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존중하고, 그들의 투자 유치해야만 지역발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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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존중하고, 그들의 투자 유치해야만 지역발전 가능"
광주일보가 만난 경제인 임경준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회장
광주·전남 회원 기업만 2632개…정부·지자체 친기업 정책 필요
지역기업 경쟁력 높이기 절실…자금·기술·제품 판촉 지원에 최선
2024년 12월 01일(일) 18:35
산업혁명 이전 유럽 경제를 이끈 것은 길드(guild)였다. 기술을 가진 장인, 상권을 가진 상인들이 조합을 조직해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서로를 보호하면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이들이 형성한 공동체가 점차 커지면서 도시로부터 자치권을 받고,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 전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기술은 도제(徒弟)식으로 전수되었는데, 길드가 그 수를 제한하거나 교육 기간을 정했고, 도시 내외의 상품 가격, 영업 시간 등을 조정하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고대 로마에서 유사한 조직들이 있었지만, 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길드는 11세기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등으로 퍼져나가 중세 유럽 경제의 상징이 되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 간 무역이 성행하면서 길드의 규모도 커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현재 유럽 각 도시의 핵심 산업이 결정된 것도 이 시기였다. 벨기에 헨트, 이탈리아 피렌체 등에서 모직·방직산업이 발달하고, 주로 현물 화폐로 거래하면서 화폐 경제도 발전시켰다. 중세 말 중상주의로 인한 공장제 산업과 산업혁명이 결합하면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고 길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그 유산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엄격한 생산 통제와 품질 관리로 각 지역마다 특산품이 생겨났고,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이어진 공예 기술의 진화는 명품의 기반이 되었다. 상표, 특허, 저작권 역시 길드 시대의 산물이다.

이후 자본주의의 더없는 발전과 20세기 후반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세계 무대를 약육강식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천문학적인 자본, 첨단기술력, 세계적 네트워크 등을 가진 거대 기업들은 조그만 이익까지도 쓸어담기 위해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분야와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몸집이 작고 연약해 외부 충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경제 주체들은 유럽 중세의 길드처럼 연대·협력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가 설립된 것이 1962년 5월이며, 광주전남본부도 비슷한 시기 조직되었다. 62년이 지났지만,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여건은 나아지기 보다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권익을 대변하고 그들의 지위 향상,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수의 99%, 종사자 수의 81%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소중한 가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생존, 나아가 대기업과의 동반 성장을 위해 법·제도적 보완, 정부·지자체의 지원, 자체 경쟁력 향상, 안정적인 판로 개척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중앙회와 광주전남본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본부는 모두 50개 조합에 2632개의 기업이 가입되어 있다. 아스콘, 가구, 식자재, 기계공업, 슈퍼마켓, 인쇄, 사진앨범 등 늘상 우리가 친근하게 여겨온 것들이다. 이 ‘대식구’를 이끌고 있는 광주전남회장은 임경준(66) (주)해솔아스콘 대표가 맡고 있다. 조선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상경해 서울 굴지의 건설업체에서 20·30대 중반을 보낸 뒤 아스콘이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1996년 7월 창업했다. 경험과 노하우를 이미 갖고 있던 그는 10년만에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뒤 2005년부터 아스콘조합,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20년간 ‘모두’를 위한 중책을 맡고 있다.

2015년까지 11년간 광주전남아스콘공업협동조합 이사를 지냈고, 2017년 3월 제7대 광주전남 중소기업회장에 오른 뒤 잠시 쉬었다가 2021년부터 제9대에 이어 지난 2023년 3월 제10대 회장에 선임됐다. 이외에도 전남건설협회 대표회원, 아스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제)광주테크노파크 이사 등을 수행하면서 2018년 산업포장 수상, 2022년 조달청장 표창 등을 받았다. 분야도, 규모도 각기 다른 중소기업·소상공인들로부터 오랜 기간 깊은 신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부터는 중소기업중앙회 지역중소기업회장단 협의회장까지 직함에 추가되면서 서울을 오가며 중앙과 지방의 가교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임 회장에게 연약한 경제 주체인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들을 위해 필요한 정부·지자체의 대책 등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업 배경이 상당히 이채롭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서울의 유명 건설업체에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이어서 지역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 업체는 도로 등 기반시설, 아파트 공급, 전신주 및 철도 침목 설치까지 건축·토목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했었다. 그 중 하나가 아스콘(석유 정제 부산물과 모래, 자갈 등을 섞은 아스팔트 콘크리트)이었는데, 우리나라가 급성장하면서 전국에 아스콘 공장을 두고 공급했었다. 그런데 이 아스콘이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 되면서 대기업이 할 수 없게 되었다. 사업체를 매각해야 하는 입장에서 회사 대표가 광주·전남의 사업장을 당시 소장이었던 내게 맡기셨다. 그냥 계약금만 주고 운영하라고 해서 창업을 하게 된 것이다. 천천히 돈을 벌어 완납하고 완전히 내 회사로 만들었다.

=상당한 특혜인데.

▲그 기업이 1946년 설립되었는데, 50년 역사에서 나만큼 혜택을 받은 직원은 없었다고 들었다. 지방대학을 나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고, 최선을 다한 것을 보고 대표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주말 근무도 자처했고, 당시 대표가 지시를 하면 거의 완수해냈던 기억이 난다.

