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읽는 소년, 니체 읽는 할머니
김미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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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측도 놀란 모습이었다. 광주에서 열린 강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건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모집이 시작되자 마자 200명 예약은 순식간에 마감됐고, 현장에는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선 사람들도 보였다. 참가자는 남녀노소 다양했다. 지난 7월 광주비엔날레에서 열린 GB(광주비엔날레) 토크 현장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은 슬로베니아 출신 스타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등으로 유명한 그는 이날 ‘21세기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달변인 그는 자본주의, 환경, 난민, 영화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강의를 이어갔다. 강연 후엔 지젝과 사진을 찍고 책에 사인을 받는 이들이 많았다. 이 때 유독 앳된 10대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화순 대안학교 학생들이었다. 상기된 15살의 소년은 지젝의 책을 여러권 읽었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묻고 싶었다는 그 학생의 말에 지젝의 책 한 권 ‘완독’하지 않은 내가 조금은 민망했다.
철학자 성진기 명예교수가 운영중인 ‘카페 필로소피아’ 철학반 수업에서 늘 함께하는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다.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을 읽으려 여러 차례 마음은 먹었지만 ‘고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라는 말에 위로(?)받으며 포기하곤 했다.
얼마전 커피숍에서 만난 60대 중반의 그녀가 책커버를 씌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쳐보였다. 손 때가 묻어있고, 밑줄이 쳐진 낡은 책이 부러웠다. ‘오랜시간, 천천히’ 철학반에서 함께 읽으며 많은 배움을 얻는다고 했다.
지난달 광주일보가 진행하는 ‘리더스 아카데미’ 강연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를 초대했다. ‘그림읽어 주는 남자’ 이창용씨가 진행한 이날 강연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고흐의 영화같은 삶과 주옥같은 명작들이 소개됐다. 강연이 끝난 후 지역 기업체 CEO가 강사에게 말했다. “너무 감사하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눈물도 났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꼭 이 강의를 들려주고 싶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이다. 국립광주박물관, 전남대박물관, 광주시립미술관 등 전통적으로 인기있는 기관의 강좌는 순식간에 수백명의 수강인원이 마감된다. 광주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강의는 음식 등 다채로운 주제가 어우러져 또 다른 히트상품이 됐다. 동네 책방의 소박한 강좌들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21일 마지막 회차가 열린 철학자 최진석 건명원장(전 서강대 교수)의 ‘인간적인 삶’ 강좌는 ‘모험’, ‘추상’ 등 6강으로 진행됐고 매회 150~170명이 참여했다. 매주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익산에서 참여한 주부, 대구에서 강의를 들으러 오는 두 쌍의 부부도 있었다.
이번 강의는 ‘평범한 시민들’이 기획한 강좌여서 더 돋보였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인간이 그리는 무늬’ 등 최교수의 저서를 읽으며 많은 공감을 얻고 위로를 받았던 정경미·최성혁 부부와 김범종씨 등 3명은 어느 봄날, 서울 건명원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함평 출신인 최 교수는 ‘고향동생들’ 맞아주듯 그들을 환대했고 의견을 나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5월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최 교수의 5차례 연속강의가 진행됐고, 강의를 더 듣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목소리에 화답해 이번에 ‘6강’을 진행했다.
마지막 강연 때는 뒷풀이도 열렸다. 최 교수는 익산의 소년에게 자신의 만년필을 선물했다. 강연을 들은 누군가는 ‘첨에 딱 본께 알것습디여~ 오래된 미래에서 온 촌 사람 서이가 탁월한 인연인 것을’이라는 글귀를 새긴 ‘대형 조각보 방석’을 선물했다.
정경미씨는 “우선은 우리가 필요해서, 간절해서,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함께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세상 사는 일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의 존재를 알았고 연대하며 함께 나누는 것들에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카페에 “감정과 감각이 아닌, 이성과 과학으로 돌파하려한다”, “남과 비교되는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등의 글을 남겼다. 오히려 고민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건강한 고민’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다양한 강좌가 열리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2019년 계획으로 ‘체계적인 인문학 강좌 수강’을 세워도 좋을 것같다.
미리 알려주는 정보다. 광주사람들과 귀한 인연을 맺은 최진석 교수는 내년 광주에서 ‘장자 30강’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마도 강의를 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듯하다. 내년에는 어쩌면 지역에 장자 열풍이 불지도 모르겠다.
/mekim@kwangju.co.kr
얼마전 커피숍에서 만난 60대 중반의 그녀가 책커버를 씌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쳐보였다. 손 때가 묻어있고, 밑줄이 쳐진 낡은 책이 부러웠다. ‘오랜시간, 천천히’ 철학반에서 함께 읽으며 많은 배움을 얻는다고 했다.
지난달 광주일보가 진행하는 ‘리더스 아카데미’ 강연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를 초대했다. ‘그림읽어 주는 남자’ 이창용씨가 진행한 이날 강연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고흐의 영화같은 삶과 주옥같은 명작들이 소개됐다. 강연이 끝난 후 지역 기업체 CEO가 강사에게 말했다. “너무 감사하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눈물도 났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꼭 이 강의를 들려주고 싶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이다. 국립광주박물관, 전남대박물관, 광주시립미술관 등 전통적으로 인기있는 기관의 강좌는 순식간에 수백명의 수강인원이 마감된다. 광주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강의는 음식 등 다채로운 주제가 어우러져 또 다른 히트상품이 됐다. 동네 책방의 소박한 강좌들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21일 마지막 회차가 열린 철학자 최진석 건명원장(전 서강대 교수)의 ‘인간적인 삶’ 강좌는 ‘모험’, ‘추상’ 등 6강으로 진행됐고 매회 150~170명이 참여했다. 매주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익산에서 참여한 주부, 대구에서 강의를 들으러 오는 두 쌍의 부부도 있었다.
이번 강의는 ‘평범한 시민들’이 기획한 강좌여서 더 돋보였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인간이 그리는 무늬’ 등 최교수의 저서를 읽으며 많은 공감을 얻고 위로를 받았던 정경미·최성혁 부부와 김범종씨 등 3명은 어느 봄날, 서울 건명원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함평 출신인 최 교수는 ‘고향동생들’ 맞아주듯 그들을 환대했고 의견을 나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5월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최 교수의 5차례 연속강의가 진행됐고, 강의를 더 듣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목소리에 화답해 이번에 ‘6강’을 진행했다.
마지막 강연 때는 뒷풀이도 열렸다. 최 교수는 익산의 소년에게 자신의 만년필을 선물했다. 강연을 들은 누군가는 ‘첨에 딱 본께 알것습디여~ 오래된 미래에서 온 촌 사람 서이가 탁월한 인연인 것을’이라는 글귀를 새긴 ‘대형 조각보 방석’을 선물했다.
정경미씨는 “우선은 우리가 필요해서, 간절해서,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함께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세상 사는 일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의 존재를 알았고 연대하며 함께 나누는 것들에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카페에 “감정과 감각이 아닌, 이성과 과학으로 돌파하려한다”, “남과 비교되는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겠다”는 등의 글을 남겼다. 오히려 고민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건강한 고민’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다양한 강좌가 열리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 인문학의 세계로 들어가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2019년 계획으로 ‘체계적인 인문학 강좌 수강’을 세워도 좋을 것같다.
미리 알려주는 정보다. 광주사람들과 귀한 인연을 맺은 최진석 교수는 내년 광주에서 ‘장자 30강’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마도 강의를 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듯하다. 내년에는 어쩌면 지역에 장자 열풍이 불지도 모르겠다.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