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5월 19일 ‘학운동 청년들’
적집자병원 의사가 말했다
“어저께 한 시민이 병원에서 죽었소
나도 공수를 죽이고 싶소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러믄 되겄소?
사람은 살리고 봅시다잉”
“어저께 한 시민이 병원에서 죽었소
나도 공수를 죽이고 싶소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러믄 되겄소?
사람은 살리고 봅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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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운동 예비군 소대장 문장우는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양복정장 차림으로 삼양백화점 2층에 있는 삼양다방으로 나갔다. 어제 충장파출소 옆의 송학다방에서 사업차 만났던 친구 박관수를 또 만나기 위해서였다. 마담은 연두 빛깔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저고리 가운데에 커다란 무궁화 꽃을 달고 있었는데 조화였다. 삼양다방은 자리가 좋았으므로 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문장우가 박관수를 보고 말했다.
“친구야, 어저께는 공수 자식들 땜시 이야기를 못했는디 쪼깐 생각해 봤어?”
“광고대행 사업은 완전히 인맥이거든. 니를 도와줄만한 사람들을 몬자 쭉 메모해 봐.”
“나는 인맥이 ?어. 긍께 니를 만날라고 또 나왔제.”
“사업허는 선후배덜이 있기는 헌디 곶감 빼묵드끼 하나 둘 써묵고 인자 흑사리만 남았어.”
“내가 시방 찬밥 더운밥 가릴 때 간디? 흑사리도 좋고 비껍데기도 좋은께 도와줘.”
“알았어.”
“근디 니 성질에 시위에 가담허지 않은 것이 나는 이상허다. 의리의 사나이가 아닌가.”
“고민허고 있어. 사업에 전념해야 허는가, 아니면 공수 놈들을 작살내야 허는가 말이여. 어저께 진압봉으로 맞은 어깨쭉지가 아직도 씸벅씸벅 허당께.”
“나는 다른 약속이 또 있응께 가볼게.”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
“그래야제.”
박관수는 커피를 맹물 들이키듯 쭉 마시고는 일어섰다. 문장우도 다방에 더 앉아 있기가 따분해질 듯해서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 금남로의 시위대가 궁금했다. 어느 새 돌멩이와 보도블럭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린 금남로 3가까지는 공수부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금남로를 벗어난 이면도로나 골목 등에 들쑥날쑥 보일 뿐이었다. 가톨릭센타 앞에는 포니승용차 서너 대가 불타서 검게 그을린 채 버려져 있었다. 문장우는 충장로 파출소를 지나 광주천변 도로로 나갔다. 광주천변 도로에서는 금남로와 달리 공수부대원과 시위청년들 간에 쫓고 쫓기는 공방전이 반복되고 있었다. 문장우는 넥타이를 풀고 시위대에 가담했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젊은 시민들이 많이 도와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중년시민들은 아직 공수부대원들에게 삿대질을 할 뿐 직접 돌멩이를 던지거나 각목을 휘두르는 사람은 적었다.
광주천변 도로에서도 최루탄이 터지곤 했다. 공수부대원이 돌멩이를 던지는 문장우 쪽으로도 최루탄을 쏘았다. 문장우는 최루탄을 피해 적십자병원 막다른 골목으로 달렸다. 그러자 문장우를 본 공수부대원 두 명이 착검한 총을 들고 쫓아왔다. 문장우는 순간적으로 싸워야겠다고 판단했다. 공수부대원이 총만 쏘지 않는다면 격투해서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유도와 복싱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으므로 겁나지 않았다. 문장우는 달려오는 두 명의 공수부대원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찔러총 자세’로 걸음을 멈췄다. 문장우는 버티고 서서 격투기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에야 공수부대원들이 반걸음씩 ‘찔러총 자세’로 다가왔다. 문장우는 눈싸움에서 져서는 안 된다고 작심했다. 공수부대원들을 더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공수부대원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이는 겁을 조금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순간 문장우는 발을 뻗어 공수부대원의 총을 연달아 걷어찼다. 두 자루의 총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문장우가 소리쳤다.
