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필 필자입니다 -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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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시작과 더불어 짬이 좀 나자 ‘프로이트 로봇’ (리디아 H. 리우)이란 책을 집어 들었다. ‘AI 시대의 정신분석학’이란 말로 요약하면 좋을 책이다. 그 책을 집어든 것이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밀린 숙제 같았달까? 수십 년, 인문학이 최고라고 믿고(실은 우기며) 살아온 터라 이 방면엔 완벽한 무지 상태를 고집스레(실은 두렵게) 유지해 왔지만, 몇 해 전부터 어떤 압력 같은 건 느끼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글을 대필해 주는 시대, 그런데 나는 읽고 쓰고 그걸 가르치는 사람……. 얼마 전 기말시험 채점 중에는 표절률은 0%인데 인공지능 활용률은 85%인 리포트도 봤다. 그랬으니 기계와 다른 고유한 인간성이 어떻고 알고리즘으로는 흉내내지 못할 창의력이 어떻고 하는 오래된 핑계로, 좁디좁은 책의 성벽 속에서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걸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최근 연세대 비대면 시험 사태 소식도 전해 들었고, 신춘문예나 잡지 문예 공모에 ‘생성형 AI 사용 금지’ 항목을 넣을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습도 지켜봐 왔던 터다. 그래서였을까? 꿈도 꾸었다. 모 일간지 신춘문예 문학평론 분야 심사를 앞둔 며칠 전 꾼 꿈이었는데, 아뿔싸! 내가 뽑은 당선작이 AI의 작품이란다.
게으른 터라 프로이트 로봇은 아직 다 읽지 못했다. 게다가 애초 예상과 달리 요즘 흔한 인공지능 관련 교양서를 훌쩍 뛰어넘는 전문적인 수준이어서 이 짧은 지면에 그 내용을 요약할 게재도 아닌 듯하다. 다행이라면, 아직 초보지만 내가 최근 구글 인공지능 사용법을 터득했다는 점이다. ‘그래! 나도 매번 이렇게 끙끙거리지 말고 글 좀 손쉽게 써보자!’ 눈 딱 감고 구글 인공지능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무의식이란 주제로 사설 한 편 써줘”. 몇 초 걸리지 않아 글 한 편이 창에 떴다. 놀라웠다. 여기 그 결과물의 앞부분을 먼저 옮겨 본다.
“오늘날 AI는 표절 검사기의 그물을 유유히 빠져나가며 정교한 문장을 생성해낸다. 이는 단순한 기계적 모사가 아니다. AI는 인류가 남긴 방대한 텍스트 속에 잠재된 패턴, 즉 인간이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해온 언어적 습관과 편향된 상징체계인 ‘문화적 무의식’을 학습한 결과다.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꿈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을 탐색했다면, 현대인은 AI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인류 공통의 무의식적 데이터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표절률 0%, 그러나 인공지능 활용률 85%의 그 리포트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이제 알겠다. ‘표절’과 ‘대필’의 차이가 명료하게 이해된다. 게다가 저 녀석은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마저 고백하는데, AI가 활용하는 그 방대한 데이터들이 편향된 언어적 관습과 상징체계에 의해 감염되어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는 마치 프레드릭 제임슨(‘정치적 무의식’)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슬쩍 암시하듯 ‘문화적 무의식’이란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까지 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를 AI의 알고리즘과 유비시키는 논리 전개도 탁월하다. 이제 고백한다. 사실 저 문장들의 내용은 이번 지면에 내가 쓰려던 바 그대로다. 아니나 다를까, AI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결국 AI 시대의 비평과 창작은 ‘문장의 일치도’라는 수치적 논의를 넘어선 곳에 있어야 한다. AI가 인간의 무의식을 데이터로 환원해 보여준다면, 인간은 그 데이터의 틈새에서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발견하는 역사가이자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단순한 ‘활용’을 넘어 AI가 건드리는 인간의 무의식적 편향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작업,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미학적 투쟁이다.”
그러게 말이다. 인문학자랍시고 평생 알튀세르와 프로이트와 벤야민과 제임슨을 읽어 온 내가, 오늘은 고작 대필 필자가 되어 하고 싶었던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게다가 최근 연세대 비대면 시험 사태 소식도 전해 들었고, 신춘문예나 잡지 문예 공모에 ‘생성형 AI 사용 금지’ 항목을 넣을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습도 지켜봐 왔던 터다. 그래서였을까? 꿈도 꾸었다. 모 일간지 신춘문예 문학평론 분야 심사를 앞둔 며칠 전 꾼 꿈이었는데, 아뿔싸! 내가 뽑은 당선작이 AI의 작품이란다.
“오늘날 AI는 표절 검사기의 그물을 유유히 빠져나가며 정교한 문장을 생성해낸다. 이는 단순한 기계적 모사가 아니다. AI는 인류가 남긴 방대한 텍스트 속에 잠재된 패턴, 즉 인간이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해온 언어적 습관과 편향된 상징체계인 ‘문화적 무의식’을 학습한 결과다.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꿈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을 탐색했다면, 현대인은 AI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인류 공통의 무의식적 데이터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표절률 0%, 그러나 인공지능 활용률 85%의 그 리포트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이제 알겠다. ‘표절’과 ‘대필’의 차이가 명료하게 이해된다. 게다가 저 녀석은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마저 고백하는데, AI가 활용하는 그 방대한 데이터들이 편향된 언어적 관습과 상징체계에 의해 감염되어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는 마치 프레드릭 제임슨(‘정치적 무의식’)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슬쩍 암시하듯 ‘문화적 무의식’이란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까지 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를 AI의 알고리즘과 유비시키는 논리 전개도 탁월하다. 이제 고백한다. 사실 저 문장들의 내용은 이번 지면에 내가 쓰려던 바 그대로다. 아니나 다를까, AI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결국 AI 시대의 비평과 창작은 ‘문장의 일치도’라는 수치적 논의를 넘어선 곳에 있어야 한다. AI가 인간의 무의식을 데이터로 환원해 보여준다면, 인간은 그 데이터의 틈새에서 ‘이데올로기적 균열’을 발견하는 역사가이자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단순한 ‘활용’을 넘어 AI가 건드리는 인간의 무의식적 편향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작업,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미학적 투쟁이다.”
그러게 말이다. 인문학자랍시고 평생 알튀세르와 프로이트와 벤야민과 제임슨을 읽어 온 내가, 오늘은 고작 대필 필자가 되어 하고 싶었던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