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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화시민]<3> 대전 예술의 전당
인문서 보다 큰 울림 예술가 인생스토리
2016년 05월 25일(수) 00:00
대전에 사는 주부 정미영(55)씨는 요즘 매월 둘쨋주 목요일을 누구 보다도 손꼽아 기다린다. 대전 예술의 전당의 ‘인문학 콘서트’ (밤 7시30분·앙상블 홀)때문이다. 자녀들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그녀는 몇년 전 부터 문화예술강좌들을 수강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들 강의를 통해 미술과 음악에 눈이 뜨이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그 여운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처음 접한 인문학 콘서트는 조금 달랐다. 삭막한 일상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할까. 작가나 예술인들의 진솔한 인생 스토리를 듣고 나면 삶의 지혜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 그녀가 만난 첫 인문학 콘서트(5월12일)의 주인공은 구도의 춤꾼으로 잘 알려진 현대무용가 홍신자(75)씨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안무가이자 무용가, 작가인 그녀는 세계적인 무용가인 이사도라 던컨, 나진스키, 마사 그래함 등과 함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로 꼽힌다. 명상의 메카인 인도에서 오쇼 라즈니쉬 등으로 부터 구도를 얻은 후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20년 이상 활동했다. 지난 1981년 국내로 들어와 안산에서 ‘웃는 돌’(Laughing Stone Dance Company)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 같은 그녀의 화려한 명성 때문인지 600여 석의 앙상블 홀은 관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콘서트는 30분 간의 퍼포먼스와 1시간의 토크쇼로 진행됐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빛으로의 여로’라는 타이틀로 선보인 홍씨의 퍼포먼스에 빨려 들어갔다. 홍씨는 칠순의 나이를 잊은 듯 러시아의 명상음악에 맞춰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인 몸짓으로 자유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을 풀어냈다.

비록 30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카오스 상태의 내적 갈등,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 마음의 평정을 얻기 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춤과 음향, 조명으로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특히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격정적인 동작의 끝에서 클로즈업된 그녀의 웃는 얼굴은 관객들을 무장해제시켰다.

무대와 객석의 조명이 켜지자 마이크를 잡고 등장한 홍씨는 관객들과의 일문일답을 주고 받으며 삶의 통찰력을 지닌 거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50대로 보이는 남성 관객이 “난해한 현대무용을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녀는 “예술을 감상하는 데 정답은 없다. 마치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처럼 고정관념을 벗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용이나 그림 등 예술작품을 대할 때 가슴이 아닌 머리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게 틀린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순간적인 느낌에 집착하다 보면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머리나 마음을 비우고 가슴이 끌리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황홀한 경험을 느끼게 돼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그녀와의 대화는 삶과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 관객들에게는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그 때문일까. 지난 2014년 첫선을 보인 인문학 콘서트는 전석매진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대전 예술의 전당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예술과 인문학을 주제로 내건 인문학 콘서트는 다음달 9일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주는 시’에 이어 벽안의 가야금 전도사 조세린 클락의 ‘한국음악의 아름다움’(9월 8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지휘자 금난새의 ‘실내악 여행’(10월 6일), 크레에이티브 디렉터 & 첼리스트 성승한의 ‘클래식 명작 탄생의 모티브’(11월 10일) 로 꾸며진다.

대전 예술의 전당 송현석 홍보교육팀장은 “사회가 다양해지면 복잡한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으로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근래 우리 사회는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지혜를 주는 인문학을 도외시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예술가들의 인생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큰 울림을 준다”며 인문학 콘서트를 기획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감상이나 정보위주의 강좌들은 많지만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은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대전 예술의 전당의 문화예술교육은 시대와 트렌드를 리드하는 커리큘럼이 강점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60∼70대를 아우르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창출에서 부터 고정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제 막 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들을 위한 강좌는 물론 수준높은 문화애호가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고급과정까지 다양하다.

여기에는 송 팀장을 중심으로 한 홍보 교육팀(6명)의 역량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대전 예술의 전당 공연 기획 및 교육예산은 약 36억 원. 이 가운데 문화예술교육예산은 1억원에 불과하지만 ‘스크린 문학산책’ ‘예술, 도시를 만나다’, ‘토크 콘서트’ ‘우리 문화 속 인문학’, ‘영화로 보는 인문학 이야기’, ‘음악사를 따라 흐르는 클래식’, ‘찾아가는 예술강좌’, ‘딩동댕 열린 극장’, ‘무대속으로’, ‘클래식 레코딩 마스터 클래스’, ‘현장기획 실습과정’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무대속으로’는 대전시 교육청과 MOU를 맺고 공동으로 운영하는 청소년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준비과정과 무대 뒷 이야기를 소개, 창작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매회 대전시내 각 중학교 2학년 학생 1000여 명이 참여하며 이들은 무대 앞과 뒷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통해 공연작품의 탄생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참가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무대감독, 조명감독, 연출가 등 미래의 직업을 꿈꾸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또한 ‘오픈 씨어터’로 불리는 ‘딩동댕 열린 극장’ 역시 해설을 곁들인 공연 무대로 청소년들의 문화마인드를 심어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대전=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취재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