“야, 공수 쫄따구 새끼들아! 내가 누군 줄 알아? 포병하사 출신이야.”
이제는 안심하고 공수부대원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총을 놓아버린 공수부대원들은 꼼짝을 못했다. 문장우는 한 공수부대원은 업어치기로 땅바닥에 메치기를 했고, 또 한 공수부대원은 주먹을 턱에 꽂아 쓰러뜨려버렸다.
골목을 나와 보니 상황은 좀 전과 같았다. 공수부대원과 시위청년들 간에 공방전이 여전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쫓아오면 시위대는 도망쳤고, 시위대가 돌멩이를 던지며 반항하면 공수부대원들이 밀리곤 했다. 문장우는 적십자병원 벽에 기댄 채 호흡을 진정했다. 두 명의 공수부대원과 잔뜩 긴장하며 싸웠던 탓에 숨이 턱에까지 찼다. 문장우는 숨을 고르면서 공수부대원들이 어떻게 공격하는지 눈여겨보았다. 일정한 전술이 있었다. 골목으로 달아나는 시위학생이나 청년을 쫓아 공격할 때는 2인 1조이고, 큰길에서는 7,8명이 한 조가 되어 시위대 무리를 타격했다.
막다른 골목으로 달아난 시위청년 중에는 문장우와 같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이 골목에서 오히려 쫓겨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큰길에서는 7, 8명의 공수부대원들에게 시위대 무리는 예외 없이 밀리곤 했다. 7, 8명의 공수부대원 팀들이 거리를 바둑판처럼 나누어 시위자들을 능숙하게 진압했다. 그런데 적십자병원 부근에서는 달랐다. 시위대가 갑자기 불어나자 공수부대원들이 감당하지 못했다. 어떤 팀의 공수부대원은 되치기를 당했다. 시위대를 쫓아오다가 시위청년 몇 명이 갑자기 되돌아서서 소리쳤던 것이다.
“야, 좆만헌 새끼덜아, 쏴봐!”
“니덜은 오늘 우리헌테 죽었어!”
시위청년 몇 명이 독하게 대들자 공수부대원들이 당황했다. 그러더니 돌아서서 소속 대대가 있는 광주공원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시위대가 함성을 지르며 쫓아갔다. 그런데 도망치던 공수부대원들 중에서 한 명이 낙오했다. 뒤떨어진 공수부대원은 달아나다가 곧 붙잡힐 듯하자, 적십자병원 앞의 광주천으로 뛰어내렸다. 양림교 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은 뛰어내리다 부상을 당해 절룩거렸다. 시위대가 일제히 돌멩이를 던졌다. 흰 가운을 입은 적십자병원 의사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레지던트의사 한 명이 말했다.
“거참, 희안하네. 인자 공수가 도망가네.”
“어어! 저러믄 안 되는디.”
또 다른 의사가 소리쳤다. 광주천 풀밭에 쓰러진 공수부대원에게 누군가가 다가가 큰 돌로 내리치려고 했다. 소리친 의사가 광주천으로 뛰어내리자 동료 의사들도 뒤따랐다. 의사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어저께 한 시민이 병원에서 죽었소. 나도 공수를 죽이고 싶소.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러믄 되겄소?”
그제 오후에 초주검이 되어 적십자병원으로 실려 온 구두수선공 스물여덟 살의 김경철은 농아장애자였다.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였다. 친구들과 점심을 한 뒤 충금지하상가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붙들렸는데 말을 하지 못해 다른 청년들보다 진압봉으로 더 구타를 당했다. 농아자애자 증명을 보여준 뒤 두 손으로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 그의 상태는 뒤통수가 깨지고 눈알 튀어나왔으며,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어진 중상이었다.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그를 시민들이 그제 바로 트럭에 싣고 와 입원시켰지만 어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시신은 적십자병원에서 국군통합병원 영안실로 넘겨졌는데,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된 이후 첫 죽음이었다. 그의 처참한 모습을 본 적십자병원 젊은 의사는 그 순간 공수부대원을 죽이고 싶은 살의를 느꼈던 것이다. 의사가 시위청년에게 또 말했다.
