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사라져 가는 음식들 - 댄 살라디노 지음, 김병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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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사라져 가는 음식들 - 댄 살라디노 지음, 김병화 옮김
‘아라비카 커피’부터 ‘꿀’까지…멸종 위기의 음식 재료들
2023년 06월 23일(금) 21:00
먼 북극해 스발바르섬에는 세계 최대 종자 저장고가 있다. 섬에 있는 산에서 135미터 터널을 뚫고 들어간 지점이다. 이곳에는 100만 종 이상의 종자 컬렉션이 있는데, 수천 년 농경 역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저장고 안에는 1000가지 곡물의 다양한 품종이 보관돼 있다. 벼 샘플이 17만 종에 이르고 옥수수가 3만9000종, 감자 2만1000종 그리고 귀리 3만5000종이나 된다. 물론 작물별로 야생 친척도 있다.

BBC기자이자 음식저널리스트 댄 살라디노가 쓴 ‘사라져 가는 음식들’은 잃어버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음식의 다양성과 연관된 곡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저자는 BBC라디오4에서 음식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10년 넘게 세계를 돌았다. ‘문명의 여명이 남아 있는 튀르키예 황금빛 밀부터 한국의 천연기념물 오계’에 이르기까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음식이 대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음식의 재료가 되는 농작물, 식물, 동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음식은 세계의 내적 작동 방식을 이해해주는 완벽한 렌즈다. 저자는 음식을 모티브로 정치는 물론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며 풍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곡물, 채소, 해산물, 육류 등 책에 등장하는 음식은 34가지인데 이들 음식과 동식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류와 함께해왔다.

저자는 세계화와 대량생산은 음식의 종말로 이어지고 음식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야생 대서양 연어. <김영사 제공>
저자는 인류의 운명을 바꾼 음식 가운데 하나로 굴을 든다. 약 16만 년 전 인류 인구는 기후 변화로 거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1만 명에서 200~300명으로 대폭 줄었다고 추정되는데 거의 멸종 직전이었다. 그런 인류를 구해준 것은 다름아닌 해산물이었다. 생존자들은 아연을 비롯해 요오드, 아미노산이 풍부한 굴을 먹었는데 이는 두뇌를 활성화하는 기능을 강화했다.

탄자니아 에야시 호수에 있는 하드자족은 꿀을 채취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꼬리에 힌 줄기 흰색 깃털이 있는 벌꿀길잡이새와 협업을 한다. 새는 바오바브나무 가지에 가려진 벌집을 찾지만 벌들을 제압할 수는 없다. 새의 역할을 거기까지다. 그와 달리 인간은 벌집을 찾는 것이 어렵지만 벌꿀길잡이새 도움으로 발견을 한다. 그리고 나면 연기를 피워 벌의 접근을 막는다.

고품질의 아라비카 커피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서늘한 곳에서 생산된다. 대개 고산지대가 그런 곳인데 오늘날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카 65%가 이번 세기 말에는 작물이 적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후 변화 때문이다. 농부들은 더 서늘한 높은 지역을 찾아 이동하지만 그런 곳은 최대 고도에 근접해 있어 더 이상 이동이 불가능하다.

저자는 과도한 개발로 동식물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있다고 본다. 단일 품종을 심고 비료를 뿌리기 위해 삼림을 밀고 엄청난 양의 기름을 태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유전적인 단일 식물 재배는 소수의 엘리트 품종을 제외한 토착 품종 퇴출이라는 악영향으로 이어진다.

책에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남아메리카 안데스 고지까지 특별한 음식에 담긴 사연이 가득하다. 이밖에 멕시코의 올로톤 옥수수를 비롯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야생 대서양 연어, 카자흐스탄의 시베르스 사과, 조지아의 크레브리 와인 등의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세계화와 대량생산은 음식의 종말로 이어지고 결국 음식이 사라지고 나면 인간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고.

“가축을 길들여온 1만2000년 동안 대부분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상호 의존적이었다. 고대의 벽화와 종교 아이콘화에서 우리는 선조들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생물에 품었던 경외심과 존중심을 본다. 지금은 그런 태도가 거의 사라졌지만, 먼 오지의 공동체나 소규모 농장에서는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생물다양성과 귀중한 유전학은 위기에 처했으며, 진정한 기원, 고기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우리의 감각도 마찬가지다.”

<김영사·2만9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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