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 등 연간 20만대 생산 노사상생해야 가능”
  전체메뉴
“캐스퍼 등 연간 20만대 생산 노사상생해야 가능”
광주일보가 만난 경제인 윤몽현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
이달 중순부터 캐스퍼 50개국 수출 누적 생산 급속히 늘어날 것
부품업체 130개 중 광주·전남 24개 뿐…핵심기술 갖춘 기업 유치해야
2024년 10월 06일(일) 18:35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만들고 그 4년 후인 1769년 프랑스의 공병장교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포차를 견인하기 위해 발명한 증기 자동차를 자동차의 시초라고들 한다. 1885년 카를 벤츠가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었고 아내인 베르타 벤츠가 105km의 장거리 운행을 하며, 자동차의 기능 점검 및 장비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틀리프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가 가솔린 사륜차를 만들었고, 비슷한 시기 프랑스의 아르망 푸조 역시 자동차를 제작했다. 미국은 조금 늦게 듀리에 형제가 듀리에 모터 왜건을 개발하며 유럽 각국과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자동차, 즉 스스로 움직이는 차를 만드는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모터쇼’가 최초로 개최된 것은 1897년 프랑크푸르트에서다.

127년의 기간 동안 자동차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모터쇼의 인기가 최근 시들하다. 세계 5대 모터쇼 가운데 하나인 제네바 국제모터쇼는 120년 만에 폐지될 예정이고, 파리 모터쇼, 디트로이트 모터쇼 등도 기간을 줄이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오프라인 홍보의 중요성이 갈수록 떨어져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효과도 낮은데다 치열한 경쟁 속에 새로운 정보를 노출하는 것에 대한 업체의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CES(소비자가전쇼)에는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가 더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최첨단 IT로 무장한 ‘혁신의 융합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지난 6월말 기준 자동차 누적 대수는 모두 2,613만4,000대에 이른다. 2023년 말 대비 18만5,000대가 증가해 인구 1.96명당 1대꼴로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있다. 일상의 필수품이 된 것이다. 미국의 핸리 포드가 1913년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을 개발한 뒤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동차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21년 전인 1903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으로 미국 공사가 수입한 4인승 리무진이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다. 광주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광주시사에 따르면 한일강제병합 직후인 1912년 광주에는 영업용 2대, 관용 1대, 자가용 1대 등 모두 4대의 자동차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계 및 전자 장치의 종합·융합 완성체인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를 자국의 기술만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국가는 10여 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최초 자동차는 1955년 6월 대한자동차(기아자동차 전신)의 ‘K-360’과 1955년 7월 시발(始發)자동차를 꼽는다. 정부는 1962년 5월 31일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을 제정하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 육성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는 1967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3월 ‘아도써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고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할 정도로 자동차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미쓰비시 자동차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차체와 엔진 변속기에 대한 기술을 얻어내 포니를 생산한 것이 그 8년 뒤인 1975년 일이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오던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해외 수출에 사활을 걸었고, 국내 생산단가가 급증하면서 현지 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1995년 9월 튀르키에를 시작으로 2023년 말까지 13개 해외 생산기지를 조성해 367만여 대를 생산, 전체 생산 대수(730만여 대)의 절반을 맡기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은 이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을 주고, 공장 부지를 내주는 등 전력을 쏟고 있다. 자동차 공장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대략 6,000개 이상 1만5,000개의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중소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며, 운송·수출·판매·수리 과정에서 각종 서비스업이 자리를 잡게 된다. 한 마디로 해당 지역의 경제 지형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대기업 본사 및 생산기지가 절실했던 광주는 지역 경제의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함께 2021년 9월 캐스퍼 양산에 들어간 보물 같은 자동차 공장 ‘광주글로벌모터스(GGM)’를 안았다. 노동·기업·시민·지방자치단체가 상호 합의해 ‘적정 임금·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상생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들어진 ‘광주형 일자리’ 기업이다. 누적 생산 35만 대 달성 전까지는 노동조합 대신 상생협의회를 통해 임금 등 근무 조건을 협의하는 대신 정부와 광주시가 주거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 직원 일부가 이 같은 약속을 어기고 노조를 구성하면서 갈등 양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앞서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지역 내외에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1998년 르노삼성 부산공장 이후 23년 만에 국내에 세워진 완성차 공장인 GGM의 성공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며,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눈을 국내로 돌리게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부사장을 역임하고 지난 2023년 12월에 취임한 광주글로벌모터스 윤몽현 대표이사는 왕조나 기업의 기반을 닦는 마치 ‘개혁군주’와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것 같다. 초창기 단단했던 합의의 정신과 약속의 취지가 점차 느슨해지고 희미해진 시점에 등장한 그는 GGM의 확고한 미래를 설정해 직원과 지역민에게 제시하고, 지금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몸소 실천하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방정식을 쾌도난마로 정리해 나가고 있다.

