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에서 만난 하이데거 친필 저서- 강동완 전 조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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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에서 만난 하이데거 친필 저서- 강동완 전 조선대학교 총장
2023년 09월 19일(화) 07:00
삶에서 철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필로소피아는 삶에 대해 사유하고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욕망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 충돌하는 과정을 겪다보면 지혜는 정지되고 극한 상황의 경우에는 거의 무지에 가까워진다.

그런 무지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혜를 익히고 싶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공부하면서 근현대 철학과 문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니체의 사상을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독일의 날을 맞이하여 은암미술관에서 개최한 2023년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 프로젝트 전시 ‘Turning Point’를 관람한 적이 있다. 이 때 김주연 참여 작가의 부친인 목포대 철학과 김정호 교수와 1950년대 후반 독일에서 공부한 철학교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 후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기회주의 속성 등을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 연구가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각 대학에 문학·사학·철학과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서울대 철학과는 박종홍 교수가 주도하게 된다.

세계적인 철학자였던 하이데거를 방문하는 것은 박종홍 교수 개인으로서 고대하던 일이었다. 마침 하이데거의 제자인 하이델베르크대학 가다머 교수 밑에서 공부하던 전남대학교 서동익 교수가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은 1956년 7월 하이데거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서 교수는 전남대를 떠나 중앙대학교로 옮긴 후 세상을 떠났고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들의 설득과 노력으로 가족들이 서 교수의 장서 3000여 권을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게 된다.

전남대 기증본 중에는 하이데거 저서인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친필 사인본이 들어 있었고, 그 내용은 성진기 교수가 1977년 출판저널 제207호에 발표한 ‘하이데거의 육필 한점’이라는 글에 담겼다.

나는 세계적인 석학의 친필 서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장우권 전남대 도서관장의 도움을 받아 박종홍 교수가 하이데거를 만나고 쓴 기행문과 친필 도서를 받아들 수 있었다.

사상계 1957년 10월호에 실린 박종홍 교수의 기행문 ‘하이데거를 찾아서’에는 전남대 서동익 교수, 서울대 의대 이문호 교수,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등의 일행이 프라이부르크 슈바르쯔발트 산장 토트나우베르크의 자그마한 오두막을 방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고서 도서관에서 찾아온 ‘존재와 시간’ 1955년 판에는 서동익 교수를 위해 하이데거 교수가 친필로 사인한 1956년 7월 27일 자로 서 교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 자료를 보고 뜨겁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실존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연 위대한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친필이 적힌 저서가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니. 세계적인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친필 스토리를 지닌 책이 도서관에 있다는 것은 전남대학교의 큰 자부심이니 특별히 보관하고 광주시민이 널리 볼 수 있도록 특별한 공간에 특별하게 전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장우권 도서관장은 올해 도서관 설립 70주년 기념행사에서 특별 전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성진기 교수는 ‘세계에 던져진 존재’, ‘죽음을 향하여 가는 존재’로서 인간을 탐구해 물음을 던지는 존재자로서 하이데거의 ‘현존재’ 사상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본래적 자기 모습을 망각하고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이분화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주체적인 현존재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인간은 모두 죽음으로의 여정을 갖는다. 당시에 하이데거 오두막을 방문했던 사람 가운데 강신호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친필이 적힌 ‘존재와 시간’은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영원히 남아 후학들에게 많은 철학적 사유와 행동을 전해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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