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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통문(羅濟通門)’을 넘나들며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4년 04월 25일(목) 21:30
내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곳은 전북 무주였다. 무주읍에 있는 무주중학교를 다니다가 1학년 말쯤에 무풍면에 있는 무풍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무주읍에서 출발하여 설천면을 지나 계속 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갈라져 구천동으로 향하는 방향과 또 한편으로는 무풍면을 향하게 된다. 그 길로 들어서면 큰 바위 사이로 도로가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곳을 가리켜 라제통문이라 부르는데 높이 3m 길이 10m 자연암석을 인위적으로 관통해 만들었다. 한자로 라제통문(羅濟通門)이라 상단에 새겨져 있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신라와 백제 사람들이 오가기 위해 뚫어놔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이유로 이름을 붙였나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라제통문은 무주의 덕유산과 석모산 사이에 있는 석굴 문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추정되고 굴이 생기기 전에 석모산은 무풍면과 설천면을 오가던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굴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의 언어와 풍습이 서로 다른데 옛 신라 지역인 동쪽(무풍면)은 경상권 방언을 쓰고 풍습도 경상권을 따르며 옛 백제 지역인 서쪽(설천면)은 전라권 방언을 쓴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 개발 등을 위해 굴을 뚫었다고 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직접 보면 괭이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지금처럼 정교한 모습보다는 투박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나는 무풍중학교로 전학을 간 후 참 놀라운 경험을 하였는데 분명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북도인데 친구들이나 동네 주민들은 모두 경상도 말을 쓰고 있었다. 전학을 해서 학교에 등교한 첫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재잘재잘 떠드는 친구들의 말씨가 전부 경상도 사투리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친구들 말로는 원래 경상도였다가 행정구역 개편할 때 전북 무주군으로 편입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밥 묵었나?”, “니 공부 잘하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제이” 억양은 표시할 수 없으니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어릴 때부터 전라도 말에 익숙하게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뭐라고?’하면서 친구들이 하는 말들을 다시 묻곤 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 주민들의 생활권이 무주읍이 아니라 김천시와 거창이었다. 나도 영어 공부를 위해 김천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녔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김천고와 거창고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결국에는 전주에 있는 상산고로 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목회하는 아버지도 그랬지만 나 또한 목회를 하면서 많은 지역을 다녔다. 그러면서 느끼는 한 가지가 있는데 사투리 때문에 말씨가 좀 다르긴 해도 사는 모습들은 그리 달리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기가 막힐 정도로 극명하게 다른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정치(정당)에 대한 지지였다. 예수께서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에서 말씀하시는 내용 중에 마태복음 5장 48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는 말씀이 있다. 구약과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르는 주된 가르침은 ‘거룩’ 이었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철저한 율법정신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차별과 분리로 스스로 그 근본정신을 망각한채 허상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예수님은 ‘온전’이라는 것이 더 낫고 더 높은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을 가르치셨다. 이 말씀은 ‘나누이지 않고 하나인’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를 보면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동서가 나뉘어져 있다. 어릴 적 살았던 지역의 라제통문을 생각해 보면서 전라도이든 경상도이든 그것은 행정적인 구분일 뿐 대한민국의 영토요 한 국민이 아니던가. 예수님은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라고 하셨다.

사랑함으로 하나 된 나라, 아울러 동서남북이 온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