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참사 3주기 추모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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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참사 3주기 추모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
극단 밝은밤 7~9일 궁동예술극장, 그림자극 등 요소 접목
실제 피해자 이름 활용…운림 54번 버스 세트장 고스란히
2024년 06월 09일(일) 17:10
광주 학동 건물붕괴참사 3주기 추모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 공연 장면. 무대 세트인 학동증심사입구역 정류장 앞에서 쓰러진 유가족 부모 역할의 배우가 열연하고 있다.
콘크리트 잔해 부서지는 소리, 뉴스를 중계하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공연장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매캐한 연기는 참사 현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마저 준다.

버스정류장 벤치를 붙잡고 울부짖는 유가족 역할의 배우가 눈길을 오래 붙든다. 침통한 가운데 다섯 ‘망자’들은 운림54번 버스에서 내려 관객들을 마주한다. 무대 위에 재현된 3년 전 학동 4구역 ‘학동 건물붕괴참사’ 풍경들이다.

지난 7일 오후에 찾은 광주 궁동예술극장. 극단 ‘밝은밤’(예술감독 한지성)은 학동 참사 3주기 추모극 리허설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학동 참사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을 3년째 선보이고 있다.

학동 참사는 하청과 재하청, 불법 하도급 및 계획서를 무시한 철거 등으로 인해 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산빌딩이 무너져내린 사고였다. 이로 인해 콘크리트 잔해가 정차 중이던 운림 54번 버스를 덮쳤고, 사망자 9명과 부상자 8명 등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덩달아 무너진 세상’을 연출한 극단 밝은밤 임채빈 연출가.
공연에 앞서 만난 임채빈 연출가는 “작품을 무겁게 풀지 않기 위해 다섯 명 인물의 소시민적 에피소드에 집중했다”며 “지난해 선보였던 2주기 공연이 병원으로 실려온 환자의 영혼을 보는 ‘의사’ 시점으로 전개됐다면, 이번에는 ‘문화부 기자’가 학동 참사를 취재하며 망자들을 위로하는 컨셉으로 구성했다”고 했다.

임 연출가는 희생자 유가족 양해를 구한 뒤 이들의 실제 사연 및 실명을 극에 일부 차용했다. 참사 당시 광주고에 재학중이던 엷여덟 고(故) 김명우 군은 이태영 배우가, 두 아이를 키우며 곰탕을 팔던 54년생 곽윤례 씨는 최혜민 배우가 열연했다. 30대 수의사 지망생 고(故) 김해찬 역은 정수린 배우가 맡았다.

학동 참사 진실을 추적하는 문화부 기자 ‘이승희’ 역을 맡은 유현지 배우.
극중 다섯 영혼은 이미 사망한 뒤라 기억이 없다. 작품은 이승희(유현지 분) 기자와 함께 죽음의 원인을 찾아 나서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공연은 운림 54번 버스 내부를 재구성한 무대에서 펼쳐졌다. 참사 공간에 직접 들어가는 기분을 통해 희생자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사회적 재난에 대한 담론까지 사유해보자는 기획 의도다.

여기에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퇴직한 국어교사 최수혁(김주영)과 개인적인 이유로 산에 들어가 생을 마감하려 했던 김도하(이은샘) 등 창작 인물을 추가했다. 희생자들의 오인 오색 에피소드를 옴니버스식 구조로 엮어 사회적 비극을 목도하게 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그림자극’ 으로 처리해 현재와 과거 인물이 경계를 오가도록 구성한 점은 인상적이다. 암영 처리는 로우 앵글 조명을 활용했다. 그림자가 웅장하게 보이는 극적 효과를 연출해 인물들의 과거사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초점을 맞췄다.

철거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난 학동 재개발 지역의 건축 철거 잔해물. <광주일보 자료>
안무 중인 배우를 관객이 촬영하는 등 적소에 배치된 관객참여 코너도 흥미 요소였다. 다만 100분 러닝타임에 비해 인물들이 서로 나이를 묻는 초반부 신원확인 서사 등은 다소 길다는 인상을 줬다.

한편 다섯 영령은 이승희 기자에게 “저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대신 세상을 바꿔달라” 부탁한다. 이에 대해 기자 역할을 맡은 주인공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생각을 견지한다. 작품을 보는 동안 학동참사 당시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 목소리를 듣고 심층취재 기사를 썼던 선배 기자들의 면면이 오버랩됐다.

‘덩달아 무너진 세상’은 과도한 신파 없이 희생자들을 애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블랙핑크 곡 ‘Love sick girls’나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과 같은 밝은 분위기 노래를 삽입해 작품이 비극적 페이소스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했다.

실제 학동참사 희생자인 故 김명우 군을 모티브로 한 ‘김명우’ 역(이태영 분)
‘덩달아 무너진 세상’은 학동 참사로 무너진 것이 ‘건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했다. 사회적 참사로 인해 한 사람의 세상과 꿈이 모두 ‘함께’ 붕괴한 것이다.

공연장을 나오며 한편에 조성된 추모 공간에 생화 한 송이를 두고 왔다. 극단 밝은밤 단원들은 참사 당일인 9일 학동증심사입구역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도 했다.

연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은 9일까지 미로극장 2관(옛 궁동예술극장)에서 펼쳐졌다. 전석 2만원.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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