강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유학’ 왔다가 진흥중학교와 조선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가 서강대를 나왔다. 대학 졸업 후 당시 세계자동차 회사 중 10위권 밖에 있던 현대자동차에 1986년 입사하였다. 이후 35여 년간 근무하며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그는 경영전략실장, 기획실장, 튀르키에 법인장, 중국 법인장을 거쳤다. 마음속 깊이 ‘현대차 맨’이다. GGM을 광주 경제의 또 다른 핵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렇게 지원자가 몰릴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GGM은 최근 하반기 공채에 나섰다. 46명 모집에 1021명이 지원, 평균 2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만큼 우리 지역 청년들의 취업난이 극심하고 그래서 지역민의 기대가 높아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적정한 임금의 좋은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을 위해 이 상생형 일자리를 꼭 지켜내 GGM이 광주를,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상생형 일자리’, 말은 쉽지만 정말 실천하기는 어려운 명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뒤 공장을 처음 돌아봤을 때 몇 가지가 놀라웠다. 하나는 정말 공장이 마치 대학처럼 깨끗하고 최신 설비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무려 23년 만에 만들어진 최신식 국내 자동차 공장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6,000억 원이나 들여 10만대 공장으로 지어 놓고도 낮에만 가동하고 밤에는 비싼 설비를 놀리는 반쪽 가동으로 5만대 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연간 10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는 일감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낮과 밤 모두 가동하면 GGM의 일자리를 600여 개에서 1000개까지 늘릴 수 있고, 또한 부품을 공급하는 우리 지역의 자동차 부품 회사들의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연간 20만대 규모까지 늘리는 데 힘쓰겠다는 각오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캐스퍼 한 차종만으로는 어렵고, 고객사로부터 다른 차종을 더 위탁받아야 한다. GGM이 적정한 임금을 지키며 품질과 생산단가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이 구조를 유지한다면 얼마든지 위탁 생산물량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35만대 누적 생산까지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탈피하고 노사가 상호 협력하고 발전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상생협의회를 통해 임금, 근로조건 등을 논의하는 ‘노사상생발전협정서’가 지켜지느냐에 있다.(GGM은 3년간 14만여 대를 생산했다.)

만약 이 약속이 무너진다면, 사업 구조 전반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GGM의 존립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 대다수 GGM 직원들은 노사상생발전협정서를 준수하며 안전한 환경 속에 품질 좋은 차를 잘 만들고 있다. 분명한 것은 GGM은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자동차 공장이 아니라 이 지역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설립된 ‘사회 공헌’ 성격의 회사라는 점이다. GGM이 상생협력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현대차는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GGM에 캐스퍼의 생산을 위탁했고, 37개의 대다수 이 지역 투자사들이 자본금을 댔다. 또한 이를 믿고 광주·산업은행 등의 금융기관이 자금을 빌려줘 GGM이 만들어졌다. GGM 직원들도 같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들어온 만큼 잘 지켜질 것으로 본다.

-앞으로 21만대가 남은 것 아닌가. 윤 대표의 계획대로라면 상당히 가까운 미래다.

