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분열-채희종 디지털 본부장
다문화(국제결혼) 가정과 이주(외국인) 노동자의 증가로 이민자 수가 국민의 5% 가량을 차지하면서 우리도 이제는 단일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이민자들이 국가 구성원이 된 상황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차별적 용어이며 국가 통합보다는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계를 차치하더라도 실생활에서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 주부가 없으면 산업 현장은 물론 농업까지 올스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총인구수 대비 2.8%이던 이민자 수는 올해 6월 기준 총인구의 5.1%에 달하는 261만명으로 급증했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 여성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수년 새 유학생, 재외동포, 영주권자들도 증가해 이민자도 다양화되는 추세이다.
이민자가 늘면서 민족 단일성의 훼손과 사회 갈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실상 이민(귀화)의 역사는 고대로 올라간다. 역사 속 이민자 중 가장 유명한 이는 13세기 정변을 피해 고려에 귀화한 베트남 왕손 ‘이용상’일 것이다. 베트남 리 왕조 영종 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이용상은 1226년 정변이 일어나자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가려다 태풍을 만나 황해도 옹진반도에 정착했다. 이후 몽골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워 고려 고종으로부터 ‘화산 이씨’라는 새 성을 받아 일가를 이뤘다.
조선 인조 때는 박연이라는 우리 이름을 가진 외국인이 있었다. 1627년 조선 해역에서 표류했다가 귀화한 네덜란드인 ‘얀 얀스 벨테브레’는 첫 벽안의 귀화자였다. 그는 조선에서 대포·조총 등 무기 개발에 기여했다. 임진왜란 땐 ‘사야가’라는 왜장이 조선군에 투항해 큰 전공을 세웠으니 귀화명은 김충선이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 이민자 단속으로 인해 둘로 쪼개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차별 이민자 단속에 나서면서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미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인구소멸이 가장 빠른 한국은 이민을 확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을 타산지석 삼아 사회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이민 정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chae@kwangju.co.kr
이민자들이 국가 구성원이 된 상황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차별적 용어이며 국가 통합보다는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계를 차치하더라도 실생활에서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 주부가 없으면 산업 현장은 물론 농업까지 올스톱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민자가 늘면서 민족 단일성의 훼손과 사회 갈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실상 이민(귀화)의 역사는 고대로 올라간다. 역사 속 이민자 중 가장 유명한 이는 13세기 정변을 피해 고려에 귀화한 베트남 왕손 ‘이용상’일 것이다. 베트남 리 왕조 영종 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이용상은 1226년 정변이 일어나자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가려다 태풍을 만나 황해도 옹진반도에 정착했다. 이후 몽골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워 고려 고종으로부터 ‘화산 이씨’라는 새 성을 받아 일가를 이뤘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 이민자 단속으로 인해 둘로 쪼개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차별 이민자 단속에 나서면서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미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인구소멸이 가장 빠른 한국은 이민을 확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을 타산지석 삼아 사회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이민 정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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