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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5월 19일 ‘첫 발포’
불 붙은 짚단을 장갑차 뚜껑에 올렸다
쇠가 달궈지자 뚜껑이 다시 열리면서
M16소총 총구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총구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놀란 시위대가 골목으로 피하자
2019년 11월 28일(목) 04:50
<삽화:이정기>
금남로 거리의 공기는 매캐했다. 18일 이후부터 도청 앞 공기는 더 심했다. 눈이 따갑고 목구멍까지 메스꺼웠다. 최루탄 가스가 원형분수대 주변을 스멀스멀 맴돌았다. 도청 앞의 수산협동조합 여직원 중에는 치약을 바른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천식기가 있는 회사원들은 콜록콜록 기침이나 재채기를 했다. 그래도 젊은 회사원들은 견딜 만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출퇴근했다. 회사원들에게는 최루탄 가스보다 공수부대원들의 행패가 더 역겨웠다.

김영철도 YWCA 신협에 정상 출근했지만 아침부터 썩은 콩 씹은 얼굴이 됐다. 10시쯤 공수부대원들이 갑자기 신협 사무실로 들이닥친 것이다. 시위청년 학생들이 YWCA 골목으로 숨자 공수부대원 하사가 신협 사무실로 들어와 박용준을 꼭 찍어 소지품을 검사했다. 박용준의 호주머니에서 학생증 같은 것이 나오지 않자 그 공수부대원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가 양서조합 직원인 황일봉을 현관으로 끌어냈다.

“너 대학생 맞지? 방금 도망쳐 온 놈이지?”

“아닙니다. 양서조합 직원이어라.”

“날 속이면 죽는 수가 있어, 이 새끼야!”

공수부대원이 황일봉을 가격하려고 진압봉을 치켜들었다. 김영철과 황일봉의 여동생 황수진 직원이 현관으로 뛰어가 공수부대원의 진압봉을 막았다. 김영철이 거칠게 말했다.

“양서조합 직원 맞다니까요.”

YWCA 옆 건물은 무등고시학원이었다. 학원생들이 창문을 통해서 구경하고 있다가 야유를 보냈다.

“야! 그러지 말어.”

“광주사람들이 니들 적이냐?”

그러자 공수부대원 몇 명이 황일봉을 놔두고 무등고시학원 건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창문을 열고 한 학원생이 소리쳤다.

“공수가 미쳐부렀습니다. 학원생들이 맞아 죽고 있어요.”

학원생의 목소리는 공수부대원들에게 제압당한 듯 더 들리지 않았다. 길에 있던 공수부대원들까지 합세해 학원 출입문의 셔터를 조금만 올리고 학원생들을 기어 나오게 했다. 공수부대원들은 학원생들이 셔터 밑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부터 진압봉을 마구 휘둘렀다. 머리, 어깨, 허리 등을 가리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패고 짓밟았다. 신협과 양서조합 직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김영철은 입술을 깨물었고 박용준은 소리쳤다.

“개만도 못헌 놈들! 영철이 형, 총만 있다믄 다 쏴죽여버릴라요.”

무등고시학원 일부 학원생들은 초주검이 되어 군용트럭에 실려 갔다. 공수대원들은 다시 시위청년들을 색출하기 위해 금남로 1가에 있는 다방과 당구장을 뒤졌다. 20대 중반의 위성삼은 5번 시내버스를 타고 친구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시위대는 듬성듬성 보였지만 공수부대원은 보이지 않았다. 진압 작전상 시위대를 한데로 몰기 위한 전술인지도 몰랐다. 양동에서 부모가 해오던 숙박업을 도와주고 있는 위성삼은 계엄군이 광주에 들어온 이후 손님도 끊기고 해서 시내에 나온 길이었다. 위성삼은 금남로 쪽에서 시위하는 소리가 들려와 호기심에 장동사거리 노동청 앞에서 내렸다. 바로 금남로로 가지 않고 MBC 방송국 쪽으로 우회했다. 군대에서 훈련받은 대로 계엄군의 동태를 살핀 뒤 가기 위해서였다. 시위대는 청산학원 골목에서 웅성거렸다. 주로 학원을 다니는 재수생들이었다. 계엄군의 만행을 전해들은 재수생들이 강의를 거부하고 골목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재수생 시위대가 ‘계엄군은 물러가라!’고 외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공수부대원들이 쫓아왔다. 위성삼은 공수부대원에게 대항할 자신이 없어 뛰었다. 전남여고 담을 넘어 농장다리 쪽으로 달린 뒤 이발소로 들어가 숨었다. 이발소 밖은 군홧발 소리와 쫓기는 시위청년들의 발걸음소리가 요란했다. 위성삼은 이발소도 안전하지 못한 것 같아서 골목길로만 가다가 계림극장으로 들어갔다. 첩보영화는 밖의 상황과 상관없이 상영 중이었다. 영화 장면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위성삼은 계림동극장에서 가까운 동원예식장 부근에 있는 사촌누나 집으로 갈까 하고 망설였다. 양동 집으로 가려면 시내를 관통해야 하므로 위험했다. 그러나 극장을 나온 위성삼은 전신전화국 쪽으로 잰걸음을 했다. 동원예식장 쪽은 이미 공수부대원들이 10여 미터 간격으로 서 있기 때문이었다. 전신전화국에서 전대병원 쪽으로 돌아갔다가 광주천변 도로를 타고 양동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전신전화국 앞에도 1천여 명의 시위대가 있었다. 시외버스공용터미널과 광주소방서 쪽에서 온 시위대와 금남로에서 쫓겨 온 시위대가 합세한 것이 분명했다. 가톨릭센터 부근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는 시위대를 자극했다. 경찰순찰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시위대 앞으로 지나가다가 멈췄다. 누군가가 경찰순찰차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경찰들은 순찰차에서 내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시위대는 굳이 경찰을 쫓지는 않았다. 시위청년 한 사람이 경찰순찰차의 시트에 불을 질렀다. 경찰순찰차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시위대는 여세를 몰아 부근에 있는 MBC방송국으로 갔다. 뉴스 시간에 시위대를 정치인의 사주를 받은 폭도라고 방송하여 분노를 산 방송국이었다. MBC방송국 앞에는 계엄군 4명과 하사관 1명이 ‘경계총 자세’로 서 있다가 시위대가 접근하자 차고 출입문 셔터를 내린 뒤 ‘서서쏴 자세’를 취했다. 놀란 시위시민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때 위성삼이 외쳤다.

