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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일깨운 ‘자치 분권’의 저력
2020년 06월 24일(수) 00:00
끝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의 창궐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처음엔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갈 쓰나미려니 했다. 중국 우한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뒤 세계보건기구가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을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한데 산발적 집단 감염과 해외 유입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지도 어느덧 다섯 달이지만, 수도권에서는 이미 2차 유행이 진행 중이다.

그러니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물론 봉쇄의 빗장을 풀며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나라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 치료제, 내년 백신 확보’라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목표대로 이뤄진다 해도 갈 길이 멀다.

코로나 사태는 한편으로 우리가 그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중 첫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우리나라 방역 체계의 우수성이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공중보건 위기 속에서도, 환자 조기 발견을 위한 검사 시스템을 구축해 신속한 진단과 추적·치료를 할 수 있었다. 개방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방역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K방역’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모두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들의 헌신 덕분이다.

바이러스는 또한 우리 스스로 미처 파악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사회의 ‘약한 고리’를 먼저 노린다는 점도 깨닫게 했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콜센터나 물류센터, 손쉬운 해고에 노출된 일용직 근로자, 외국인 이주 노동자, 노인이나 빈곤층 등 재난 약자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희생을 강요한다는 사실 말이다.

코로나 사태가 일깨워 준 또 하나의 가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힘이다. 방역 행정의 최일선에 선 지방자치단체들은 현장의 실상과 주민들의 어려움을 빠르게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감염 차단과 민생 악화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고 창조적인 대안을 앞다퉈 제시하고 실천했다.

민간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선별진료소’를 처음 설치한 것은 경기도 고양시와 세종시였다. 자동차를 탄 채 문진과 검체 채취를 한 뒤 차량 소독까지 단 10분 만에 안전하게 끝낼 수 있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도 확산됐다. 그런가 하면 전주시는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진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임대료를 낮추는 ‘착한 임대 운동’과 사업자와 근로자 간 상생으로 대량 해고를 막는 ‘해고 없는 도시’ 선언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민생 안정을 위해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적 실험에 나선 것도 전주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였다. 이는 정부의 긴급 재난 지원금 정책으로 이어졌고,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 논의의 불씨를 댕겼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나 해외 입국자 안심 귀가 서비스, 부족한 병실을 대체하는 생활치료센터를 제안하거나 시행한 것도 지방정부가 먼저였다.

광주시의 선제적인 방역 행정도 주목을 받았다. 전국 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전문 의료진이 시장과 대등한 위치에서 참여하는 민관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 대응보다 한 단계 강화된 방역 시스템을 가동했다. 신천지교회의 환자가 확산할 초기에는 강요가 아닌 설득으로 대구교회 예배 참석자 명단을 확보해 대규모 지역사회 감염을 막아 냈다. 그 결과 광주의 확진자는 현재 33명으로 전국 특·광역시 중 가장 적다. 그뿐이 아니다. 입원 병실이 부족해 애를 태우던 대구 확진자들을 광주로 이송해 격리 치료한 ‘병상 연대’. 이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역 간 나눔과 협력의 본보기로 꼽혔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들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중앙정부와 유기적 협력 아래 지역사회의 ‘약한 고리’를 먼저 찾아내 방역과 민생 안정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이런 성과는 지방자치체 부활 30년이 넘도록 재정과 권한에서 ‘2할 자치’에 머무르고 있는 척박한 현실에서 이루어 낸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하겠다. 지자체의 정책이 중앙정부를 통해 전국에 확산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K방역 성공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추세를 볼 때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대유행은 수년 주기로 되풀이된다. 더군다나 한 번 발생하면 쉽게 끝나지도 않는다. 반복되는 국가 재난 상황을 보다 효율적으로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앙 정부에 집중된 권한과 자원을 지방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치 분권 강화를 통해 지방 정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1988년 제정 이후 내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법을 전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

행정의 변화와 지역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만큼 시대 흐름에 맞게 바꾸자는 것이다. 재정·사무 등 자치권의 실질적 보장, 지자체 조직 운영의 자율성 확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주민자치 활성화, 중앙과 지방 간 협력 관계 정립 등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국정 과제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여야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끝내 무산된 바 있다.

코로나19는 위기이면서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지방자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강력한 자치 분권과 균형 발전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자체의 경쟁력을 키우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지방자치법의 조속한 개정이며, 이는 한편으로 대한민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