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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헬기 출동기록·탄흔·목격자·피해자 모두 있는데 ‘오리발’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신군부 군 공식 기록 위조·변조
헬기사격 없었다 주장하지만
무장헬기 주둔·광범위한 작전 기록
전교사 교훈집 ‘의명 공중화력 제공’
헬기사격 실시했다는 의미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 수록
실제 헬기사격 문제점 적시하기도
2019년 09월 26일(목) 04:50
1980년 5월 21일 전일빌딩 오후.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주변에서 카메라에 잡힌 UH-1H 헬기. <광주일보 자료사진>
문서 1. 500MD 헬기 2대 구두지시로 광주 파견.


문서 3. 항공여단 상황일지.


문서 3. 항공여단 상황일지.


문서 4. 1980년 9월 작성된 전교사 교훈집의 헬기작전 임무 내용.


문서 5. 보안사가 1981년경부터 보관하고 있는 1항공여단 상황일지.


문서 6. 항공감실에서 1982년 5월 발행한 ‘80년 항공병과사’.


헬기사격의 결정적 증거가 전일빌딩 탄흔으로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헬기사격의 가해자는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은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실규명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헬기사격의 진실을 헬기작전에 관한 군 기록 검증을 통하여 조명해보고자 한다.



◇헬기사격에 관한 신군부의 주장

조비오 신부와 피터슨 목사 등 많은 광주 시민들은 5월 21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사이에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관계자들은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군의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반박한다. 1980년 당시 광주에 파견된 헬기 조종사들은 헬기사격을 부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989년 조비오 신부를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기까지 했다.

전두환은 2017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1995년 특검에 헬기사격의 증거로 제출한 헬리콥터 사진은 가짜라면서 피터슨은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폄훼했다.

신군부관계자들은 대한민국의 군대가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헬기사격과 같은 야만적인 작전을 전개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5월 21일은 광주에 무장헬기가 파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헬기사격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 은폐된 군 기록에서 확인된 새로운 사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관계자들의 주장처럼 군의 공식 기록에는 1980년 5월 21일 무장헬기 파견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광주에서 헬기작전을 수행한 1항공여단의 작전일지 등 군의 공식기록에는 5월 22일부터 무장헬기가 출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5월 21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자위권 보유 천명 이후 본격적인 무장진압을 시작했다는 신군부진압 논리와 부합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보안사의 정보 보고에 따르면 문서 1과 같이‘5월 21일 오전 10시 2군의 구두 지시에 의거 광주소요 사태 진압차 506항공대 소속 500MD 2대’가 광주에 파견되었다. 5월 21일 오전 무장헬기 500MD가 소요진압을 위해 출동했다는 보안사의 정보 보고는 문서 2의 전교사 전투상보에 수록된‘오전 9시 전교사의 무장헬기 긴급 건의’에 따른 후속 조치로 추정된다.

그러나 문서 3과 같이 당시 항공작전을 총괄했던 1항공여단의 상황일지에는 5월 21일 무장헬기의 출동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가스살포기를 장착한 500MD 5대가 광주로 출동했다는 기록은 있다. 또한 전교사 전투상보는 5월 21일 오후 7시 30분 2군 사령부에서 무장헬기 4대를 지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교사 전투상보의 내용은 오전 9시 전교사가 긴급 건의한 무장헬기를 당일 오후에 파견한 것처럼 작성하고 있다. 오전에 긴급 요청한 무장헬기를 10시간이 지나서 출동시켰다는 것은 5월 21일 당시의 급박한 상황과 맞지 않는 터무니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과 항공여단 관계자들은 문서 2, 3과 같은 군의 이른바 공식기록을 근거로 하여 조비오 신부가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시각에 무장헬기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2017년 전두환 회고록관련 광주지검의 수사 과정에서 군 기록에 관한 교차 검증을 통하여 5월 21일 광주에는 적어도 3대의 무장헬기가 주둔했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확인할 수 있는 군 기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무장헬기가 이미 파견되었다는 필자의 의견에 반신반의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항공여단 관계자들은 1995년 특검과정에서 무장헬기 파견 자체를 부인하면서 조비오 신부의 목격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군은 대외적인 주장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무장헬기 지원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2018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처음 발견한 511연구위원회 자료에는 5월 19일부터 무장헬기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988년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군은 대외적으로 헬기사격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국회청문회 대응 기구인 511연구위원회가 작성한 문서에는 “당시 31사단에는 5월 19일부터 광주사태 종료시까지 방송용 UH-1H(방송용) 1대, 500MD(무장헬기) 3대가 사단 사령부에 상주했다”고 명기하고 있다. 5월 22일 출동한 무장헬기 이외에 5월 19일부터 무장헬기가 상주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군 내부 문서는 육군참모총장에게도 보고되었다.

