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광주 중흥동 파종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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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광주 중흥동 파종모종
출판하는 ‘파종’ 책을파는 ‘모종’
2020년 07월 15일(수) 00:00
수동타자기, 괘종시계 등 레트로한 분위기가 눈에 띄는 책방 ‘파종모종’은 출판업에서 출발해 다양한 독립출판물들을 판매하고 있다.
파종모종은 오래된 주택이 즐비한 광주시 북구 중흥동 349-27번지에 있다. 아담한 크기의 괘종시계, 비닐 레코드판이 올려진 휴대용 턴테이블(다만, 평소의 음악은 서점 한켠에 있는 디지털 기기에서 흘러나온다), 간유리 문이 달린 진열장, 자개로 장식한 오래된 문갑, 등나무 소파…. 독립서점 파종모종에 들어서면, 1970~1990년대 여느 가정집에서 쉬이 만날 수 있는 구식 가구와 집기들이 눈에 띈다. 책들은 단단하게 짠 원목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책장 역시 구식 디자인이어서 제법 시간의 향취를 풍긴다. (진열된 책들은 신식이다. 주로 소규모 독립출판물로서 소량 출판을 가능케 한 신식 인쇄술로 만들어진 책들이다.)

서점 입구 간판 자리에 매달린 수동 타자기에서부터 풍기는 ‘옛날’ 정감은 서점 내부의 집기를 만나면서 훨씬 두터워진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 디자인은 점점 쇠락해가는 (종이)책이라는 매체의 운명을 나지막이 속삭여주는 듯하다. 그렇다. 파종모종은 책의 화양연화가 연출된 공간이다. 많은 사람이 취미를 독서로 적어내던 시절의 느낌을 파종모종은 작은 공간에서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 등나무 소파에 앉아서 하루종일 책을 보다가 졸다가 하고 싶다. (서점의 살림살이를 위해 한 시간에 한 권씩 사는 조건으로 말이다.)

파종모종은 출판업으로 시작했다. ‘파종’은 출판 행위를 뜻한다. 서점 주인인 양지애씨의 직업은 그래픽디자이너로 오랫동안 북디자인을 업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파종모종은 서점, 출판 그리고 북클래스 등 크게 세 가지로 사업을 영위한다.

‘모종’이 서점이다. 서점 주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책장에 ‘심는다’. 누군가가 수확해가길 바라면서. 서점은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7시까지 문을 연다. 영업시간이 하루에 다섯 시간이고, 일주일에 4일만 문을 연다. (아까 나의 소망대로 한다면, 등나무 소파에 앉아 하루에 최대 5권의 책을 수확해 갈 수 있고, 매일 방문할 수만 있다면 일주일에 모두 20권의 책을 수확할 수 있다.) 이렇게 영업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서점의 경제활동이 출판과 북클래스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시작한 파종모종의 독립출판 북클래스는 ‘인디자인’이라는 출판편집 프로그램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수업이다. 파종모종이 북클래스를 열기 전까지는 지역에서 독립출판물을 직접 제작해보려면 서울로 관련 강좌를 들으러 가야 했다. 과정은 16쪽 중철 제본 책을 만들어보는 기초반부터 기본-심화-고급 단계로 이어져 출판편집 프로그램이 낯선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양 씨가 진행하는 북클래스는 서점 밖에서도 이뤄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나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그리고 순천시까지 출장 강의를 나갈 정도로 광주·전남에서 나름 유명 강사다. 양 씨의 수업을 거쳐 만들어진 독립출판물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출판사로서 파종모종은 아직까지는 외주작업 위주로 운영된다. 즉, 기업이나 공공기관 또는 개인이 의뢰한 출판물 작업이 현재의 파종모종의 ‘경제 영역’을 이끌고 있다. 그중 2018년에 제작한 ‘그건 니 생각이고’가 눈에 띈다.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금융복지 사업을 하는 광주청년드림은행이 그해 1년간 청년들을 상담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역에서 활동 중인 윤연우 작가의 일러스트가 함께 실린 책은 청년들이 어떻게 빚을 지고, 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양 씨의 참신한 기획력과 편집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양 씨는 올해부터는 ‘파종모종’이란 출판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다. 기획에서 편집, 제작까지 온전히 파종모종이 진행한 책을 만든다는 오래된 꿈을 이루는 해이다. 파종모종의 브랜드 콘셉트는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책’이다. 현재 광주·전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친구들과 협업해 출판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복집 눈썹달주단을 운영 중인 박현철 한복 디자이너와 대학에서 한복을 전공한 김태희 기획자와 함께 펴내려는 책이 우선 눈에 띈다. 새로운 관점으로 한복을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로 한복을 개념화해서 보여주는 책이다. 수년 전부터 틈틈이 콘텐츠 생산을 준비해 올해 안 출간이 현실화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쌓였다.