“쟤들이 쏴봤자 공포탄인께 밀어붑시다.”

위성삼은 경계병에게 공포탄 세 발을 지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 있게 소리쳤다. 방송국을 지키는 계엄군은 공수부대원이 아니고 31사단 보병부대 군인이었다. 시위진압 훈련을 받지 않은 그들에게는 진압봉이 없었다. 경계를 서던 계엄군들은 시위청년들에게 금세 붙잡혀 총과 철모를 빼앗겼다. 누군가가 공수부대원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안디 저 군바리들은 공수가 아니어라.”

시위청년들이 총과 철모를 돌려주며 그들을 풀어주었다. 그런 뒤 방송국 차고 출입문 셔터를 올렸다. 차고에는 자가용 3대와 이동방송승합차가 1대 주차돼 있었다. 시위대는 자가용 1대를 끌어내 쇠파이프로 연료통 마개를 친 뒤 불을 붙였다. 불길이 솟구치는 것을 보면서 시위청년들이 환호했다. 계엄군 만행은 보도하지 않고 시위대를 폭도로 과장해서 방송하는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또 다시 이동취재승합차를 끌어내 불을 지르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막았다.

“옆에 있는 전자제품 대리점에 불이 붙을 수 있응께 참읍시다.”

“공수가 온다!”

한 시위청년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자 방송국을 점령할 것처럼 기세를 올렸던 시위대가 슬슬 계림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오를 유지한 채 걸어오는 공수부대원들은 거침이 없었다. 시위대가 던지는 돌멩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왔다. 시위대를 겁먹게 하는 전술 대오였다. MBC방송국 안의 경계병을 구출하기 위해 몰려오는 계엄군은 7공수여단 35대대와 11공수여단 63대대 공수부대였다.



일병 이경남은 63대대 소속이었다. 이경남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피곤했지만 상관의 명령을 따랐다. 새벽 2시경 조선대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여 군장을 풀고 4시쯤에야 잠을 자다가 깨어나 아침식사를 끝내기도 전인 오전 10시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군용트럭에서 내린 곳은 MBC방송국 앞이었다. 공수부대원들 군용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맹수로 돌변했다. 고참 공수부대원이 지나가는 한 청년을 붙잡았다. 고참 공수부대원들은 시위학생과 시민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체포하기 위해 그 청년을 졸병인 이경남에게 맡겼다.

“저 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가 있어.”

“예, 알겠습니다.”

이경남은 청년을 전남여고 운동장으로 연행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양편으로 잎이 무성한 플라타너스와 동글동글하게 전정한 향나무가 보였다. 여학생 화장실은 왼편에 있었다. 청년이 이경남에게 애원했다.

“군 입대할라고 신체검사 받으러 왔는디 왜 군인될라는 사람까지 붙잡습니까?”

순간 이경남은 고참의 명령을 따라야 할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지 갈등을 느꼈다.

“참말로 신검 받을라고 왔단 말이오. 살려주씨요.”

청년이 이경남에게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이경남은 다시 갈등했다. 목사인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하실까. 1975년 목원대 신학과에 입학한 뒤 군사독재에 염증을 느껴 해방신학에 관심을 가지다가 1979년 5월에 입대한 그였다. 그러나 곰을 피하려다 사자를 만난다는 성경 구절처럼 이경남은 신병훈련소에서 공수부대로 차출됐고, 술 담배를 안 하는 데다 장래 희망이 목회자 겸 소설가인 그는 부대 안에서 ‘고문관’으로 통했다. 이윽고 이경남은 양심을 따르기로 했다. 청년은 이경남의 태도가 거칠지 않자 더욱 매달렸다.

