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여름 -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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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여름 -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2025년 07월 28일(월) 00:00
감옥 생활을 서술한 수기를 읽다 보면 어김 없이 ‘계절 감옥’이 등장한다. 갇힌 공간에서 맞이하는 사계절 애환을 적은 글이다. 여름나기에 인상적인 대목이 많다.

학원간첩단 조작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던 황대권 선생은 저서 ‘야생초 편지’의 ‘뻗어라 오이 덩굴’ 대목에서 여름 고통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솥에 감자를 넣고 찔 때 느낌이 꼭 이럴거야. 특히 이곳은 콘크리트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이라 낮 동안 햇빛에 달구어진 천장이 저녁이면 후끈 열기를 뿜어내기 때문에, 방안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보다 머리가 더 뜨겁지”. 무더위에도 꺾이지 않는 그의 정신은 사물을 휘감고 오르는 오이 덩굴손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식물의 힘을 읽어낸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의 고통을 사유로 풀어낸다. 겨울에 체온을 나눴던 동료수인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 보게 되는 역설을 성찰한다.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복역한 서승 선생이 저술한 ‘옥중 19년’에는 곤충과의 처절한 투쟁기록이 등장한다. 그는 교도소 측에서 감시를 위해 방충망을 설치해주지 않는 바람에 끊임 없이 모기의 공격을 받는다. “밤새워 모기잡이를 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모기를 잡다 잠들었다가도 짜증스런 날갯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고 썼다. 교도소 측에서 한 달에 한 번밖에 소독해주지 않는 변기에서 쏟아져 나온 하루살이 수 천 마리도 강적이다. 잠 잘 때 귓속까지 파고드는 하루살이에 절절매다 귀를 전구 쪽으로 대고 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대구에서 복역할 때는 7,8월 무더위에 식욕을 잃고 죽어나간 노인을 적잖게 봤다고 썼다. 그는 여름에 짓눌린 수인들의 처지를 “우리들은 ‘더위 먹은 오뉴월 개처럼’ 축 늘어져 서늘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릴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튜브 방송에서 윤석열 전대통령이 수감된 서울 구치소의 여름이 지옥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불법 계엄의 당위성을 강변하고 옥중정치를 하는 윤 전 대통령이 감옥의 여름을 견뎌내면서 자성의 시간을 보낼지, 또다른 망상을 키울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후자쪽인 것 같다.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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