 석학이었다. 송사는 전통 유학자로서 동학농민혁명에는 반대의 입장에 섰다. 하지만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머리를 깎는 욕은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더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머리 깎고 사느니 머리 깎지 않고 죽음을 택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당시의 무도한 정책에 분명하게 반기를 들었다.

기우만은 나라를 붙들기 위해, 선비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기면서 고뇌에 잠겨 있었다. 1896년 2월 충청도 제천 의진의 창의대장 유인석의 격문이 이르자, 송사는 때가 왔다고 믿고 3월에 광주향교로 들어가 의사들을 모아 전략을 세우니 의병들이 모여 들어 형세가 대단했다. 더구나 장성에서 기삼연(奇參衍)이 300여 명의 장정을 이끌고 합세하자 송사는 명실공히 호남 창의의 총수가 되었다. 각 고을에 통문을 보내 모든 의진은 광주로 모이게 하고 광산관(光山館)을 본영으로 삼아 출격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던 때에 고종 황제의 의병 해산 명령이 내려오니 어명을 거역할 수 없어 투쟁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해 5월에 다시 장성에서 기병하였으나, 10월 16일 일본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고 다음 해 4월에야 석방되었다. 그 후 1908년에도 순천의 조계산 암자에서 동지 및 문인들과 함께 다시 거사를 꾀했으나 고종 퇴위의 비보에 의병을 파하고 은둔의 생활로 들어가고 말았다. 몇 차례 자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산속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망국의 죽지 못한 신하라는 비운을 안고 살다가 생을 마치고 말았다.

송사는 조선 6대 성리학자의 한 사람인 할아버지 노사를 이은 대표적 호남 유학자였다. 노사가 타계한 이후 노선생(老先生)을 이은 소선생(少先生)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수많은 문하생들이 모여들어 대단한 학파를 이루며 유학 발전의 큰 기둥 역할을 했다. 더구나 노사의 학문을 이어 척사위정 사상을 제자들에게 전수하여 왜양(倭洋)은 절대 거부하고 조선의 정통유학을 계승했다. 이 때문에 노사와 송사의 문하에서는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위정척사 사상이야 수구 보수적인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면서도, 그런 민족적 위기와 난세에 민족의 정체성과 고유 문화의 보존은 또 하나의 민족혼을 지켜낸 역사적 업적이었다. 그런 민족혼이 살아나 3·1 혁명 등의 조국 해방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고,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을 막아 내고 우리 배달민족의 찬란한 전통을 지킬 수 있었다.

1980년 국가는 송사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여 그의 애국심과 의병운동에 대한 공을 잊지 않았다. 장성의 진원면에 가면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는 노사 기정진의 사당이 있다. 그의 학문과 위정척사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여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이다. 그 사당에는 노사의 제자 8명의 신위(神位)도 함께 모셔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친손자이자 의병대장이었던 송사의 위패는 더욱 빛나 보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 오늘 우리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찬란한 독립국가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노사의 학문과 위정척사 정신, 송사의 의병정신과 척사위정 정신이 내면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산서원은 춘추로 제향을 모시고 있다. 그런 때라도 한번 그곳을 방문해, 노사와 송사의 혼령에 인사라도 올리면 어떠할지? 역사를 잊은 국민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계승해 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