=광주·전남지역 경제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어려울 때 어렵다고만 하면 경제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자체, 언론 등이 보다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돈이 지역 내에서 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경기부양책도 고민해봐야 한다. 지역 내에서는 삼성전자 일부 라인 멕시코 이전, 광주글로벌모터스의 노조 문제 등은 좀 면밀히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외국인 투자를 늘리기 위한 노조 문제에 대한 대처,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예외 조항 적용 등도 논의할 때가 됐다. 분명한 것은 친기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업을 존중하고, 그들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만 지역 발전이 가능하다.

=10년 동안 외부 활동은 거의 안 했다.

▲이미 운영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초창기 시행착오를 남들보다는 덜했다. 다만 완벽하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스콘 생산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골재를 채취할 수 있는 석산인데, 2만평에서 20만평으로 넓히고, 3등급 골재를 1등급으로 향상시켜 질적·양적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 공급망 역시 구축되어 영업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이후 여러 국내외 경제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아스콘 이외에 2019년 종합건설업에 뛰어들어 아파트 시행도 했는데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문건설업은 구조조정을 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회사 경영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요즘 지역 건설경기가 침체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2~3년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내실을 기해야 겠다는 생각에 일단 부지나 석산을 매입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아스콘 생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석산이 중요한데, 현재 10여 곳을 확보하고, 지역 곳곳에 공급망을 만들어 큰 어려움은 없다. 특히 마모율이 10% 미만인 1등급 골재를 생산하는 곳은 3~4곳에 불과해 경쟁력이 있다. 또 아스콘은 배합비가 굉장히 중요한데 서울을 오가며 익힌 기술력을 통해 고정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 3년 정도 불경기가 예상되며, 이 위기를 잘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현재 직원이 35명 정도 되고, 매출이 전체적으로 500억원 정도인데, 잘 유지해 후일 경기가 나아질 것을 대비하겠다.

=2005년부터 조합 일을 보기 시작했다.

▲아스콘 1세대 선배님들이 계셨는데, 권유하셔서 이사를 맡았다. 11년간 묵묵이 하지만 왕성하게 조합 일을 돕다보니 2015년 광주전남아스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에 오르게 됐다. 판공비 등을 전혀 안 쓰고 제 호주머니를 털어 조합 일을 하다보니 신뢰가 쌓이고 지금까지 10년째 이사장직을 계속하고 있다. 2017년 중소기업중앙회 광주전남지회 선거에 나가 회장에 선출되면서 2년간 일했고, 이후 2년을 쉬었다가 지금까지 5년째 일하고 있다. 오래 일하다보니 2023년부터는 중소기업중앙회 지역회장협의회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힘들더라도 겸손과 희생으로 솔선수범하니 후배들이 잘 따르는 것 같다.

=‘중소기업자간경쟁지정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당연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은 링에 올라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공공조달에 있어 특정 제품을 정해 중소기업 간 경쟁을 거쳐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3년에 한 번씩 중소기업 간 경쟁 제품을 지정하는데, 그 대상을 넓혀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 중소제조기반을 유지하고,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생존하는데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갑질 등을 피할 수 있고 최소한의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2월 아스콘도 재지정 받기를 관련 중소기업들이 희망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소상공인·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더 클텐데.

▲공감한다.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등과 비교할 때 매출 규모가 적어 영세하다. 지역 제한 없이 경쟁 입찰을 하다보면 타 지역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한데, 좋은 기업이나 조합을 중앙과 연계시켜 자금이나 기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홈쇼핑에 제품을 팔게 해주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쁘지만 지역 업계를 챙기기 위해 민원을 받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오전 6시 일어나 간단히 운동하고, 신문을 챙겨본다. 중기중앙회 광주전남본부, 서울사무실, 회사 등을 오가며 일주일을 보내는데, 스트레스는 음악을 들으며 해소하고 있다. 골프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골프장 나갈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다. 회장에 오른 뒤에 술자리도 잦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1차만 하고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해 구설수나 필요 없는 다툼이 없어졌다.

=기업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실하게 정도를 걸을 것을 권하고 싶다. 겸손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보다 선배들과 어울리며 배울 필요가 있다. 사업은 실수를 줄이거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선배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게 될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예의범절도 배우게 된다. 투자라는 이름으로 요행을 바라는 후배들이 꽤 있는데, 이 역시 경계해야 한다.

=요새 즐거운 일이 있다고 들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아들이 경영 수업을 하기 위해 회사에 입사했다. 직원들과도 잘 지내고 거래처 등도 어느 정도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제 좀 젊은 생각과 색다른 아이디어로 회사가 보다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으로 대기업, 대규모 자본도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생존은 더없이 힘든 일일 것이다. 문을 닫는 기업, 점포 등이 정말 급증하고 있으며, 그것은 곧 서민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지역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해 어떻게든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끌어오고 제도를 정비하도록 하는 것이 저의 임무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우리나라 경제가 유지될 수 있으며, 기업에 용기를 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을 위한 다양한 제도들을 정부와 지자체가 발굴하고 실천해줬으면 한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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