▲그렇다. 10월 중순 캐스퍼와 캐스퍼 일렉트릭을 유럽,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50개국에 수출하기 시작한다. 원래 9월부터 하려 했는데 현지 절차상 문제로 좀 지연됐다. 그동안 캐스퍼를 국내만 팔았는데 전기차가 나오면서 수출까지 하게 돼서, 누적 생산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누적 생산 35만대까지 노사상생발전협정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광주가 약속을 지켜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지역은 더 신뢰할 수 있는 고장으로 평가를 받으며, GGM의 잠재력은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직원들의 임금과 복지 여건을 솔직히 설명해달라.

▲(질문이 나오자마자 그는 비서에게 임금 관련 상세문서를 요청하고 그것을 토대로 일일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직원이 모두 650명인데, 평균 연령이 30세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회사에서 지급한 기술직 평균 연봉은 3700만원이었다. 여기에 주거지원비(민선 8기 들어 19만원에서 27만원으로, 지난 7월에는 30만원으로 인상됐다.), 건강검진비 등 사회적 임금을 포함하면 정확히 4092만6000원이다. 7월부터 전기차 양산에 들어가 야근, 특근이 더해지면서 지난해 9월 280만원을 받았던 직원은 올해 9월 330만원을 받았다. 앞으로 더 희망적이다. 현대차는 생산 위탁을 맡기고, 이틀 안에 가져가 GGM 공장 내에 재고가 없으며, 매달 초에 꼬박꼬박 현금으로 비용을 처리해준다. 이보다 좋은 시스템이 어디 있겠는가. 현대차가 홍보, 마케팅도 다 알아서 한다. 앞으로 차종을 늘리고, 경제성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차량 생산 대수를 높인다면 직원들에게 더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 회사의 복지 또한 대기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훌륭한 수준이다.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한 단체상해보험, 휴양시설(리조트) 회원권, 문화생활, 금융 대출 등의 지원은 물론 회사 통근버스 및 피트니스센터 운영, 차량 구매 지원, 경조사 지원, 직장어린이집 운영, 병원·음식점 등 지역 시설과의 제휴 협약 확대 등으로 직원 복지를 꾸준히 증진시켜 가고 있다.

-GGM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광주시청 담당 국장이 ‘광주형 일자리’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현대차를 찾았을 때 기획실장 자리에 있었다. 고향에 자동차 공장이 세워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현대차는 국내 투자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소위 브릭스(BRICS)에 진출하는 중이었다. 여러 차례 찾아왔는데, 성과를 보지 못하고 터키 법인장으로 나가게 됐다. 나중에 결국 GGM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현대차가 참여하기 때문에 잘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충분한 부품 클러스터가 형성되지는 못하고 있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경제성을 갖춰야 한다. 적어도 20만대는 생산해야 부품업체들이 오고, 창업도 할 것이다. 현재 130개 부품업체 중 광주·전남에는 24개가 있다. 나머지는 모두 타 지역이다. 배터리, 모터 등 핵심기술을 가진 부품기업들을 유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GGM을 위한 부품 클러스터도 형성될 것으로 본다.