“이래서는 안돼요!”
“이런 새끼는 죽여부러야지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시위시민 중에 한 사람이 의사를 거들었다.
“사람은 살리고 봅시다잉.”
그러자 시위청년이 손에 들고 있던 돌을 광주천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공수부대원에게 침을 뱉으며 한 마디 했다.
“니덜 광주사람을 우습게 봤어. 내 손에 걸리믄 다 죽는다잉.”
공수부대원의 총은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는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 새 병원 직원들이 들것을 가지고 달려와 부상당한 공수부대원을 옮겨갔다. 그제야 문장우는 실려 가는 공수부대원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니들 같은지 아냐!’
문장우는 집으로 갈까 하다가 시내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서 아내와 자식을 보면 시위대에 가담하기로 작정한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잠잘 곳이 마땅찮았다. 문장우는 전남공업고등학교 부근 하수도공사장에서 대형 콘크리트 하수관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문장우는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하수관에서 하룻밤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옷이 더럽혀질까 봐 양복 상의를 벗었다. 그런데 차가운 시멘트 기운이 몸에 전해지자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시간은 더디게 갔다. 겨우 오후 7시였다. 할 수 없이 문장우는 전남대병원 근처에 있는 선배 집을 찾아갔다.
학운동 예비군인 허춘섭, 김춘국 같은 20대 중반의 젊은이들도 소대장 문장우처럼 비분강개했다. 시내 번화가 양화점에서 일하는 서른한 살의 선배 한용덕이 맨 먼저 시내의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한용덕은 선을 본 여자와 데이트를 하려다가 공수부대원들 때문에 못하게 되자 홧김에 술을 잔뜩 마시고 와서 욕설을 퍼부었다.
“시내는 시방 공수 새끼들 땜시 난리가 나부렀시야. 사람들을 무참히 때려죽이고 있는디 느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뭣허냐!”
예비군 허춘섭은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시위하는 줄만 알았는데 공수부대원들이 나타나 사람을 죽인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알았응께 형님은 일단 집에서 잠이나 자씨요.”
허춘섭은 선배 한용덕을 집에 데려다주고 동네 선후배 예비군들에게 알렸다. 김춘국은 공수부대원들과 맞서겠다며 혼자서 먼저 시내로 나갔다. 그런데 한용덕이 비틀거리며 또 나타났다. 두 손에 부엌칼을 한 자루씩 쥐고 있었다.
“이놈의 새끼덜, 다 죽여부러야 속이 시원허겄다.”
“아따, 형님. 그 칼은 이리 주씨요. 공수보다 형님이 휘두르는 칼에 내가 몬자 죽겄소.”
“그러냐? 그럼 니가 보관허고 있그라.”
한용덕이 선선히 부엌칼을 허춘섭에게 맡겼다. 허춘섭은 한용덕을 부축해서 시내 쪽으로 내려갔다. 정말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때려죽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배고픈다리에서 학동 쪽으로 나가는데 학운전파사 앞에서 1.5톤 트럭을 만났다. 허춘섭은 트럭을 세워 운전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부는 트럭을 타고 몇 사람은 천천히 걸어서 따라왔다. 허춘섭과 한용덕은 앞자리에 탔다. 숭의실업고등학교 앞에서 지원동 쪽에서 오는 시민들과 합류하자 일행은 40여 명으로 불어났다. 학운동과 지원동 청년들이었다.
“각목을 들어붑시다.”
누군가가 외치자 청년들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마침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 받쳐놓은 각목을 전부 뽑아들었다. 남광주 일대의 가로수 지지대가 청년들의 손에 쥐어졌다. 또 누군가가 외쳤다.
“차에 기름은 넣고 갑시다.”
