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태몽 그리는 화가 이주영의 성백미술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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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태몽 그리는 화가 이주영의 성백미술관 이야기
Wando Atelier
‘태몽 그리는 화가’ 이주영이 만든 문화 거점
완도 성백미술관 이야기
2025년 07월 13일(일) 16:05
성백미술관 전시실에 걸린 이주영 관장의 작품들. 주로 태몽을 주제로 오방색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완도군 고군면은 예로부터 부유하고 학문이 융성했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너른 평야를 품고 있어 예부터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덕분에 경제적 기반이 탄탄했고 많은 유배 문인과 관료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학문과 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유배지로 내려온 선비들을 중심으로 학맥이 형성됐고 이들중에는 후학을 기르며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이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고군면은 충(忠) 효(孝) 예(禮)의 전통이 강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와 인물이 깃든 곳, 오늘날까지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고장 고군면에 성백미술관이 자리한다. 태몽을 그리는 화가 이주영 관장의 삶이 펼쳐지는 아틀리에이자, 고군면 문화거점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곳이다.

완도군 고군면에 위치한 성백미술관은 완도지역 유일한 사립미술관이다.
군인이던 남편을 따라 전국을 다녀야 했던 이주영 관장은 2012년, 고향으로 돌아와 집안 어른이 살던 집을 구입해 손보기 시작했다. 미술관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준비 기간만 2~3년이 소요됐다.

“일본 여행 중 마을마다 자리 잡은 작은 미술관들이 인상 깊었어요. ‘고향에 문화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그렇게 시작된 미술관은 완도 최초의 개인 미술관이 되었고 지금은 전시, 교육, 장학 사업까지 펼치는 지역 문화거점이 되었다.

지은지 100년이 된 오래된 한옥을 이용해 만든 성백미술관.
100년 가까이 된 주택을 개조한 성백미술관은 150평 규모다. 과거 이 관장 할머니의 친정집이었다고 귀띔해 준다. 전시공간 외에도 작업실, 수장고를 갖추고 있으며, 미술관과 조금 떨어진 곳에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새로운 전시가 열리고, 외부 작가에게는 무료 대관도 가능하다.

“전시를 해야 작품이 보이고, 작가도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요. 그런 이유로 우리지역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이 관장은 한국미술협회 완도군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완도군 관내 미술인 70여 명의 전시 기획과 운영을 돕고, 지역 예술인 육성을 위한 장학금도 지원한다. 매년 성백미술관 이름으로 지역 학생 1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성백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때로는 장 담그는 실습장이 되고, 예술 강의장이 되며, 아이들을 위한 그림 수업도 열린다.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항상 이주영 관장이 함께 한다. 입장도 감상도 모두 무료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주영 관장.
서양화가인 이주영 관장의 작품에는 제목이 없다. 정확히 말해, 제목은 있지만 작품 옆에 표기해두지 않는다. 작품마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관람객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 전시의 전부다.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 판단해버리는 게 싫었어요. 설명을 들으면 작품이 전혀 다르게 보이거든요.”

작가의 그림 대사수는 ‘태몽’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 부모님의 태몽은 물론, 타인의 태몽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첫째 아이의 태몽은 해남 대흥사 너머로 흐르는 물길과 황금들판, 고속도로가 나는 꿈이었어요. 그 꿈 속 이미지를 그대로 스케치해서 그림으로 옮긴 거죠.”

이 관장은 “태몽은 존재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는 의미다. 그림을 보고 아이들이 ‘나는 가치 있는 존재구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주영 작 ‘부귀영화’ 일부.
관장의 그림에는 오방색과 전통 문양이 자주 등장한다. 불교적인 색감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민간 신앙과 삶의 염원이 담긴 문양들이다. “오방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에요. 색동저고리처럼 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죠.”

작가의 작품 ‘꿈을 찾아서’는 미로 같은 인생 속에서 파랑새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파랑새는 ‘희망’을, 연꽃은 ‘선업의 씨앗’, 봉황은 ‘좋은 기운이 깃드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 이야기는 한 편의 설화처럼 이어지고, 작품은 염원과 기억을 품은 풍경이 되기도 한다.

“제 작품에는 항상 파랑새가 들어갑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게 미로같은 거잖아요.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빠져나올지 모르는 미로에요. 그 안에 꿈을 찾아가고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가 자리하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동물과 자연과 사람과의 교감으로 이야기를 풀어서 작품에 설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관장은 화가이면서 동시에 장을 담그는 장인이기도 하다. 137년을 이어온 집안의 씨간장 명맥을 지키며, 토종 콩과 자연 발효를 고집해 장을 만든다. 3000평 땅에서 직접 친환경으로 콩농사를 하기도 한다.

“장도 그림처럼 공기와 온도,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해요. 우주와 교감하는 느낌이죠.” 관장은 자신이 만든 장이 남편의 신장암 치유에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이를 계기로 요즘에는 치유 음식과 장 이야기를 담은 전자책도 준비 중이다.

이 관장의 고향을 사랑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고향에 내려와 가장 먼저 한 일이 해설사 시험을 보는 거였어요. 고금도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충무사가 있는데 이를 안내해 줄 해설사가 한 명도 없더라고요.”

그녀는 남편과 함께 ‘부부 해설사’로도 활동 중이다. 주말이면 관광객에게 완도의 역사와 유적을 소개하고, 외국인에게는 남편이 영어 해설을 맡는다.

성백미술관의 이름은 남편의 호인 ‘성백’에서 따온 것이지만, ‘백성을 성스럽게’라는 뜻도 담았다. 이주영 관장이 그리는 그림과 씨간장으로 빚는 장, 그리고 지역 문화예술을 위해 만들어가는 공간은 모두 ‘사람을 위한 예술’이라는 의미도 새겨져 있다.

“성백 미술관이 행복의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누군가 이곳에 와서 그림을 보고 웃고, 위로받고, 잠시라도 편안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저희 미술관에 찾아와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가신 할머니도 있었고 종종 스님들도 찾아오십니다. 위로가 되나 봐요.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진대요. 저에게는 그런 말들이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이 됩니다.”

/글=이보람·정은조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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