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200년, 김대중 100년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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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甲辰), 청룡의 해가 밝은 지 벌써 여러날이 지났다. 지난해의 괴롭고 쓰라린 아픔들일랑 훌훌 떨쳐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희망으로 앞날을 설계해야 할 그런 때를 맞았다. 더구나 금년이 어떤 해인가. 1824년에 태어난 수운 최제우 제세주(濟世主)께서 이 땅에 나오신 200주년의 해요, 1924년에 태어난 우리 시대의 탁월한 정치가 김대중 대통령의 탄신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사상을 이어 1894년에 봉기한 동학농민혁명의 130주년을 맞는 해가 또 금년이다. 최제우·김대중·동학농민혁명을 우리 민족에게 내려주신 조물주에게 감사해야 할 해가 바로 금년임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난해 12월 18일 최제우 탄신 20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마쳤다. ‘인시천(人是天)’의 위대한 진리를 밝혀낸 수운선생의 탄신에 무한한 축하의 뜻을 올려바쳤다. 얼마전 1월 6일에는 김대중탄생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말석에서나마 행사 전체를 지켜보면서 저처럼 탁월한 정치가가 같은 시대에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점에 감격의 마음을 이기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평민당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8년 동안 김대중대통령에게 정치를 배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때는 미쳐 알아보지 못했던 김대통령의 위대한 정치를 다시 발견하면서 더욱 감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100년 사이로 최제우·김대중의 탄생, 참으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뜻을 과거에는 ‘인내천(人乃天)’이라 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인시천’이라고 최근에 밝혀졌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휘호를 할때마다 ‘인내천’ 세 글자를 자주 쓰셨던 생각을 하면서 동학사상을 이어서 국민을 주인으로 여긴 ‘국민의 정부’ 시절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동학과 김대중’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읽어보고 새삼스럽게 김대중 사상의 근거를 찾아낸 것 같아 더욱 마음이 끌리고 있다. “김대중은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란 동학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지향점이며, 그 기원아래 민중들이 떨치고 일어섰던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우리가 서 있는 역사의 한 뿌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지적했다”라고 설명하고는 김대통령의 말씀을 바로 인용하였다.
옥중에서 이희호여사에게 보낸 편지에 “최수운(최제우)의 탄생은 이 땅에 정신사의 이적(異跡)이며 한국인의 사상적 창조성의 한 표본”이라고, 또 “동학은 어디까지나 당시 농민을 위한 눌린자의 종교였으며 반체제적이고 민족적이고 주체적인 종교”였다고 평가했다라는 글이 참으로 좋았다.
김대통령의 혜안은 정말로 탁월하다. 최제우의 탄생이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서 ‘이적(異跡)’이라는 지적부터 너무나 명쾌한 분석이다. 동학은 ‘농민을 위한 눌린자의 종교’라는 표현도 정확하고, ‘반체제적이며 민족적이고 주체적이고 저항적인 종교’라는 분석도 너무나 올바른 평가였다. 나는 1990년 ‘김대중연설총람’을 편찬하면서 책 제목을 ‘사상과 능변’이라고 했다. 사상과 철학이 있는 정치가이면서 뛰어난 연설가여서 ‘능변’이라고 했지만, 그때 김대통령의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제 탄생 100주년을 맞는 금년에야 김대통령의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에는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사상이 젖어 있음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농민·노동자 등 눌린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그렇게도 애쓰던 일, 독재체제 및 유신체제, 쿠테타체제에 철저하게 반대했고, 민족적이고 주체적인 외교를 통해 나라의 위상을 새롭게 제고한 점 등에서 모두 동학사상을 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독재체제에 강고하게 저항했던 그분의 정치적 투쟁을 기억해보면 더 명확하게 김대통령의 사상적 근거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알게 해준다.
오늘의 세상은 어떤가. 검찰독재가 강고하게 진행되면서, 사람이나 백성은 하늘이 아니라 짓밟을 대상으로 여기고, 민심과는 등을 돌리고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극우논리만 앞세워 민족정기까지 기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때이기 때문에 최제우선생이 그립고 동학농민혁명을 다시 생각하고 김대통령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독재에 저항하고 ‘동학’·‘동학농민혁명’·‘행동하는 양심’의 정신으로 무장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옥중에서 이희호여사에게 보낸 편지에 “최수운(최제우)의 탄생은 이 땅에 정신사의 이적(異跡)이며 한국인의 사상적 창조성의 한 표본”이라고, 또 “동학은 어디까지나 당시 농민을 위한 눌린자의 종교였으며 반체제적이고 민족적이고 주체적인 종교”였다고 평가했다라는 글이 참으로 좋았다.
김대통령의 혜안은 정말로 탁월하다. 최제우의 탄생이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서 ‘이적(異跡)’이라는 지적부터 너무나 명쾌한 분석이다. 동학은 ‘농민을 위한 눌린자의 종교’라는 표현도 정확하고, ‘반체제적이며 민족적이고 주체적이고 저항적인 종교’라는 분석도 너무나 올바른 평가였다. 나는 1990년 ‘김대중연설총람’을 편찬하면서 책 제목을 ‘사상과 능변’이라고 했다. 사상과 철학이 있는 정치가이면서 뛰어난 연설가여서 ‘능변’이라고 했지만, 그때 김대통령의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제 탄생 100주년을 맞는 금년에야 김대통령의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에는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사상이 젖어 있음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농민·노동자 등 눌린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그렇게도 애쓰던 일, 독재체제 및 유신체제, 쿠테타체제에 철저하게 반대했고, 민족적이고 주체적인 외교를 통해 나라의 위상을 새롭게 제고한 점 등에서 모두 동학사상을 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독재체제에 강고하게 저항했던 그분의 정치적 투쟁을 기억해보면 더 명확하게 김대통령의 사상적 근거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알게 해준다.
오늘의 세상은 어떤가. 검찰독재가 강고하게 진행되면서, 사람이나 백성은 하늘이 아니라 짓밟을 대상으로 여기고, 민심과는 등을 돌리고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인 극우논리만 앞세워 민족정기까지 기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때이기 때문에 최제우선생이 그립고 동학농민혁명을 다시 생각하고 김대통령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독재에 저항하고 ‘동학’·‘동학농민혁명’·‘행동하는 양심’의 정신으로 무장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