트럭은 전남대병원 쪽으로 가다가 남광주주유소로 향했다. 한춘섭은 트럭에서 내려 비틀거리는 한용덕을 부축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시내였다. 마침 주유소에는 사장은 없고 사장부인과 종업원 한 명이 주유소를 지키고 있었다. 청년 한 명이 사장부인에게 말했다.
“기름 쪼깐 주씨요.”
“?소잉.”
“그라지 말고 쪼깐 주씨요.”
“?다니께라우.”
“아따, 비상탱크 것을 쪼깐 주란 말이오.”
“여그는 비상탱크가 ?어요.”
“이 여사장님은 존 말로는 안 되는그만.”
지켜보고 있던 일행 중 한 청년이 뛰어나와 주유소 유리창을 박살내 버렸다. 그제야 놀란 사장부인이 비상탱크를 열었다. 청년들은 트럭에 먼저 기름을 넣고 여러 개의 5리터통과 유리병에 기름을 담아 들었다. 한 손에는 각목을, 또 다른 손에는 유리병을 들고 전남대병원 로터리까지 걸었다. 잠깐 쉬었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서 다시 장동로터리로 걸어 나아갔다. 드디어 전경과 공수부대원들이 보였다. 전경들은 길쭉한 방패를 들고 노동청 앞길에 서 있었고,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을 보자마자 40여 명의 무리 뒤에 있던 청년들이 흥분해 먼저 돌멩이를 던졌다. 그러나 그 돌멩이들은 청년무리 앞쪽에 떨어졌다. 공수부대원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공수부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압작전을 시작했다. 장갑차가 위협적으로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맨 앞에 있던 허춘섭은 재빨리 피해 인도로 뛰었다. 그러나 한용덕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도로가에 쓰러졌다.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 뒤에서 진압봉을 들고 쫓아왔다. 시위대로 변한 학운동과 지원동 청년들은 역부족이었다. 공수부대원들에 붙잡혀 머리가 깨지고 쇄골이 부서졌다. 한용덕도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허춘섭 등 동네 선후배가 전남대병원으로 등에 업고 달려갔으나 이미 의식불명이 돼 있었다. 한용덕은 즉시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나는 형네 식구들에게 몬자 알려야겄다.”
“긍께 니는 여그 있지 말고 얼능 가봐야 쓰겄다.”
허춘섭은 병원 일은 친구에게 맡기고 학운동으로 돌아와 한용덕 가족에게 알렸다. 그러고 나서는 집으로 들어가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밤새 학운동 예비군들에게 공수부대원에게 맞은 한용덕 선배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김춘국도 소문을 듣고는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노총각 한용덕은 동네후배들에게 가끔 술도 사는 자상한 형이었던 것이다. <계속>
“광고대행 사업은 완전히 인맥이거든. 니를 도와줄만한 사람들을 몬자 쭉 메모해 봐.”
“나는 인맥이 ?어. 긍께 니를 만날라고 또 나왔제.”
“사업허는 선후배덜이 있기는 헌디 곶감 빼묵드끼 하나 둘 써묵고 인자 흑사리만 남았어.”
“내가 시방 찬밥 더운밥 가릴 때 간디? 흑사리도 좋고 비껍데기도 좋은께 도와줘.”
“알았어.”
“근디 니 성질에 시위에 가담허지 않은 것이 나는 이상허다. 의리의 사나이가 아닌가.”
“나는 다른 약속이 또 있응께 가볼게.”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
“그래야제.”
박관수는 커피를 맹물 들이키듯 쭉 마시고는 일어섰다. 문장우도 다방에 더 앉아 있기가 따분해질 듯해서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 금남로의 시위대가 궁금했다. 어느 새 돌멩이와 보도블럭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린 금남로 3가까지는 공수부대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금남로를 벗어난 이면도로나 골목 등에 들쑥날쑥 보일 뿐이었다. 가톨릭센타 앞에는 포니승용차 서너 대가 불타서 검게 그을린 채 버려져 있었다. 문장우는 충장로 파출소를 지나 광주천변 도로로 나갔다. 광주천변 도로에서는 금남로와 달리 공수부대원과 시위청년들 간에 쫓고 쫓기는 공방전이 반복되고 있었다. 문장우는 넥타이를 풀고 시위대에 가담했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젊은 시민들이 많이 도와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중년시민들은 아직 공수부대원들에게 삿대질을 할 뿐 직접 돌멩이를 던지거나 각목을 휘두르는 사람은 적었다.
