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아침 -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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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아침 - 김용택 시인
2025년 08월 01일(금) 00:20
일어나자마자 고양이에게 갔다. 고양이가 똥 쌌다. 3일 동안 똥을 싸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안심했다. 부채 들고 날파리 쫓으며 마을 길을 걸었다. 날파리들은 떼로 까맣게 날아들어 눈동자 속을 파고든다. 경기네 집 둘레 벽 등이 훤하다. 불을 켜놓고 출타했나 보다. 집 주위 벽을 살펴보았다. 스위치를 못 찾았다. 논에 벼들이 꽉 차 간다. 볏 잎마다 끝에 이슬이 달려있다. 잘도 자란다. 볏 잎에 거미집들이 하얗다. 벼 논에 거미집들을 보고 안심하였다. 물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명랑한 물소리도 나를 달래주는 소리다.

할미새가 길에서 날아올라 전깃줄에 앉아 꽁지를 까분다. 비둘기, 참새, 개개비, 꾀꼬리. 파랑새, 직박구리, 돼지빠뀌, 어치, 붉은 머리 오목눈이, 까치, 박새, 물까치는 나의 산책 친구들이다. 호반새는 우리 마을과 먼 산속에서 멀리 운다. 강변 자갈밭으로 걸었다. 큰물이 지나간 자갈밭은 자갈돌들이 물살에 뒹굴고 씻겨 희고 깨끗하다. 자갈들은 밟으면 몸이 뒤뚱거린다. 신경을 써서 몸의 균형을 잡는다.

강 건너 복두 농막에 갔다. 복두, 잔가? 하고 불렀다. 복두가 느리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안개 속에 서서 이야기하였다. 자두 이야기했다. 아직 덜 익었다고 한다. 내가 경기 집에 불이 켜져 있다고 하자, 여수 놀러 갔단다. 경기에게 바로 전화한다. 내가 벌써 일어났을까? 그랬는데, 경기가 전화를 받는 모양이다. 집 둘레 전등불 스위치는 현관에 있다고 한다. 오늘 온단다. 자두가 익으면 아무 때나 와서 따먹으란다.

복두는 작은 텃밭에 오이, 가지, 고추, 옥수수, 방울토마토, 취나물도 키운다. 잘 자랐다. 복두는 나와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나보다 한 살 아래다. 당숙 아들이다. 당숙은 큰 소나기가 와도 절대 뛰거나 빨리 걷지 않으셨다. 평생 마을 길을 걷는 속도를 변동하지 않고 같은 속도를 유지 하셨다. 밤이면 강 건너 복두 농막에 불빛이 환해서 앞산이 정답다.

참새들이 떼로 전깃줄에 앉아 있다가 흩어진다. 참새들이 떼로 모이는 것은, 그해 새끼들을 다 길렀다는 뜻이다. 새끼들을 데리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참새는 걷지 않고 뛴다. 참새에게서는 어쩐지 문명에 시달린 몸짓이 느껴진다. 참새들이 길가에서 풀씨를 따 먹는다. 풀대들이 작아서 올라가 앉지 못한다. 훌쩍 뛰어 풀씨를 물고 땅으로 내려오면 풀이 휘어진다.

풀을 발로 잡고 풀씨를 따 먹다가 풀을 놓아주면 휘어져 있던 풀들이 벌떡 일어서서 낭창낭창 흔들린다. 흔들리다가 멈추면 참새들은 또 풀쩍 뛰어올라 풀을 잡아당겨 발로 누르고 풀씨를 따 먹는다. 그 일을 반복한다. 강아지풀이다. 즐거운 놀이 같다. 새들은 꺾어질 풀이나 나뭇가지에 앉지 않는다. 철새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멀리 높이 나는 힘을 기른다. 어떤 새는 날다가 공중에 멈춰 발발발 떨고 있다. 웃긴다. 파랑새만 아직, 빼앗은 까치 집에서 새끼를 기르고 있다. 새들은 자세에서 표정이 나온다.

호박꽃이 핀다. 호박꽃은 해가 뜨기 시작하면 꽃을 닫아 버린다. 옥수수는 넘어지고 참깨꽃은 핀다. 강물이 많이 빠졌다. 시멘트 다리 주위에 고기 떼들이 물살을 튕겨 일으키며 논다. 내가 다가가자. 새까맣게 흩어지며 재빠르게 도망간다. 물고기들이 저렇게 떼로 놀다가 흩어지는 것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다. 불거지들이 얕은 물 속 자갈밭에서 등을 물 위로 내놓고 정신 없이 놀다가 자기도 모르게 땅 위로 훌쩍 뛰어올라 마른 자갈밭에서 훌훌 뛰다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었다. 짝짓기 철이 되면 불거지들의 몸은 화려한 무지개색을 갖추고 뽐낸다. 몸이 울긋불긋 아름다운 ‘임실 납자루’는 어디로 갔을까.

강변 자갈들이 달빛에 하얗게 빛나던 옛날 일이다. 주황색 조끼에 진초록 슈트를 잘 받쳐 입은 물총새가 잔 고기떼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노리고 돌 위에 앉아 있다. 이웃집에서 재채기 소리가 담을 넘어 크게 들린다. 자연은 이런저런 현상을 통해 해마다 다른 말을 한다. 자연은 꾸준히 자기들의 변화를 강변하고 사람들은 자연의 그 물음에 응하다가 외면하는 일을 반복하며 지구의 일을 크게 키운다.

매미가 울다 그쳤다. 해뜨기 전 우는 매미는 맴맴맴 하고 우는 참매미다. 일찍 일어나 밭도 매고 논도 매라고 맴 맴 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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