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사회복지회 부국장
  전체메뉴
아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사회복지회 부국장
2025년 05월 22일(목) 22:00
지난 5월 8일, 전 세계와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교황님이신 레오 14세의 선출 소식을 들었다. 전임 교황님이신 프란치스코의 선종으로 안타까움과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새로 선출되신 레오 14세 교황님을 통해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와 우려가 교차 되었다. 왜냐하면 교황 레오 14세는 첫 미국 출신 교황이시며 첫 선교사 출신 교황이시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이며 자본주의의 발원지이자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출신의 교황이며, 남미 페루에서 20년간 가난하고 척박한 곳의 선교사로 사셨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이시기 때문이다.

가장 부유한 나라 출신이셨던 분이 남미 페루의 가장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 많은 생각이 든다. 가톨릭교회에서 사제가 해외 선교사로 자청한다는 것! 자신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 특히 가난하고 척박하며 열악한 처지의 선교지로 가겠다는 것은 엄청난 숙고의 결단이다. 해외선교 사제로 살겠다는 것은 포기의 삶, 희생의 삶, 죽음의 삶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선교사의 마음가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여 희생되는 어린양의 모습이 원천이다. 어린양의 단순함과 받아들임과 내맡김의 모습은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와 관습을 내것이 되도록 가능하게 한다. 자기를 버려야 선교지의 삶이 가능하고 자기를 희생해야 선교지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할 수 있게 되며,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아야 기다리고 경청하여 선교지의 모든 것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가톨릭 신앙에서 말하는 ‘육화’의 신비이며 한국 천주교회가 잘 뿌리내리고 있는 ‘토착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가난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삶과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또한 그 가난한 사람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앙인들은 자신을 비우면서 자신을 증명하게 되고 자신을 낮추면서 존재함에 감사드리며, 자신을 희생하면서 생명과 삶의 소중함을 알아 살아가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존재들이다. 선교지의 선교 사제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삶과 같다.

새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님이 20년 동안 남미 페루 특히 ‘치클라요(Chiclayo)’ 지역에서 선교사로 사셨다. 그 지역 사람이 되기 위해 언어는 물론 원주민들의 문화와 관습을 받아들이셨다. 가난한 농부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아파하면서 그들 속에 머무르셨다. 예수께서 인간이 되신 ‘육화’의 신비가 바로 선교사들의 받아들임과 순응의 원천이다. “아는 만큼 다가가고, 사랑하는 만큼 살아갈 수 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알지 못하면 다가갈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도 함께 살아가지도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면 등급을 나누고 우월의식으로 차별과 폭력을 양산할 뿐이다.

레오 14세 교황님의 척박한 선교지의 경험이 어둠에 갇혀 있거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알아볼 것이다. 선종하신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주된 관심사였던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레오 14세 교황님의 돌봄의 시선은 지속될 것이라 예상해 본다. 그리고 전쟁과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세상을 향해 새 교황님은 평화를 위해 힘쓸 것이고 모두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선대 교황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식인들의 모순은 다 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는 것인데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는 것이 모순이다. 정말 아는 사람은 조용하고 겸손하여 경청한다. 안다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이기에 쉽게 판단하거나 일반화시켜서도 안된다. 다만 바라보고 함께할 뿐이다. 경험은 좋은 나침판이 될 것이다. 그 경험이 가난과 척박함과 소외였다면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하며 존귀한 것인지를 알 것이다. 내가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