광주천변 도로에서도 최루탄이 터지곤 했다. 공수부대원이 돌멩이를 던지는 문장우 쪽으로도 최루탄을 쏘았다. 문장우는 최루탄을 피해 적십자병원 막다른 골목으로 달렸다. 그러자 문장우를 본 공수부대원 두 명이 착검한 총을 들고 쫓아왔다. 문장우는 순간적으로 싸워야겠다고 판단했다. 공수부대원이 총만 쏘지 않는다면 격투해서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유도와 복싱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었으므로 겁나지 않았다. 문장우는 달려오는 두 명의 공수부대원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찔러총 자세’로 걸음을 멈췄다. 문장우는 버티고 서서 격투기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에야 공수부대원들이 반걸음씩 ‘찔러총 자세’로 다가왔다. 문장우는 눈싸움에서 져서는 안 된다고 작심했다. 공수부대원들을 더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공수부대원들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이는 겁을 조금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순간 문장우는 발을 뻗어 공수부대원의 총을 연달아 걷어찼다. 두 자루의 총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문장우가 소리쳤다.
“야, 공수 쫄따구 새끼들아! 내가 누군 줄 알아? 포병하사 출신이야.”
이제는 안심하고 공수부대원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총을 놓아버린 공수부대원들은 꼼짝을 못했다. 문장우는 한 공수부대원은 업어치기로 땅바닥에 메치기를 했고, 또 한 공수부대원은 주먹을 턱에 꽂아 쓰러뜨려버렸다.
골목을 나와 보니 상황은 좀 전과 같았다. 공수부대원과 시위청년들 간에 공방전이 여전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쫓아오면 시위대는 도망쳤고, 시위대가 돌멩이를 던지며 반항하면 공수부대원들이 밀리곤 했다. 문장우는 적십자병원 벽에 기댄 채 호흡을 진정했다. 두 명의 공수부대원과 잔뜩 긴장하며 싸웠던 탓에 숨이 턱에까지 찼다. 문장우는 숨을 고르면서 공수부대원들이 어떻게 공격하는지 눈여겨보았다. 일정한 전술이 있었다. 골목으로 달아나는 시위학생이나 청년을 쫓아 공격할 때는 2인 1조이고, 큰길에서는 7,8명이 한 조가 되어 시위대 무리를 타격했다.
막다른 골목으로 달아난 시위청년 중에는 문장우와 같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이 골목에서 오히려 쫓겨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큰길에서는 7, 8명의 공수부대원들에게 시위대 무리는 예외 없이 밀리곤 했다. 7, 8명의 공수부대원 팀들이 거리를 바둑판처럼 나누어 시위자들을 능숙하게 진압했다. 그런데 적십자병원 부근에서는 달랐다. 시위대가 갑자기 불어나자 공수부대원들이 감당하지 못했다. 어떤 팀의 공수부대원은 되치기를 당했다. 시위대를 쫓아오다가 시위청년 몇 명이 갑자기 되돌아서서 소리쳤던 것이다.
“야, 좆만헌 새끼덜아, 쏴봐!”
“니덜은 오늘 우리헌테 죽었어!”
시위청년 몇 명이 독하게 대들자 공수부대원들이 당황했다. 그러더니 돌아서서 소속 대대가 있는 광주공원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시위대가 함성을 지르며 쫓아갔다. 그런데 도망치던 공수부대원들 중에서 한 명이 낙오했다. 뒤떨어진 공수부대원은 달아나다가 곧 붙잡힐 듯하자, 적십자병원 앞의 광주천으로 뛰어내렸다. 양림교 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은 뛰어내리다 부상을 당해 절룩거렸다. 시위대가 일제히 돌멩이를 던졌다. 흰 가운을 입은 적십자병원 의사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레지던트의사 한 명이 말했다.
