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래불사추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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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래불사추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09월 04일(월) 00:00
극한 폭우와 극한 폭염으로 맹위를 떨치던 여름이 물러가고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여름은 여느 해보다 가혹했다. 특히 7월 중순에는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나 되는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국의 농지 3만여㏊도 물에 잠겨 농부들은 자식처럼 키웠던 농작물을 물속에 버려야 했다. 예천에서는 실종자 수색 중 해병대원이 실종돼 주검으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지난 여름은 그렇게 무참하고 아픈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상실은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여름이 물러가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있다. 지난주 수묵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프레스데이가 열리는 목포와 진도에 다녀왔다. 전시장에 걸린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오가는 길에 보았던 고하도의 풍경과 우수영의 빠른 물살이 뇌리에 남았다.

“바다에는 가을 빛 저물어/ 찬 기운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나네/ 나라 걱정에 뒤척이는 밤/ 기운 새벽달은 활과 칼을 비추네” 이순신의 대표적인 ‘한산도 야음’이라는 5언 절구 시다.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의 저자인 노승석 박사(여해고전연구소장)에 따르면 이 시는 이순신이 1593(계사)년 가을, 한산도 앞바다에서 나라 걱정에 밤을 새우며 전쟁 준비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물론 한산도는 통영에 있는 명승 유적지다. 명량대첩의 현장 해남 우수영에서 한산대첩의 역사적 공간인 통영의 바다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작금의 어지러운 시국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이순신의 호국 의지가 담긴 ‘장검’이 국보가 됐다는 소식도 오버랩되었다.

철 지난 이념 논쟁으로 온통 나라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을 번복하거나 색깔론으로 덧씌우는 일들이 무시로 자행되고 있다. 이순신에게는 오직 애국, 애민 외에는 어떠한 이념도 없었다. 이 계절에 정치권이 생각해야 할 것은 ‘민생’ 외에는 없을 터인데…. 가을은 왔지만 가을 같지 않은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바야흐로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의 계절이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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