책과 함께 기획되는 상품 패키지 개발 작업도 솔깃하다. 문학작품과 주얼리가 한 세트가 되는 상품이라고 한다. 주얼리 디자이너 친구와 자개로 작업하는 공예작가 친구가 자개 반지를 만들고, 양 씨는 단편소설 한 편이 실린 책과 패키지를 만든다. 반지와 책은 시즌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선보인다. 늦어도 올 겨울 시즌부터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편, 코로나19는 출판사 겸 서점 파종모종이 한 템포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서점에서 이뤄지는 북클래스는 한동안 열지 못한다. 서점은 올해 들어 현저히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다. 양 씨는 2016년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북페어 ‘오늘산책’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지역 안팎으로 수많은 책문화 행사의 주역으로 바쁘게 활동해왔다. 지난해에는 ‘요로코롬’이라는 색다른 콘셉트의 북페어도 연지책방, 라이트라이프, 공백, 책과생활과 함께 기획해 선보였다. 올해는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책문화 행사도 열 수 없다.

그래서 파종모종은 여러 가지 일로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일들을 차분히 준비해나가고 있다. 서점은 새로운 콘셉트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기존에 단순히 독립출판물을 소개하고 판매하던 방식을 버리고, 달마다 특정한 주제를 잡고 작지만 단단한 큐레이션으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할 계획이다. 그동안 수집해왔던 레트로한 유리잔 등 서점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다양한 잡화도 본격적으로 판매한다.

북클래스도 세분화, 전문화된 ‘출판학교’로 북돋움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 출판기획, 교정교열, 편집, 북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유통 등의 출판 전 과정을 지역의 다른 서점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올해는 ‘파종모종’의 진짜 책이 독자를 찾아나설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헌창 책과생활 주인장



‘파종모종’이 추천합니다

▲‘엄마는 50시’

2006년부터 10년 동안 막내아들이 엄마와 나눈 대화와 사진으로 구성된 독립출판물이다. 전라도 사투리 그대로 풀어낸 대화가 정겨운데, 짤막한 대화의 행간에 큰 울림이 숨어 있는 마법 같은 책이다. 파종모종이 문을 막 열었을 때 출간된 책으로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서점 주인에겐 잊을 수 없는 책. 그러나 지난해 절판돼 서점에는 단 한 권밖에 없다. <정기웅 지음>



▲‘기억의 형태’

‘1824비밀소설쓰기클럽’이란 모임으로 만난 여섯 명이 각자가 꼭꼭 숨겨왔던 비밀을 소설로 풀어냈다. 이들은 비밀을 공유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필명부터 지었다. 작가로서의 캐릭터를 소환하자 ‘괴이하고 애처로우면서도 짠한 나’가 나타났다. 양지애 씨가 책임편집한 책으로 기획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매우 재미있었다고. 현재 파종모종, 인디펍, 책과생활에서 판매 중. <정파도 외 5명 지음· 광주광역시청소년삶디자인센터>



▲‘광주의 지문(地文)’

파종모종 양지애 씨가 만들고 싶은 책 중 하나는 지(地) 아카이브 시리즈이다. 이 책은 지난해 광주문화재단이 지역학 연구의 붐을 일으키기 위해 진행한 공모 사업의 결과물로서 파종모종이 편집하고 디자인했다. 책의 저자들은 전문가부터 일반인까지 아우른다. 송정시장, 양동시장, 비아시장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광주 백년시장의 서사와 아우라’, 지역 젊은이들의 언어습관에서 드러난 방언적 특징을 조사한 ‘사투리의 가치와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가 눈에 띈다. 현재 파종모종, 인디펍, 책과생활에서 판매 중. <광주문화재단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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