“거참, 희안하네. 인자 공수가 도망가네.”
“어어! 저러믄 안 되는디.”
또 다른 의사가 소리쳤다. 광주천 풀밭에 쓰러진 공수부대원에게 누군가가 다가가 큰 돌로 내리치려고 했다. 소리친 의사가 광주천으로 뛰어내리자 동료 의사들도 뒤따랐다. 의사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어저께 한 시민이 병원에서 죽었소. 나도 공수를 죽이고 싶소.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러믄 되겄소?”
그제 오후에 초주검이 되어 적십자병원으로 실려 온 구두수선공 스물여덟 살의 김경철은 농아장애자였다.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였다. 친구들과 점심을 한 뒤 충금지하상가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붙들렸는데 말을 하지 못해 다른 청년들보다 진압봉으로 더 구타를 당했다. 농아자애자 증명을 보여준 뒤 두 손으로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때 그의 상태는 뒤통수가 깨지고 눈알 튀어나왔으며,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어진 중상이었다.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그를 시민들이 그제 바로 트럭에 싣고 와 입원시켰지만 어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시신은 적십자병원에서 국군통합병원 영안실로 넘겨졌는데,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된 이후 첫 죽음이었다. 그의 처참한 모습을 본 적십자병원 젊은 의사는 그 순간 공수부대원을 죽이고 싶은 살의를 느꼈던 것이다. 의사가 시위청년에게 또 말했다.
“이래서는 안돼요!”
“이런 새끼는 죽여부러야지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시위시민 중에 한 사람이 의사를 거들었다.
“사람은 살리고 봅시다잉.”
그러자 시위청년이 손에 들고 있던 돌을 광주천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공수부대원에게 침을 뱉으며 한 마디 했다.
“니덜 광주사람을 우습게 봤어. 내 손에 걸리믄 다 죽는다잉.”
공수부대원의 총은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는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 새 병원 직원들이 들것을 가지고 달려와 부상당한 공수부대원을 옮겨갔다. 그제야 문장우는 실려 가는 공수부대원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니들 같은지 아냐!’
문장우는 집으로 갈까 하다가 시내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서 아내와 자식을 보면 시위대에 가담하기로 작정한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잠잘 곳이 마땅찮았다. 문장우는 전남공업고등학교 부근 하수도공사장에서 대형 콘크리트 하수관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문장우는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하수관에서 하룻밤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옷이 더럽혀질까 봐 양복 상의를 벗었다. 그런데 차가운 시멘트 기운이 몸에 전해지자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시간은 더디게 갔다. 겨우 오후 7시였다. 할 수 없이 문장우는 전남대병원 근처에 있는 선배 집을 찾아갔다.
학운동 예비군인 허춘섭, 김춘국 같은 20대 중반의 젊은이들도 소대장 문장우처럼 비분강개했다. 시내 번화가 양화점에서 일하는 서른한 살의 선배 한용덕이 맨 먼저 시내의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한용덕은 선을 본 여자와 데이트를 하려다가 공수부대원들 때문에 못하게 되자 홧김에 술을 잔뜩 마시고 와서 욕설을 퍼부었다.
“시내는 시방 공수 새끼들 땜시 난리가 나부렀시야. 사람들을 무참히 때려죽이고 있는디 느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뭣허냐!”
예비군 허춘섭은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시위하는 줄만 알았는데 공수부대원들이 나타나 사람을 죽인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알았응께 형님은 일단 집에서 잠이나 자씨요.”
허춘섭은 선배 한용덕을 집에 데려다주고 동네 선후배 예비군들에게 알렸다. 김춘국은 공수부대원들과 맞서겠다며 혼자서 먼저 시내로 나갔다. 그런데 한용덕이 비틀거리며 또 나타났다. 두 손에 부엌칼을 한 자루씩 쥐고 있었다.
