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대중문화 공화국’인가?
  전체메뉴
왜 한국은 ‘대중문화 공화국’인가?
한류의 역사
강준만 지음
2020년 07월 23일(목) 17:25
1991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인기는 대단했다. 최고 시청률 64.9%, 평균 시청률이 59.6%였다. 김수현 작가 특유의 재치있는 대사는 장안의 화제였다. 무엇보다 상식과 사회통념마저 깨뜨려버리는 언어는 생생하고 역동적이었다. 추상을 걷어버리고 구체를 표현한 언어는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안겨주었다.

비평가들은 1997년 중국에 수출된 ‘사랑이 뭐길래’를 한류의 출발점으로 본다.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둔데다 ‘한류’라는 작명을 견인한 기여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한국 최초 트렌디 드라마인 ‘질투’를 한류의 시초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92년 방영된 ‘질투’는 스토리는 진부하지만 감각적이었다.

오늘의 한국을 일컫는 말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대중문화 공화국’이라는 말은 한류 열풍의 현주소를 말한다.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0.7%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0.7%의 반란’,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로 부르기도 한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20년까지 한류를 조명한 책이 발간됐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발간한 ‘한류의 역사’는 한류의 DNA의 비밀을 풀어낸다. 왜 사람들은 BTS와 ‘기생충’에 열광하는지, 저자는 대중문화 현상 이면을 들여다본다.

저자에 따르면 ‘최초의 한류 아이돌’은 김 시스터즈였다. 이들은 미국 최고 버라이어티쇼였던 CBS ‘애드 설리번 쇼’에 “악기를 20가지나 연주할 줄 아는 소녀들”로 소개되며 인기를 끌었다. 가수이자 각곡가인 김해송과 이난영의 두 딸,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이 ‘대중문화 공화국’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좁고 자원은 없는데다 식민통치라는 아픔까지 겪은 상황에서 살길은 근면과 경쟁뿐이었다. ‘전쟁하듯’ 살 수밖에 없는 구조는 ‘소용돌이’ 문화를 낳았다. 혹자는 이를 역동성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는데, 이를 지속하게 하는 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중문화였다.

한류의 출발을 1945년으로 보는 것은 한류의 현대적 근원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 주둔과 함께 ‘양키이즘’이 유입됐다. 미군 기지촌 문화는 사회 전반으로 파급돼 춤바람을 낳았다. 또한 1957년 AFKN-TV가 개국하면서 미국 대중문화가 급격히 유입됐다. 봉준호 감독이 열 살부터 AFKN으로 영화를 봤다고 말한 대목은 시사적이다.

1960년대 젊은이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다. ‘할리우드 키드’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1970년대는 통키타, 블루진,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싹텄으며 1980년대 가요계는 조용필의 시대라고 할 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90년대는 언급한대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질투’가 한류의 기원이 될 만큼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1992년은 훗날 ‘현대 K-pop의 시조’라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HOT, SES, 신화 등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소위 말하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이다.

2003년 영화 ‘겨울연가’는 일본에 ‘욘사마’ 열풍을 낳았고 일본 기업은 ‘배용준 마케팅’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 영화 1000만 시대가 도래했다. 2003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시작된 1천만 관객 돌파는 이후 ‘괴물’, ‘해운대’,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는 ‘소녀시대’의 전성시대라 해도 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10년대 전후로는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기적의 오디션’ 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인물과사상사·3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