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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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2025년 09월 15일(월) 00:00
가을이다. 길을 걷다 보면 코스모스·봉숭아·나팔꽃을 만난다. 모두 이쁘다. 가냘프게 흔들리면서도 우주라는 이름으로 피는 코스모스, 담장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새치름하게 서 있는 봉숭아, 덩굴을 따라 널리 퍼져나가는 나팔꽃은 모두 단년생 식물이다. 단년생 식물은 발아, 생장, 개화 및 결실을 순차적으로 모두 끝내고 사멸하는 한해살이다.

들이나 산으로 가면 벌개미취·쑥부쟁이·구절초를 만난다. 모두 이쁘다. 햇빛이 드는 벌판에서 잘 자란다는 벌개미취, 쑥을 캐러 다니는 대장장이의 딸에서 유래되었다는 쑥부쟁이, 음력 9월 9일이면 줄기가 아홉 마디가 된다는 구절초는 모두 다년생 식물이다. 다년생 식물은 겨울을 나고 다음 해에 다시 꽃을 피우거나 잎을 내는 여러해살이다.

한해살이든 여러해살이든 ‘꽃의 이쁨’에는 다름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평균수명이 60세 전후였을 때는 유년기에 싹을 틔우고, 청년기에 꽃을 피우고, 장년기에 열매를 맺고, 노년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등 한해살이 꽃처럼 순차적으로 살아도 탈이 없었다. 대략 20대 초반까지 교육받고, 취업해서 30여 년 정도 일하다, 은퇴한 후 10여 년 정도 살다 죽으면 됐다.

그러나 ‘100세 시대’ 운운하는 요즘에는 한해살이 꽃처럼 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교육은 20대 초반에 끝나지 않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니 똑같은 일을 하면서 30여 년을 버티기도 힘들다. 버틴다 해도 은퇴 후 살날이 살아 온 날만큼 남았으니 우물쭈물하며 보내기는 아예 난망(難望)이다. 그러기에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다년생 꽃처럼 살 수밖에 없다.

매년 새로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려면 평생을 학습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여러 가지 직업을 경험해 보기도 하고, 변화가 필요하면 새로운 경력 경로를 설계하거나 창업을 시도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각종 커뮤니티에 참여해 세대의 벽을 허무는 등 인생의 여러 단계를 조합해서 동시에 넘나들어야 한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퍼레니얼(Perennial)이라 한다. 퍼레니얼은 원래 다년생 식물을 뜻하는 단어지만 미국 기업가 지나 펠은 “고정관념을 초월해 서로, 그리고 주변 세계와 연결되면서 늘 꽃을 피우는 모든 연령·종류·유형의 사람들”을 퍼레니얼이라 불렀다.

글로벌 트렌드의 세계적 전문가 마우로 기엔도 ‘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에서 퍼레니얼은 “자신이 태어난 시대가 아니라, 일하고 배우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통해 정의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인생의 단계들이 덜 엄격하게 구분돼 있으면, 공부와 일과 놀이를 평생에 걸쳐 더 유연하게 배정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일 이외의 관심 분야에 몰두할 자유를 더 많이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새로운 방식의 삶은 더 많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일자리를 경험하고 경력을 바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고 했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는 파도에 방향키를 맡겨야 한다. 거의 한 세기를 사는 동안 인간은 필연적으로 기술혁명이나 문화혁명과 같은 거대한 파도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예측하기 어려운 긴 항해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파도에 맞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재창조해야 한다. 이것이 퍼레니얼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퍼레니얼로 산다는 것은 ‘세대(世代)의 경계를 초월하는 삶의 사고방식’을 기르는 것이다. 긴 인생을 지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젊음에서 쇠퇴로 이어지는 ‘선(線)’으로 보지 않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일이 반복되는 ‘원(圓)’으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은 불행하지만 꽃을 피울 순간이 온다고 생각하면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도, 다가올 것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다.

다년생 식물이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잎을 떨어뜨리듯 낡은 정체성과 아집(我執)을 벗어던지고 변화를 단순히 적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재구성하고 삶을 새롭게 발견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퍼레니얼이 된다는 것은 ‘100세 시대’를 지혜롭게 살기 위한 전략을 넘어서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육체는 스스로 세포를 재생하고, 마음은 순수를 찾아 정진을 계속하고, 영혼은 매번 넘어진 후에야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것이 인간 됨의 본질이다.

많이 남았든 적게 남았든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다. 자신을 갱신하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언제나 가능하고, 삶의 어느 단계도 최종적인 것은 아니며,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연륜’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하는 사고와 행동’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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