“이놈의 새끼덜, 다 죽여부러야 속이 시원허겄다.”
“아따, 형님. 그 칼은 이리 주씨요. 공수보다 형님이 휘두르는 칼에 내가 몬자 죽겄소.”
“그러냐? 그럼 니가 보관허고 있그라.”
한용덕이 선선히 부엌칼을 허춘섭에게 맡겼다. 허춘섭은 한용덕을 부축해서 시내 쪽으로 내려갔다. 정말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때려죽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배고픈다리에서 학동 쪽으로 나가는데 학운전파사 앞에서 1.5톤 트럭을 만났다. 허춘섭은 트럭을 세워 운전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부는 트럭을 타고 몇 사람은 천천히 걸어서 따라왔다. 허춘섭과 한용덕은 앞자리에 탔다. 숭의실업고등학교 앞에서 지원동 쪽에서 오는 시민들과 합류하자 일행은 40여 명으로 불어났다. 학운동과 지원동 청년들이었다.
“각목을 들어붑시다.”
누군가가 외치자 청년들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마침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 받쳐놓은 각목을 전부 뽑아들었다. 남광주 일대의 가로수 지지대가 청년들의 손에 쥐어졌다. 또 누군가가 외쳤다.
“차에 기름은 넣고 갑시다.”
트럭은 전남대병원 쪽으로 가다가 남광주주유소로 향했다. 한춘섭은 트럭에서 내려 비틀거리는 한용덕을 부축했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시내였다. 마침 주유소에는 사장은 없고 사장부인과 종업원 한 명이 주유소를 지키고 있었다. 청년 한 명이 사장부인에게 말했다.
“기름 쪼깐 주씨요.”
“?소잉.”
“그라지 말고 쪼깐 주씨요.”
“?다니께라우.”
“아따, 비상탱크 것을 쪼깐 주란 말이오.”
“여그는 비상탱크가 ?어요.”
“이 여사장님은 존 말로는 안 되는그만.”
지켜보고 있던 일행 중 한 청년이 뛰어나와 주유소 유리창을 박살내 버렸다. 그제야 놀란 사장부인이 비상탱크를 열었다. 청년들은 트럭에 먼저 기름을 넣고 여러 개의 5리터통과 유리병에 기름을 담아 들었다. 한 손에는 각목을, 또 다른 손에는 유리병을 들고 전남대병원 로터리까지 걸었다. 잠깐 쉬었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서 다시 장동로터리로 걸어 나아갔다. 드디어 전경과 공수부대원들이 보였다. 전경들은 길쭉한 방패를 들고 노동청 앞길에 서 있었고,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대오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을 보자마자 40여 명의 무리 뒤에 있던 청년들이 흥분해 먼저 돌멩이를 던졌다. 그러나 그 돌멩이들은 청년무리 앞쪽에 떨어졌다. 공수부대원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공수부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진압작전을 시작했다. 장갑차가 위협적으로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맨 앞에 있던 허춘섭은 재빨리 피해 인도로 뛰었다. 그러나 한용덕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도로가에 쓰러졌다. 공수부대원들은 장갑차 뒤에서 진압봉을 들고 쫓아왔다. 시위대로 변한 학운동과 지원동 청년들은 역부족이었다. 공수부대원들에 붙잡혀 머리가 깨지고 쇄골이 부서졌다. 한용덕도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허춘섭 등 동네 선후배가 전남대병원으로 등에 업고 달려갔으나 이미 의식불명이 돼 있었다. 한용덕은 즉시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나는 형네 식구들에게 몬자 알려야겄다.”
“긍께 니는 여그 있지 말고 얼능 가봐야 쓰겄다.”
허춘섭은 병원 일은 친구에게 맡기고 학운동으로 돌아와 한용덕 가족에게 알렸다. 그러고 나서는 집으로 들어가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밤새 학운동 예비군들에게 공수부대원에게 맞은 한용덕 선배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김춘국도 소문을 듣고는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노총각 한용덕은 동네후배들에게 가끔 술도 사는 자상한 형이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