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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핍박의 삶 ‘황금의 책’이 구원해줄 것이다”
[7부 태국편] ② 카렌족 종교와 ‘황금의 책’
금기 깬 카렌족에게 창조주 이와가 건네준 ‘지혜의 책’
2014년 03월 10일(월) 00:00
태국 람푼 리 지역 훼이똠 마을에 사는 카렌족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 언젠가 자신들을 고통에서 구원해줄 현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마을에 있는 왓 풋타밧은 카렌족을 결집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원이다.
동남아시아지역 소수민족 대부분이 그렇듯 카렌족은 전통적으로 애니미즘을 바탕에 둔 전통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종교도 변화하고 있다.

태국 내에는 40만여명의 카렌족이 살고 있다. 특히 치앙라이와 무시키, 매사리앙, 매홍손 등 지역에 사는 카렌족은 대부분 기독교를 믿고 있다. 반면 람푼 리 지역 훼이똠 마을에 사는 카렌족은 독실한 불교 신자다. 50여년전부터 시작된 훼이똠 마을의 역사도 미얀마에서 온 한 승려의 정착을 계기로 시작됐다. 하지만 전통 불교와 함께 그 안에 애니미즘과 힌두교가 조금씩 뒤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훼이똠 마을 카렌족은 보름마다 ‘부다스 데이’라는 행사를 연다. 이날 행사는 이른 새벽 스님들에게 ‘탁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늦은 밤 마을에 있는 불탑을 도는 ‘탑돌이’로 끝을 낸다. 마을 곳곳에도 불교적 냄새가 나는 건축물이 놓여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커다란 물탱크였다. 길이 15m에 앞에는 용머리가 있는 돌로 된 배 모양의 물탱크는 승려가 열반하면 사후 세계로 타고 가는 배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마을 주민 위몬 쑥렝(33)씨는 “전설에 따르면 카렌족은 수천년 전 티벳과 고비 사막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카렌족은 미얀마에 정착했다가 수많은 비극을 겪으면서 200여년전부터 점차 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카렌족은 아직 ‘황금의 책’을 가진 현자들이 나타나 비극에서 부족을 구원해주고, 행복하게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다나까’라는 풍습을 보면 태국 지역 카렌족이 미얀마에서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나까는 말린 나무를 갈아 만든 가루에 물을 타 얼굴에 바르는 미얀마의 전통 풍습으로 강한 햇빛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고,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유야 어쨌든 카렌족은 ‘황금의 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비극을 겪기도 했다. 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도 한다. 수천년간 구전돼온 ‘황금의 책’ 신화는 카렌족 내부에서도 부족별로 종교관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난다.

이야기에 따르면 ‘이와’라는 창조주가 카렌족과 백인을 만들었다. 이와는 “너희를 위해 일곱 가지 나무를 만들어 두었다. 그중 한 가지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카렌족과 백인형제들은 악마에게 속아 먹지 말라던 나무의 과실을 먹고 나서 죽음과 슬픔, 질병과 고통을 겪게 됐다.

이와는 이들을 안타깝게 여겨 한 권의 책을 나눠준다. 카렌족은 책을 읽을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백인형제는 노력 끝에 책을 읽는 비법을 터득해 배를 타고 서쪽으로 건너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카렌족은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백인형제가 책을 가지고 돌아와 자신들을 구원해주리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해석이 조금 다르다. 카렌족 조상에게는 7명의 자녀와 함께 삶을 평화롭게 유지시켜주는 ‘황금의 책’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총명함으로 마을 주민들을 결집하던 막내가 사라져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막내를 찾아 나섰던 형제들은 그 책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카렌족은 그때부터 가난과 힘든 삶을 살게 됐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고 막내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세계를 떠돌다가 책에 있는 지식과 함께 경험까지 축적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막내를 다시 따르지만 가난에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막내는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언젠가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따라야 한다. 부족을 구원해 줄 것이다”고 말한 뒤 숨을 거뒀다. 그때부터 카렌족은 수천년 동안 하얀 얼굴을 가진 사람을 기다리게 됐다.

이야기의 구조는 다르지만 카렌족은 ‘황금의 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미얀마에서 비극을 겪은 민족이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도시인 메솟에 거주하는 카렌족이 대표적이다.

1824년을 시작으로 영국이 미얀마를 침공했을 당시 기독교 선교사들도 함께 미얀마에 들어오게 된다. 그때 선교사들은 미얀마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카렌족에게 접근한다. 이때 카렌족은 영국 선교사를 신화 속에 나오는 ‘백인형제’로 믿게 된다. 또 그들이 들고 온 성경을 ‘황금의 책’으로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이에 대한 믿음 때문에 영국을 도와 미얀마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에도 반군으로 활동했다. 특히 미얀마 독립 당시에 자치령의 설립을 요구하며 미얀마 중앙정부를 상대로 항쟁하기도 했다.

카렌족이 기독교와 성경 때문에 영국군을 도와 미얀마인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는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렌족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위몬 쑥렝씨는 “카렌족, 특히 훼이똠 마을에 사는 ‘파가요’는 가장 먼저 태어난 부족으로, 전 세계 민족들의 맏형이나 다름없다”며 “기독교를 믿는 카렌족과 달리 우리는 언젠가는 지혜의 책이라고 불리는 ‘황금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인기자 k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