“군인 성님, 살려주씨요.”

“알았소.”

이경남은 청년을 여학생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우리 공수들이 물러갈 때까지 절대로 나오지 마시오.”

“고맙소.”

“잡히면 둘 다 곤란해지니 반드시 여기 있어야 되오.”

“안에서 문 꽉 잠그고 있을게라.”

“여학생 화장실이라 안전하니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이경남은 청년에게 신신당부를 한 뒤 교문을 나왔다. 고참 공수부대원들은 잡혀온 시위청년 학생들을 진압봉으로 패느라고 몹시 흥분해 있었다. 이경남이 전남여고를 다녀온 것도 잊어먹고 묻지 않았다. 군용트럭에 붙잡힌 시위청년들을 태워 조선대학교 숙영지로 보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MBC방송국 안에 있던 31사단 계엄군 구출작전이 끝났는지 그곳을 7공수 35대대에게 맡기고 이경남 일병이 소속한 11공수 63대대 일부는 이미 계림동으로 작전지역을 옮겨간 상황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이 뒤처리를 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개자식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감히 까불어!”

MBC방송국 앞에서 구호를 외쳤던 시위대는 계림동 동원예식장 앞으로 밀려갔다. 위성삼도 시위대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함께 움직였다. 시위대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먼저 가 있던 11공수여단의 장갑차 한 대는 동원예식장과 광주고등학교 사이에 멈춰 있었다. 시위청년들이 장갑차 앞면 양쪽에 달린 감시경을 돌로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장갑차는 방향을 잃고 보도 턱 위에 걸쳐 있었다. 시동은 꺼진 상태였다. 그때 장갑차 뚜껑이 열리면서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취재하던 ‘동아일보’ 기자에게 소리쳤다.

“도청 본부에 알려주시오. 병력이 더 필요하오.”

‘동아일보’ 취재차가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시위시민들이 발길질을 했다.

“동아일보는 으째서 침묵하고 있소. 거리에서 시민들이 막 죽어가고 있는디.”

“신문 방송 니들도 한패여, 먹물들아!”

시위대는 먹이를 발견한 개미떼처럼 장갑차를 에워쌌다. 위성삼은 시위대를 뚫고 장갑차까지 접근했다. 한 시위청년이 어디서 구했는지 벼 짚단을 가져와 불을 붙여 장갑차 바퀴에 던졌다. 불이 붙을 리 없었다. 위성삼이 그 시위청년에게 말했다.

“거그는 소용 ?소.”

“형씨, 으디다 놔야 쓰겄소?”

“짚단을 이리 주씨요.”

위성삼은 불이 붙은 벼 짚단을 장갑차 뚜껑에 올렸다.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장갑차의 취약한 부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갑차 뚜껑에 올려놓은 벼 짚단이 활활 타올랐다. 쇠가 달궈지자 뚜껑이 다시 열리면서 M16소총 총구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이번에도 대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총구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소리에 놀란 시위대가 당황해서 골목으로 피했다. 또 다시 한 발의 총성이 더 났다. 대위의 총은 시위대를 겨냥하고 있었다. 한 순간 광주고등학교 앞거리는 텅 비어버렸다. 위성삼은 위협사격이라고 판단했지만 한 고등학생이 총에 맞아 피를 흘렸다. 조선대 4학년인 위성삼은 학생의 명찰을 보고는 바로 조선대부고 야간학생임을 알았다. 열여덟 살 어린 학생은 고교 3학년 김영찬이었다. 그 사이에 시동이 다시 걸린 장갑차는 굉음을 내지르며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위성삼이 소리쳤다.

“병원이 으딨소?”

“계림파출소 옆에 있소.”

위성삼 옆에는 마침 공중보건의 한 명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총알이 복부를 관통했어요. 생명이 위험하니 얼능 병원으로 옮깁시다.”

위성삼은 몇 명의 시위청년과 함께 부상당한 김영찬을 외과병원이 있는 계림파출소 부근 까지 옮겼다.

“으쩌겄소?”

“여그서 응급수술만 받고 장이 파열됐다믄 대학병원으로 가야 쓰겄소.”

“상태가 위급허냔 말이오.”

“총알이 복부 오른편을 관통해 좌측 엉덩이로 빠져나갔소. 대학병원에서 수술만 잘 받으면 살 수는 있소.”

“피가 필요하믄 나부터 뽑을라요.”

위성삼은 공중보건의에게 학생의 뒷일을 부탁하고는 부근에 있는 사촌누나 집으로 갔다. 사촌누나가 피 묻은 위성삼의 옷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성삼아, 뭔 일이다냐. 오늘은 우리 집서 꼼짝 말고 있그라잉.”

“누님, 공수가 광주시민에게 총을 쏴 죽이고 있그만요. 광주는 시방 난리가 나부렀소.”

“오메 오메, 으째야쓰끄나.”

위성삼은 사촌누나집 골방에 누웠지만 심장이 벌렁거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살고 싶다는 야간고교생의 애처로운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총알이 배를 관통해 몸은 축 늘어졌는데도 눈빛은 살아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