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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2020년 10월 06일(화) 00:00
이 한 주 경기연구원 원장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김성일은 일본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쟁 준비에 반대했고, 류성룡은 이를 두둔했다. 이들은 같은 동인 계열 당파 소속이었다. 그 결과 조선 민중은 임진왜란의 참혹한 대전란을 겪어야 했다. 이는 의사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나 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예일 것이다.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경제 위기의 늪 속으로 깊게 빠져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소득 하위계층이나 자영업자일수록 실업 상태에 내몰려 신음하고 있다. 고사하고 있는 골목 상권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화폐로 지역 상권의 소비와 매출을 직접적으로 강제할 것인가? 소상공인에게는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이다.

지금 사회적 쟁점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지역화폐가 유통되는 시장 골목의 활기, 증가하는 매출에 주름살이 펴지는 점포 상인들의 표정을 떠나서는 달리 측정될 수 없다. ‘조세연구원에 아예 대기업을 들이라’는 소상공인 단체들의 분노는 새삼 지역화폐의 효과를 실감하게 한다. 현장의 절박함이 이미 연구의 수용성을 압도하는 셈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자가 한 땀 한 땀 써 내려가는 보고서는 키보드로 찍어 내는 모니터 안의 활자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바뀔 서민 대중의 민생 현장이자 한국 사회의 미래인 것이다. 이러하기에 연구자는 보고서에서 도출된 정책의 사회적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찌 그 책임을 방기할 수 있을 것인가?

중립적이고 윤리적인 자세는 연구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중립을 지킨다면서 독립운동에 눈감은 것이 중립일 수 없으며, 사회적 책무를 저버린 채 형식적 규칙을 지킨 것이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데이터가 보여 주는 숫자의 세계가 아무리 정교하고 치밀해도 땀 절은 서민 대중의 삶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구하는 자는 오히려 가까운 곳은 망원경으로, 먼 곳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혹시나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금 살펴야 한다. 연구자는 서민 대중이 겪고 있는 냉엄한 삶의 현실을 몸으로 맞닥뜨리면서 세계를 관찰해야 하며, 기계적 중립성으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조직은 내적 자기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외부의 환경에 반응하면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정책 연구기관은 자신이 속한 부서의 전문 연구를 수행하며, 정책을 제시하고 발전 방안을 찾는 과업을 안고 있다. 확장적 재정 지출에 신중하다고 알려진 기재부나 기재부장관조차도 지역사랑 상품권(지역화폐) 등의 발행을 위하여 2021년도 예산에 1조 8000억 원을 반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기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 기관은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는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없으며, 소규모 지역에 피해를 주고, 소비자 후생 감소 등 부작용이 크다”는 전혀 반대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 관계자는 “정치 개입 의도나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절차도, 자료도, 논리도 부실한 상태로 결론만을 강하게 주장한 것이었다. 백번 양보하여 ‘지역화폐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곧장 온누리상품권과 대형마트를 옹호하는 차원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또한 연구의 결론이 도출되었다고 곧장 정책으로 직결되어서도 안 된다. 정책은 다양한 이들의 이해관계와 생계가 좌우되고, 정책 시행의 결과에 따라 사회적 책임도 뒤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국책 연구기관이라면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연구기관은 업무적 이해 당사자와의 특수 관계로부터 자립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하며, 정략적인 정치 논리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국책 연구기관은 정책을 연구하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지, 이해관계에 얽매여 정략적 입장을 편파적으로 내세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지역화폐 논쟁에서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사회적 책무에 관한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