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들의 카르텔 -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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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들의 카르텔 -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
2026년 02월 23일(월) 00:20
조너선 컬러라는 구조주의 문학이론가가 있다. 그는 작품이나 작가보다 ‘독서 과정’에 관심이 많은 이론가였는데, 독서 과정의 초입 그러니까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작동해야만 하는 관습이 바로 ‘거리두기’라고 말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우리는 어떤 허구의 창작물(소설이든, 시든, 영화든, 드라마든 마찬가지다)을 읽을 때, 그것이 현실과 다른 개연성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읽는다. 그래야만 한다. 바로 그 거리두기 덕분에 독자는 작중 누군가 아동 학대를 일삼고 연쇄적으로 성폭행을 저질러도 신고하지 않는다. 만약 이런 거리두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경찰서 신고 전화에 난리가 날지언정 독서도 해석도 불가능하다.

‘비유’도 그렇다. 누군가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그대는 장미’(은유법)라고 말할 때, 이 비유에 거리를 두고, 시인이 지금 ‘연인’의 특정 성질을 장미에 조응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일어날 일은 그로테스크하다. 실제로 몸에 가시가 돋아 있고 얼굴이 붉은 꽃처럼 생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런 비유들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알레고리’(우유법)다. 우화들이 흔히 그렇듯, 이때 허구의 이야기는 거기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과 배경 전체를 비유적으로 읽어야 한다. 가령 이문열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 이야기 전체가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알레고리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대저택이 서 있는 ‘위 세계’와 반지하에 잠겨 있는 ‘아래 세계’로 이루어진 계급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다. 내가 영화 ‘더 헌트’(크레이그 조벨, 2020) 같은 잔혹하기 그지없는 폭력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인데,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 영화 속 세계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감상이나 해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의 설정은 이렇다. 익명의 모임이 있고, 그들이 특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모 장소에 모아놓은 후 차례차례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사냥한다. 대상은 인종 차별자, 극우 여성 노동자, 성폭행범, 네오파시스트 등이다. 후반부에 알려지지만 그 사냥 모임 회원들은 백인 엘리트 상층계급에 속한 이들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실현을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실은 지적 오만함과 하층 계급에 대한 혐오가 그들의 학살을 추동한다.

물론 반전은 있다. 그 도살자들이 역으로 백인 극우 여성 노동자에 의해 피살당한다. 극우 영화냐고? 곧이 곧대로 보면 그렇겠지만, 역시나 허구인 만큼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이 영화는 알레고리다. 백인 엘리트 합리주의자들이 주된 세력을 형성한 미국의 (개봉 당시) 집권 민주당, 사실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공화당의 이데올로기에 비하면 진보적이고 민주적임에도 불구하고 왜 트럼프 지지자들이 저토록 득세하는가? 그러니까 이 영화는 미국 백인 하층 계급이 되레 재벌 출신 극우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다.

소개 겸 영화 이야기가 길어졌으니, 이쯤 해서 이런 가정을 해보자. 내가 거리 두기를 하면서 알레고리로 해석했던 그 영화가 실은 실화였다면? 즉 일종의 스너프 필름이어서 화살로 내장을 뚫고 기관총으로 머리를 터뜨리는 그런 일이 실제 장면들이었다면? 틀림없이 나는 평생은 아닐지라도 꽤 오래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리라. 알레고리와 실재의 거리 두기가 불가능해졌을 때, 그것이 유발하는 것은 공포 그 자체다.

이즈음 수천 년의 문명을 자랑해 온 서방 세계가 겪고 있는 일이 그와 방불하다. 굳이 사례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영화 작품들, 문학 작품들, 드라마 시리즈 등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지배력과 잔인함을 지닌 초권력자들의 카르텔을 알레고리적으로 그려왔다. 허구라고 믿었고, 대체로 권선징악의 결말을 보여줬으니 우리는 되레 그런 콘텐츠들을 거리를 두고 사랑했다.

그러나 ‘제프리 엡스틴 파일’은 보기 좋게 그런 알레고리가 전혀 알레고리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입증했다. 법과 도덕과 상상을 초과해 버린 금수들의 카르텔은 전혀 알레고리가 아니었다. 좌파 지식인도, 세계적인 석학도, 전직 민주당 대통령도, 현직 공화당 대통령도, 재벌도, 왕자도, 팝스타도 알레고리의 안전망을 뚫고 세상에 그 민낯을 드러냈다. 권력이나 명성 혹은 부를 얻은 백인 남성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없는 그들의 성적(性的) 우애는, 도대체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그 어떤 과장된 알레고리도 모두 사실일 수 있다는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종종 저런 족속들을 일컬어 ‘금수 같은 놈들’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비유(직유법)는 그들에게 가당치 않다. 그들은 그냥 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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