5월 21일 이전에 이미 무장헬기가 광주에 상주했다는 511연구위원회의 문서는 2018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발견할 때까지 은폐되어 왔다. 신군부관계자들의 주장과 달리 무장헬기의 주둔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수준의 헬기작전이 실시되었다는 사실도 군 기록에서 확인된다. 문서 4, 5, 6은 헬기작전 임무를 수록한 군 기록이다.

문서 4는 1980년 9월 작성된 전교사 교훈집의 헬기작전 임무 내용이다. 전교사 교훈집에는‘공중기동 및 재보급 작전, 무장시위 및 의명 공중화력 제공, 지휘 및 정찰, 기타 특수작전(깨스 살포, 공중방송, 전단살포)’등의 작전을 수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서 5는 보안사가 1981년경부터 보관하고 있는 1항공여단 상황일지 복사본이다. 문서 6은 항공감실에서 1982년 5월 발행한 ‘80년 항공병과사’이다. 1항공여단의 상황일지와 80년 항공병과사는 전교사 교훈집과 같이 항공여단의 작전을 수록하고 있지만 작전 임무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헬기작전 임무에 관한 군 기록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교사 교훈집에 수록된 ‘의명 공중화력 제공’이라는 내용이다. 명령에 근거하여 공중화력을 제공했다는 것은 헬기사격을 실시했다는 의미이다. 5·18민주화운동 직후 작성한 전교사 교훈집에 수록된 공중화력 제공 내용이 그 이후 작성된 군 기록에서는 사라졌다. 이는 헬기사격에 관한 군 기록의 은폐와 조작이 1980년 직후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국회청문회 당시 511연구위원회는 전교사 교훈집을 비공식 자료로 분류해서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문서의 존재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마지못해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군은 이 자료를 공개하기 전에 다양한 위·변조를 실시했다. 이 부분은 연재 1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광범위한 위·변조가 실시되었지만 모든 사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교사 교훈집 항공작전 부문에서 교훈과 대책 항목에는 헬기작전의 제한요소로‘자체경계 및 악천후 기상, 야간 운항,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이 수록되어 있다. 1995년 특검은 탄약의 높은 소모율이라는 내용은 실제 헬기사격이 있었기 때문에 수록한 것으로 의심했다. 그러나 항공여단 관계자들은 탄약의 높은 소모율은 육군항공 운영교범에 나와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을 나열한 것으로서 실제 탄약을 사용한 근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러한 항공여단 관계자들의 주장을 수용했다.

그러나 2018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에서 발견한 1980년도 항공병과사에 따르면 전교사 교훈집의 내용은 항공여단 관계자들의 주장과 달리 실제 헬기사격에 관한 내용으로 확인된다. 왜냐하면 전교사 교훈집에 수록된 항공작전의 문제점과 대책은 항공병과사의 충정작전 평가 내용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항공병과사는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항공작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전교사 교훈집에 수록된 탄약의 높은 소모율은 실제 헬기사격의 문제점을 적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80년 당시 비용 문제를 염려할 정도로 과도한 헬기사격이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전두환과 신군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헬기사격을 부인하고 있지만 은폐된 군 기록에서 헬기사격의 실체적 진실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hes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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