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은 앓음이다 - 국화향기(필명) 호남지역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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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은 앓음이다 - 국화향기(필명) 호남지역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
2024년 11월 19일(화) 00:00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타인이나 사회에 밝히는 것을 ‘커밍아웃’이라 한다. 이는 ‘Coming out of the closet(벽장 속에서 나오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9년 전 어느 날이었다.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엄마가 내 진짜 모습을 모르는 게 너무 슬퍼.”

내 아이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자각한 이후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홀로 놀람과 두려움, 자기부정, 혼란 그리고 외로움의 벽장 속에서 떨다가 뛰쳐나와 열아홉이 되던 해에 엄마인 나에게 자신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내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온 아이, 한때 분신같이 여겼던 생명체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속앓이를 하고 북받치는 감정을 움켜쥐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국내외 자료를 찾아서 공부해야 했다. 사학자 함석헌 선생이 말했듯, 앎은 앓음이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을 통해 다른 성소수자들과 부모들을 만나고 나서야 드디어 타자화한 집단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내 아이가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국 성소수자를 궁지로 내모는 것은 사회의 무지와 무관심, 젠더교육이 전무한 한국교육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널 낳은 걸 후회하겠다”, “너희들이 태어난 거 자체가 재앙이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의 언어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실제 성소수자들의 부정적 사회적 경험은 성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2016년 김승섭 교수팀의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구 집단보다 우울증상 유병률이 5~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거나 실제 시도한 비율도 일반인구의 6~7배였고, 집단에 따라서는 일반인구의 최고 37.6배(양성애자 남성의 자살시도 유병률)를 기록했다.

그런 점에서 부모와 ‘앨라이(ally·성소수자 인권 지지자)’가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와 직장, 사회에서 듣는 혐오 발언에 맞서서 다수이면서 기득권을 가진 우리가, 내가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이들 역시 차별받지 않고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주변에 드러냄으로써 사회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앞당길 수 있다.

누군가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혼란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은 느껴 마땅한 혼란이다. 논란이 있어야 논의가 가능해지고 논의가 진행되어야 근본적인 이해와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광주에서는 지난해부터 옥합교회에서 ‘호남지역 성소수자 부모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 당사자와 부모, 앨라이가 매달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성소수자 당사자와 그 부모들에게 보수기독교의 혐오 발언이 배척이자 공포였던 만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옥합교회는 단순한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언젠가 퀴어문화축제 ‘프리허그(FREE HUG)’를 하던 중 안겼던 친구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아이가, 그리고 내 아이가 가진 수많은 장점이 그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려지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벽장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불편해도 괜찮다는 이웃의 목소리가 한 겹씩 포개질 때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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