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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현대계획연구소 소장] 개발의 방향
2019년 11월 11일(월) 04:50
얼마 전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열린 가을 음악회를 다녀왔다. 음악회 장소로 가는 길들에서 과거와 함께 변화된 양림동의 정취를 느꼈다. 그렇게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오래 전 지역 활동가 한 분이 호남신학대학교에서 양림동 주공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이제 양림동도 음영의 구분이 뚜렷해지겠구나’ 걱정하시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새롭게 들어서게 됨으로써 주변의 단독주택 단지도 빛을 받기 위해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할 것 같다고 말씀 하신 건데, 현재 양림동을 보면 그분의 예상이 빗나간 듯 보인다. 문제점도 있지만 다양한 재생 사업을 통해 양림동은 이제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마을이 된 것 같고 계속해서 발전되어 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선정된 지역이나 기존에 도시재생 사업이 실행되고 있는 지역에 지역 주택조합이 고층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는 일이 많아 새로운 갈등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 사업을 진행하던 지자체와 지역민에게 고민거리인 것은 분명하다. 찬반이 나뉘겠지만 활성화 지역이나 재생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하더라도 지역 주택조합과 같은 개발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활성화되고 있던 지역의 공동체가 갈등을 통해 해체되고 지역이 다시 과거와 같이 슬럼화될까 걱정이다.

광주는 택지개발 지역 이외에도 도심 지역 재개발 등을 통해 아파트 단지가 고층화·거대화 되는 방향으로 도시가 개발됨으로써 도시의 골격이 크게 변화되고 있다. 이는 도시의 교통, 경관, 환경 등에서 다양한 문제 발생과 지역민 간 갈등을 일으키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 될 것으로 보여진다.

광주도 높이·형태·규모를 관리하기 위해 용도 용적제, 가로구역 높이 제한, 공동주택 심의 기준 마련과 같은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고층으로 아파트를 지으려 한다. 분양이 잘되어 사업성이 좋고 고층으로 짓게 되면 주거 동간 간격이 넓어져서 통경축, 바람길, 보행로의 개방성 등 도시의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층수를 왜 규제하냐고 외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를 고층으로 짓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의 행사이며 나의 권리라고 주장한다. 필자도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유럽도 도시화의 진행에 따라 인구가 집중되고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를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해 고층 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안전사고에 따른 위험성 문제, 과도한 에너지 소비에 따른 환경 문제, 행동 제약에 따른 정신질환 등 행동학적·사회병리학적 문제 등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고층·고밀의 아파트 공급 정책에서 저층·고밀 주거의 공급으로 주택정책을 전환했다. 현재 우리에겐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 현상에 힘입어 고층 아파트는 여전히 최고의 주거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 불균형 문제가 점차 완화되는 추세를 감안할 때 30년 후 아니 더 일찍 우리도 비켜갈 수 없는 도시 문제가 될 것이다.

여건과 상황에 따라 우리가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외국의 공동주택 건설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런던의 도크랜드 개발에서는 21세기 지속 가능한 정주를 실험하는 밀레니엄 빌리지가 건설되었다. 상대적으로 고밀 주거로 개발되었으나 우리와 같은 획일적인 고층 아파트 건설은 찾아볼 수 없다. 보행자 우선의 안전하고 생기 넘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고, 에너지 사용의 지속성을 제고하기 위해 주요 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상 감축하고 이산화탄소 방출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신도시는 저층 고밀, 복합 개발, 거주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정과 복도와 같은 커뮤니티 공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주민들 간 소통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처럼 나라별·도시별로 살고 싶은 주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진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밀 개발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힘들지만, 고층은 디자인적인 요소를 통해 충분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개발은 고층 아파트라는 한 가지 카드밖에 없다.

당장의 이익과 편리함에서 벗어나 이제는 조금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기업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내는 것도 광주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