-현대차는 왜 들어갔나.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할 즈음인 1985년도 2학기에, 당시 국찬표 교수님의 ‘국제 재무관리’라는 수업을 듣다가 국 교수님이 “현대차가 엑셀을 개발해 캐나다에서 1985년도에 대박이 나고 1986년도에 미국으로 첫 수출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동차를 만드는 일도 어려운데, 본고장인 미국에 수출한다는 것은 한국경제의 사활이 걸린 획기적인 일”이라며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도록 전 국민이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뒤 자동차 산업의 비전을 간파하고, 바로 현대자동차에 취직했다. 이 지역 출신이셨던 그 국 교수님을 꼭 찾아뵙고 인생의 진로를 잘 지도해주신 은혜에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튀르키에 법인장으로 있으면서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2016년 1월 튀르키에 법인장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당시 현대차로서는 유럽 수출의 전진기지인 중요한 거점이었고, 유럽만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중동 등도 반경 3,300km 안에 있는 인구가 12억 명이나 되었다. GDP 규모도 세계 최대규모인 27조 달러였다. 튀르키에에서 안정적으로 현대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에 스며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관련 서적 15권을 사 읽고 또 읽었더니 트뤼키에 국민성을 3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독실한 이슬람 신앙, 국가에 대한 강한 충성, 끈끈한 가족관계 등이었다. 막 취임해서 엘란트라(아반떼) 신차 발표회가 있었는데, 기자들 앞에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트뤼키에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겠다면서 트뤼키에 국가 가사를 암송하였다. 가사 내용은 독립 투쟁을 다뤘는데, 현지에서는 방송에 나올 정도였다. 그 후로 식당에서 주인이나 손님들이 알아볼 정도로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튀르키에 공장을 가동하는데 한 번은 직원들 모두 힘이 없어 보였다. 알고 보니 라마단 금식 기간이었다. 서서 일하는 그들도 금식을 하는데, 앉아서 일하는 내가 식사를 하기가 좀 미안해서 함께 해가 떴을 때는 한 달 동안 물도 안 마시는 금식에 동참했다. 현지 직원들이 너무도 좋아해줬다.(당시 이 소식은 국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트뤼키에에서 우리나라로 출장을 가는데, 부산 UN군 묘지에 묻힌 트뤼키에 군인들의 가족들이 있으면 대신 헌화하고, 편지도 읽어주겠다고 직원들에게 알렸다. 그 중에 유복자가 있었는데, 편지를 써줘서 아버지 묘소 앞에서 트뤼키에어로 읽어줬다. 영상을 만들어 나중에 보여줬더니 직원들 모두가 눈물을 떨궜다. 이러한 일들이 있어 트뤼키에에서는 직원들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 그 덕분인지 트뤼키에 현대차 공장의 생산성과 품질이 현대차그룹 32개 공장 가운데 최고수준이었다.

-대단한 일을 했다. GGM에서는 어떻게 지내나.

▲현장의 많은 직원들의 이름을 외워 부르며 함께 친밀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일부 직원과는 정말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나눈다. 갓 서른인데 자녀가 3명이나 되는 어떤 직원으로부터 “이 공장에서 일하게 돼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 책임감을 느끼며 “이런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일해 이들에게 더 좋은 복지와 월급 조건이 주어지도록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GGM의 경쟁력을 7가지로 정리해 사무실에 붙여놨다. Prolific(중형차 및 다차종 혼류 생산 가능), Efficiency(효율성), Rotation(유연한 배치), Focusing on the job(높은 작업 몰입도), Energetic(열정), Cooperative(상생협력), Trained(숙련) 등의 앞자를 따 GGM을 완벽한(PERFECT)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도 매번 다지고 있다.

-요즘 보고 있는 책은.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유배 왔던 강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정약용 선생의 개혁 사상과 실용 정신을 기업경영에 적용해보려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양대 정민 교수가 쓴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유배 생활 중, 강진의 제자들을 자식처럼 아끼며 가르치는 과정에서 싹튼 사제의 정을 애틋하게 소개하는 내용이다. 18년간 살며 정들었던 강진을 해배(解配·귀양을 풀어줌) 후 떠나서도 항상 다산초당과 옛 제자들을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내셨다는 정약용 선생이 다정다감한 고향 어르신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우선 뛰어난 리더 정주영이라는 불세출의 기업가가 있었고, 그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은 정몽구 회장이 계셨다. 로컬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도전 정신을 갖고 꾸준한 연구 개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대차는 불가능은 없다는 각오로 계속해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현대차 임원이 되려면 하나 정도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이다.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 아닌가 한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전 세계에서 판매한 차량은 800만대로 세계 시장의 8.5%를 차지했다. 앞으로도 계속 더 성장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쟁력은 세계 탑 클래스라고 봐야 하며, 조만간 현대차는 세계 ‘넘버 2’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광주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GGM은 광주시가 1대 주주이며, 설립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의 큰 관심과 응원이 있었던 만큼, 광주시민의 애정이 남다를 것이다.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GGM을 잘 경영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 시민 여러분께서도 만약 GGM 경영층이나 근로자들이 출범 취지에 어긋난 행위를 하면 엄중히 꾸짖어 주시기 바란다. 겸허히 경청하며 바른 길로 가겠다. 앞으로도 GGM을 항상 응원해주시고 성원해 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